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로 매출 200억을 만든 회사가 있다.
이름은 뽀득.
근데 이 회사는 설거지를 대신해주는 회사가 아니다.
설거지를
노동이 아니라 공장과 물류의 문제로 본 회사다.
어린이집, 구내식당, 학교, 영화관은
매일 식기를 써야 한다.
문제는 설거지만 할 사람은 구하기 어렵고,
위생 사고는 리스크가 크고,
일회용품은 비용과 ESG 부담이 된다는 것.
뽀득은 이걸 바꿨다.
식기를 빌려주고,
쓴 식기를 수거하고,
공장에서 세척·살균·검수한 뒤
다시 배송한다.
공식 기준 고객사는 2,000여 개.
2023��� 기사 기준 월간 처리 식기는 2,000만 개를 넘겼다.
이 회사가 파는 건 친환경이 아니다.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사업장이 직접 관리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다.
ESG는 명분이���,
인력난은 진짜 구매 이유다.
뽀득의 본질은 설거지가 아니다.
기피 노동을
반복 가능한 인프라로 바꾼 것이다.
긴급 속보!!!!
오늘 클로드가 해킹이 아니라 엄청난 실수를 한 것 같은데, 근데 꽤 큰 실수인 것 같네요
대충 무슨 일이냐 물어보시면
개발자들이 코드를 배포할 때 보통 코드를 압축/난독화해서 올립니다. 사람이 읽기 어렵게 말이죠.
근데 개발 편의를 위해 "소스맵"이라는 파일을 같이 만듭니다 압축된 코드와 원본 코드를 연결해주는 지도 역할을 하는 건데
이 소스맵은 개발 환경 전용입니다. 배포할 때는 절대 같이 올리면 안 되는 금기 사항인데
엔트로픽이 그걸 실수로 npm 공개 패키지에 포함시켜 버렸습니다.
Claude Code의 전체 TypeScript 원본 소스 4756개 파일, 57MB가 누구나 다운로드 가능한 상태로 공개됐습니다.
그럼 이게 왜 문제냐? 라고 하시면
• 클로드 코드의 내부 로직, 프롬프트 처리 방식, 시스템 구조 전체가 노출
• 경쟁사(OpenAI, 중국모델 등)가 그대로 뜯어볼 수 있음
• 보안 취약점을 역으로 찾는 데 사용 가능
• 수년간 쌓은 핵심 엔지니어링 IP가 공짜로 풀림
얼마나 심각하냐고 물으신다면
해킹당한 것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나쁩니다. 해킹은 "몰래 가져간 것"이지만, 이건 엔트로픽이 스스로 공개한 것이니까. 법적으로도 애매해집니다.공개된 파일을 다운받은 사람을 처벌하기 어렵습니다
지금쯤 GitHub에 미러링 올라가고 있을 가능성 높겠네요.
AI 업계 핵심 제품의 소스가 통째로 풀렸으니 이게 사실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꽤 시끄러울 것 같습니다.
학교 담임 교사를 하다 보면,
학생의 지각, 결석 시에 부모님의 전화를 받게 된다.
어떤 부모님은 그냥 문자나 카톡으로 사유를 남기기도 한다.
아침 조회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난,
등교하지 않은 학생의 부모님에게 ���화를 건다.
문자를 했던 카톡을 했던 부모님과 통화를 한다.
그러면 느껴지는 게 있다.
학생이 진짜 아파서 못 오는 건지,
아니면 오기 싫은데 부모님이 거짓말을 하는 건지.
병 사유 없이 학교에 늦게 오거나 안 오면
미인정(예전 말로 '무단') 지각 또는 결석이 되기 때문에,
학생들은 아파야 하고, 그래야 병 지각 또는 결석 처리가 된다.
부모님 입장에서 무조건적으로 자녀의 미인정 지각 또는 결석을 남기고 싶지 않기 때문에, 아프다는 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부모의 목소리에서 어떤 울림이나 떨림이 느껴진다.
비언어적 표현이 귀에 들린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담임 교사인 나는 모르는 척하고 말한다.
"병원에 꼭 가서 진료 받고 진료확인서 보내 주세요."
그러며 학생은 병원 가서 진료 받고 진료확인서 받아 담임 교사에게 제출한다.
행정적으로는 깔끔한 처리이지만,
학부모와 학생에게는 그리 깔끔하지 못하다.
언제든 거짓을 통해 문서를 만들 수 있고
그걸로 사람이든 사회든 속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 어릴 적은 학교 빠지는 것은 상상도 못했지만,
지금은, 특히 코로나 이후의 학교는, 아프다고 하면 빠지는 게 당연한 일이 되었다.
아버지는 "학교 가라. 거짓말은 못하겠다"가 기본값이라면,
아들은 "다들 그렇게 하는데, 아빠는 왜 그것도 못해 줘?"가 기본값이다.
아들은 어쩌면 아빠를 원���하겠지만,
난 잘하셨다고 아빠를 응원하고 싶다.
이거 선의의 거짓말(white lie)이 아니다.
그저 거짓말이라는 속임수일 뿐이다.
"알겠습니다"가 아니라 "왜"라는 아들의 말은 그래서 뼈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