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모
요즘은 남자고 여자고를 떠나 자기 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졌습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관리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들리곤 하죠.
이렇게 자신을 가꾼다는 건 단순히 사람들의 좋은 시선을 받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더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외모로 인해 누군가에게 안 좋은 말을 듣고 싶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었으며,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의 폭이 좁아지는 것도 싫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나를 더 망치게 될 수 있다는 건 알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예쁘다는 말 한 번 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어딜 가도 가장 예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보다 외모가 뛰어난 사람이 항상 존재하기에, 점점 더 외적인 것에 집착하게 되고 욕심은 끝도 없이 커져만 갑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지만, 포기하지 못한 채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계속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원하지도 않은 외적인 것에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었다는 걸 느끼게 되었고, 그보다 더 중요한 내면을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다른 사람보다 내가 못났다고 느껴지거나 평가를 당할 때면, 모든 게 무너져 내린 것처럼 힘들고 흔히 말하는 외모정병이 오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 감정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살면서 본인의 이상형과 100%일치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나요?
이 질문에 긍정문으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저에게 이상형을 물어본다면 100가지도 나열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완벽하게 흠 없는 사람을 만나기란 불가능에 가깝죠.
그렇기에 대부분에 사람들은 이상형에 완벽히 들어맞는 사람이 아닌, 어느 정도 부합하는 사람과 타협해 만나곤 합니다.
그렇다면 에세머가 이상형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일반적인 연애에서조차 거의 불가능했던 일이, 소수의 에세머들 사이에서는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처음 이 판에 들어왔을 때, 이미 많이 포기했던 이상형을 더 내려놓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조율하며 다른 기준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에세머를 만날 때에 단순히 외적인 조건 보다는, 그 사람이 나보다 머리가 좋고 똑똑한지, 성숙하고 배울 점이 많은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습니다.
다른 트친분들은 본인의 이상형을 어떻게 정의하셨나요?
- 이상과 현실
간혹 디엣 관계를 지나치게 이상화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섭의 입장에서는 돔이 언제나 흔들림 없이 상황을 통제하고, 감정의 영향을 받지 않는 완전한 형태로 존재하기를 기대합니다.
반대로 돔의 입장에서는 섭이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본인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장난감이 되기를 기대하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돔은 감정과 상황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며, 항상 일정한 형태를 유지할 수 없고
섭 또한 감정이 있는 사람으로서, 존중과 배려가 없는 상대의 모습에 마음이 지치고, 그 감정은 그대로 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로망은 연애에도 동일하게 작용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사랑의 형태를 상상하고, 상대를 그 틀에 맞춰 재단하고 끼워 맞추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경험이 적을수록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기반이 부족하여, 실제 관계보다 머릿속에 그려둔 기준을 우선시하게 되고, 계속해서 그 기준에 맞는 사람을 갈망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본인이 그린 틀에서 벗어나는 순간, 상대의 문제나 부족함으로 판단합니다.
진짜 문제는 말도 안 되는 자신의 로망인데 말이죠.
결국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완전한 형태를 기대하기보다는, 상대가 본인의 기준과 기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진정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면 이상이 아닌 현실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 인연과 감정
이 판에서 가장 쉽기도 하고, 동시에 가장 어렵기도 한 것은 바로 ‘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가볍게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쉽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신의 성향을 추구하고, 결이 맞으며, 마음까지 닿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애쓸수록 더 멀어지는 기분이 들 때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관계를 맺고 또 관계의 끝을 맞이하며, 그 과정 속에서 이어져 가는 인연들에 대해 비교적 초연한 저만의 관점을 한 번 적어보려 합니다.
인연과 관계에 대한 저의 핵심적인 관념은, 불교를 신앙으로 삼지는 않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시절인연’과 ‘인연즉연’의 개념과 닮아 있습니다.
모든 것은 인(因)과 연(緣)이 맞물려 생겨나고, 그 인과 연이 흩어지면 조용히 사라진다는 것.
시절인연이 맞으면 아무리 밀어내려 해도 인연은 만들어지고, 시절인연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손을 뻗어도 끝내 닿지 않는다는 관념입니다.
저는 모든 인연에는 저마다의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루어질 인연은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말하지 않아도 통하며, 숨 쉬듯 관계가 이어집니다.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인연은,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이 일부러 어긋나게 만드는 것처럼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엇갈리며 끝내 이어지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어렵게 닿았고, 분명 잘 이어졌다고 느꼈던 인연조차 끝을 맞이했다면, 그것 또한 시절인연의 일부였다고 생각하려 합니다.
