[일간다다랩] 씁니다. 제가 운영하는 공간 다다랩에서는 “문장블렌딩”이라는 커피를 내려 드리고 있습니다. 주문(注文)하신 문장의 무의에 나름의 주석을 달아 봅니다. 메일링 서비스를 통해 글을 전하고 있습니다. 글의 일부를 연재합니다. 전문 구독은 여기 https://t.co/0FXkzzD3Xu 💌
#0024
“커피 못 마신다는 말은 굳이 안하고 다녀도 되는 오후에 살고 싶습니다”
(...) 어쩌다보니 메뉴판 없는, “작업지시서”만 덩그러니 놓인 카페로 여기에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던 선택지 바깥이 있을까? 받아 적는 말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말이라는 것이 세상에 존재할까?
#0023
“나에 대한 생각을 줄이게 하는 사람: 이중슬릿실험”
잠시 멈추게 되는 문장 아래에 보다 작은 글씨로 적혀 있는 : 이중슬릿실험 (...)관측자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는 이야기라고. 시선이 생겨나면 현상이 달라진다.(...) 나타났기에 이제 자신에게 있거나 없는 것들뿐이라고.
#0022
“전깃줄이 엉켜있는 걸 보면 설레요”
올라오는 골목골목에 전신주, 라고 하나. 통신선들이 어떤 정돈도 없이 마구잡이로 엉켜 있다. (...) 여행을 가기 싫다던 한 친구는 평생 이 동네 골목골목도 빠짐없이 걷지 못할 텐데 멀리 나가서 뭘 그렇게 가지려고 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0021
“담쟁이덩굴인줄 알았는데 연약한 꽃 이었다”
함부로 이름 붙였던 나를 자책한다. 그래서 벽에 붙지 않았던 거구나, 담장이꽃. 선분홍빛 꽃이 가득 피어 주렁주렁 옥상에서부터 벽을 타고 흘러내린다.
이름이야 아무렴 어떤가. 꽃에게 왜 담에 붙어있지 않느냐고 느꼈던 슬픔이라니,
#0020
"키스의 고유조건은 입술끼리 만나야 하고 특별한 기술은 필요치 않다."
(...) 만남으로 충분하고, 그 향함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산만하게 흐트러트려 놓은 것들을 집약시킨다. (...) 아무것도 아닌 말들이 어떤 같은 의도 아래 만나 특별한 기술이 필요치 않은 고유조건을 형성하는 것처럼.
#0019
"라떼는 말이야"
(...)
불완전을 인정한다는 것은 어느 순간 내가 가해자였음을 인정한다는 것일까. 어차피 과거의 상처를 완전히 씻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나의 인정이 세계에 존재하는 슬픔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완벽한 슬픔을, 완벽한 불완전을 우리는 완성하려고 하는...
#0018
"사랑이 재능이라면 난 천재야"
(...)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검토하고 싶다는, 가능한 최선의 자리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점근선.(...) 실패한다. 실패하고 더 나은 실패를 보여주는 것에 또 실패한다. 하지만 누군가 말했다. 거의 모든 재능은 계속하려는 의지에 있다고. (...) 를 희망한다.
#0017
"이미지를 반복하며 단순하게 만든다"
(...)
이미지들에 뒤덮여 단순해지는 현실, 그 스펙터클에서 가장 사적이기에 가장 정치적인 호소는 죽는다.(...) 관객은 다시 무대가 되고, 흘러넘친다. 더 흘러넘치기를. 스펙터클의 역사에 가려진, 지금은 음이 소거된 목소리에게 편지가 메아리 되기를.
#0016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을 때 나를 찾아오는 작은 악어"
(...)
채워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되어도 좋을 그런 것들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작은 악어’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 편지에는 늘 수신인이 없다. 수취인불명의 편지를 영어로 ‘죽은 편지(Dead Letter)’라고 부른다.
#0015
"우리의 죽음은 말의 시작"
(...)
차학경은 『받아쓰기』라는 책을 썼다. 그리고 그래서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는다. 그들이 건넨 말들을 더 잘 읽어야 한다. 진심은 있다. 받아 적는다. 받아 적은 것을 또 받아 적는다. 더 많아 흘러넘칠 때까지 받아 적어야 한다. 사라지기 때문(...) 않도록.
#0014
"여기서 끝이란 말인가? 왕자볼펜의 운명은."
문장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모나미 153 연대기 [한정부록: 모나미 153 볼펜]” (...) 에 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작업의 한 축을 이루면서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니는 것은, 쓴다는 행위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다.”
#0013
"시간을 아껴서 너에게 낭비하고 싶어"
(...)
시간을 충분히 아끼지 못했고 시간을 충분히 낭비하지 못했다. 시간을 뭉치고 더 쓸모없게 낭비해도 괜찮은, 그런 마음. 목표 없이 허비해도 괜찮은, 아무 상관이 없는, 쫓기지 않는 분명한 마음. 개념도 없고 필사적이지도 않은. 낭비가 아닌 낭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