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당신에게 남긴 피로까지 내가 지울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 곁에서는 아무것도 견디지 않아도 되었으면 한다. 애써 웃거나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침묵마저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다. 당신의 상처를 고치겠다는 오만보다, 아픈 날에도 기꺼이 머물 수 있는 다정함을 건네고 싶다.
프시케는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려다 그를 잃었다. 나는 오히려 어둠 속에서만 드러나는 감각에 끌린다. 보이지 않기에 예민해지는 몸, 믿음과 두려움 사이에서 흔들리는 본능. 사랑이 상대의 진실을 알고자 한다면, 욕망은 끝내 알 수 없는 부분을 탐한다. 나는 그 경계에서 나를 발견한다.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던 곳이 반복된 접촉과 익숙해진 긴장 속에서 조금씩 예민해진다. 무심히 지나가던 손길에도 숨이 달라지고, 사소한 자극을 미리 의식하게 되는 변화가 흥미롭다. 본래 민감했던 곳을 찾는게 아닌 없던 반응이 생겨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꽤나 큰 만족을 남겨요.
손끝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상대의 표정이 조금씩 달라진다. 애써 참던 숨이 흐트러지고, 눈가에 물기가 고이는 순간에도 쉽게 멈추고 싶지 않다.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지 얼마나 더 많은 반응을 끌어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미리 허락된 한계 안에서, 그 작은 변화들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
어둠 속에 오래 머문 사람은 누군가 내미는 손조차 경계한다. 억지로 빛을 보여주거나 상처를 들춰낼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 사람이 가장 깊이 숨겨둔 곳까지 내 존재가 스며들기를 바랐다. 기다림이 다정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끝내 모든 것을 차지하려는 욕심인지는 아직 구분하지 못한다.
익숙한 불행보다 낯선 평온을 더 불편하게 느낄 때가 있다. 오랫동안 긴장 속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은 휴식이 아니라 불안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평온을 믿지 못하는 것은 행복을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에 익숙해진 마음이 경계심을 놓치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해받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가장 솔직한 모습은 감추려 한다. 이해받지 못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드러난 뒤 거절당하는 일이 더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외로움을 감수하면서 자신을 숨긴다. 들키고 싶은 마음과 끝내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