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됐더라.‘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드문드문한 기억 속을 헤집으려 한 대가는 곧장 귓가를 때리는 듯한 이명으로 돌려받았고, 몸은 더 둥글게 말려만 갔기에 다시 물을 수도 없었다. 순간, 그 정신 나갈 것 같은 상황 속을 가르고 누군가의 음성이 겹쳐 들리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손을 올려 두 귀를 틀어막았다. 이상한 행동이었지만 자각할 수 없었다. 목소리가 더 선명해지고 있었기에. 익숙한 목소리였기에.
‘누구지….’
‘누구지….’
‘누구….’
억지로 몸을 밀어 넣은 욕실. 마지막 기억은 이미 끊어진 지 오래였다. 목구멍 깊숙이에서 들끓어대던 것들에 속이 울렁거렸고, 몸을 둥글게 말고 입술을 당겨 물었던 것에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힘에 겨웠으며, 현실을 구분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럴 여유 따위도 없었고. 그냥 게워내고만 싶었다.
구분할 수 없다. 이건 내가 미쳐서일까. 더는 말을 듣지 않는 다리에서 오는 통증이 마치 처음 겪는 통증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가진 확신이 흔들렸고 그 결과로 얻은 것이 자신의 현실이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믿을 수 없었다. 모든 게 왜곡되기 시작했으니까. 내가 뒤집어쓴 이 피가 정말 너의 것이 맞는지, 손에 칼이라도 들었다면 당장이라도 베어버리겠다 속으로 삼켜댔던 과거의 한이 미친 순간에 타이밍 좋게 저를 흔들어대고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있는 건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심장이 느리게 뛸 때마다 기억은 계속해서 기울어져갔다.
유독 기울어진 날이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도, 저를 부르는 정훈의 음성도 어딘가 먹먹하게 들렸기에.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마치 물속에 있는 것처럼. 곧이어 심장박동소리가 귓가를 가득 메웠다. 살아있다고, 지독하게도 살아남았다고 속삭이는 듯해 외면하려 눈을 감자 순간 모든 게 기울어졌다. 저를 부르는 저 음성이 두려워질 만큼 가파르게. 이건 꿈일까, 아니면 현실일까.
너무 많은 걸 안고 가려 하는 걸까. 편히 숨 한번 쉬는 것조차 허락을 구하라 등 떠밀리는 게···, 참 빌어먹을 상황 같아서. (마른 웃음이 옅게 번진다. 모든 걸 다 내려놓을 각오. 한순간의 선택이 지나온 길을 무너트리는 길임을 모르지 않기에. 추락하는 자신을 잡아 세운 위태로운 이 손을, 방관할 순 없었다. 그마저 미끄러지고 있었기에. 짧은 침묵 끝에 손을 뻗어 정혁의 상처 위에 얹고는.) 너마저 버릴 생각은 하지 말고, 정혁아. 그래야 고민을 할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