그저 그만큼의 관계였고, 그만큼의 인연이었을 뿐이라고요.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성의 이야기일 뿐, 감정은 그렇게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감정은 그렇게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이성은 이해해도, 마음은 따라주지 않습니다.
인간은 감정을 완전히 억누를 수 없는 존재입니다.
눌러두면 눌러둔 만큼, 다른 방식으로 스며 나오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고개를 들며, 결국 더 깊이 아프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람은 알면서도 집착하고, 알면서도 흔들리고, 알면서도 놓지 못합니다.
‘집착즉고’라는 말처럼, 붙잡을수록 더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손을 놓는 순간의 공허함이 더 두려워서 끝내 놓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이성으로는 이미 끝났다는 걸 수십 번 이해했어도, 감정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모든 원리를 알게 된 이후에도, 목표를 ‘안 아프게’로 두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 ‘조금 덜 아프게’,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 이 시간을 견디고 버티는 것.
그 자체가 인간으로서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처세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부디 어떤 인연이 닿아 관계를 맺게 된다면,
그 순간만큼은 계산하지 말고, 도망치지 말고, 미련이 남지 않도록 마음을 다해 관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끝이 오더라도, 적어도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말이죠.
- 감정과 이성
대부분 사람들은 감정적 끌림으로 시작되어 감정으로 인연을 맺곤 합니다.
호감, 설렘과 같은 것들이 관계의 출발점이 되고, 그 감정이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관계를 시작하죠.
이런 방식이 틀렸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고, 저 또한 감정으로 시작하는 사람이니까요.
다만 감정은 생각보다 쉽게 흔들리고, 또 너무 쉽게 식어버리기도 합니다. 강하게 끌렸던 감정이 어느 순간 사라졌을 때, 붙잡아둘 다른 이유가 없다면 관계 역시 버틸 수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관계를 시작할 때 감정보다는 이성을 먼저 들여다보려고 하는 편입니다.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부터 시작해서 ‘그 사람’ 자체를 세세하게 분석하고, 내가 왜 이 사람에게 끌리는지, 감정이 사라져도 이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곤 해요.
특히 디엣이라는 관계를 생각하려면 기본적으로 ‘존경’이라는 키워드가 생각나야 하는데,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꼈는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찾은 후에야 비로소 관계를 고려하게 됩니다.
어쩌면 차갑게 보일 수도 있고, 계산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에게 이러한 이성적인 판단은 감정을 배제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감정을 오래 지켜내기 위한 장치에 가깝습니다.
감정으로만 이어지는 관계가 아닌, 이성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지점 위에 감정이 얹히는 관계라면 더 무겁고 안정적인 게 당연하지 않을까요?
물론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직 제게도 많이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더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제가 감당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가 6시간 채 남지 않았습니다. 2026년이 코앞까지 다가오니 이제야 성인이 된다는 게 실감이 나네요. 고작 몇 시간 후에 성인이 된다고 해서 바로 짠! 하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만, 법적으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나이가 되는 만큼 이제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12/31 몽 연말 정산 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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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머라면 한 번쯤 ‘내가 왜 이런 것에 즐거움을 느낄까?’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겁니다.
보통 사람들은 긍정적인 감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편안함과 안정감 같은 감정들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죠.
이런 사람들에게 행복은 대체로 ‘불편하지 않은 상태’에서 비롯되고, 긴장되거나 무서운 것은 피해야 할 감정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반면 에세머는 흔히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감정 또한 즐거움으로 느끼곤 합니다. 두려움이나 고통처럼 다소 강한 감정 속에서 오히려 편안함과 만족감이 들거든요.
그런 상황 속에서 스스로를 더 또렷하게 느끼게 되고, 이때의 감정은 자극을 넘어 살아 있다는 감각에 가깝습니다. 감정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에서야 비로소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실감이 들고, 그 안에서 안정감과 위안을 찾게 되는 거죠.
그래서 에세머에게 이러한 감정은 단순한 자극이나 일탈이 아니라, 즐겁고 행복해지기 위해 갖게 되는 ‘취미생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나 자신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이상하고 틀린 게 아니라 단지 감정을 느끼는 방식이 남들과는 조금 다른 것이라는 결론에 닿게 되었어요.
누군가는 잔잔한 온기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누군가는 긴장감과 해방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마음이 놓이듯이요.
‘그건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다.’ 라는 말처럼, 나도 틀린 게 아니라 남들과 다른 것이고, 나는 그저 나만의 방식대로 감정을 느끼고,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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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내가 왜 이런 것에 즐거움을 느낄까?’ 하는 스스로의 질문에 제 답을 적은 글입니다. 다른 분들의 생각과는 다를 수 있으니 편하게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