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을 쓰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다.
힘들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 살아온 것과 품위유지하고 일상에서는 마치 평범하다는 듯 살지만 그 뒤에는 다른 성적인 취향. 겉모습을 다르게 할때가 있지만 항상 같은 것은 마음뿐이다. 그걸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일지도. 서로가 그렇겠다.
편하게 좀 행복하자는데 왜케 따지는게 많냐면 반평생 함께할 사람 찾는데 이보다 더 중요한게 있냐고 반문한다. 상방이 얼마나 열린지보다 하방이 얼마나 탄탄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본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다름보다는 비슷한 유형의 사람을 찾고, 다름을 맞춰갈 수 있는 지를 본다.
숭고한척 하지만 그냥 입과 아래 뒤는 그 쓰임에 목적이 있고 그것을 이루었을 때만 가치가 있다. 사용됨으로써 망각하는 것을 일깨워 줬음에 망가지는 것은 오히려 감사할 일이고, 계속 사용해주서서 감사하단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오히려 이런 말이 없다면 건방짐에 매질과 훈육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아이의 고통이 나의 행복으로 등가될 수 있고 누릴 자격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모든것에 완벽할 수 없어서 노력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섭의 입장도 같다. 말하지 않아도 어떠한 노력과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할 줄 아는 아이가 되어야한다. 롱런할 수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고 이를 꿈꾼다.
3자가보면 맹목적인 가스라이팅처럼 보이는 것은 무조건적인 신뢰와 존경이 베이스가 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의 몸과 마음을 바칠 사람이 생각되는 주인이기에 의사가 없이 자동적으로 몸에 베인 행동이 나온다. 그럴만한 주인이 되야하고 계속 그런사람인지 스스로 되물어야한다. 그래야 유지된다
가끔은 퇴근하고 단한마디도 없이 조용히 보내고 싶을때가 있다. 벗어 자세 벌려 라는 단어도. 준비해 라는 연락만 해두면 문을 열기만 해도 이미 쓸 준비가 되어 있다. 청결하게 관리된 곳을 위로 쳐들고 옆에는 매질 도구과 기구들. 당연히 어떠한 신음도 없기에 눈물만 흘리고 입술을 깨문다.
퇴근하고 집을 들어서기전 침대에 벌린 상태�� 시켜놓으면 혼자 그자세로 유지할 아이를 생각한다. ���용한 공간에 혼자 벌린자세를 유지하고 기다리는 아이는 1분이 1시간처럼 느끼고 그 동안 자기의 위치를 다시한번 생각할것이다. 문이열리고 거침없이 사용되면서 그 생각이 맞음을 몸소느낀다.
나와 비슷하게 밖에서는 전혀 그럴것 같지 않은 올곧게 자라온 아이가 침대에 걸터앉은 내 앞에 다리를 벌리고 서있는 순간의 그 짜릿함. 둘만의 시작을 알리는 그 순간에서 손을 아래로 넣는 그 도파민은 잊을 수 없다. 그 뒤로 어색한 아이의 반응은 오히려 더 좋고 바라던 바이다.
같이 낮잠을 자고 일어나 잠이 덜깬상태로 뒤에서 껴안는다. 아래를 끝까지 밀어넣은 상태로 움직이지는 않고 맨몸을 맞닿은 상태로 온기를 나누며 수십분간 아무말없이 느낀다. 최고의 힐링이라고 할 수 있다. 힐링이 끝나면 허락없이 젖은 아이는 줄줄 흘리고 혼날새라 스스로 입으로 청소한다.
깜빡임 하나 없이 눈동자를 마주본채로 아주 천천히 표정의 변화와 눈의 찡그림을 만끽하면서 끝까지 밀어넣는다. 그 끝을 강하게 끊고 다시 아주 천천히 빼면서 또다른 표정을 느낀다. 그순간 사용해주셔서 감사하단 말을 듣고 속도와 강도를 서서히 높힌다. 그 끝은 시작과 정반대이다.
별들이 가득한 곳에 단둘이 맨땅에 드러누워 하늘을 보는데 아무말 없이 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관계. 어떤 별자리를 찾는지, ���떠한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빌었는지 묻지도 궁금해 하지도 않은채.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갈까? 라는 말을 하고 두손잡고 내려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