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대를 나의 주인으로 삼아야 할까?
...... 조금 억지스러운 말일 수 있으나
나는 그 자리에 자신을 먼저 올려보는 편이다.
상대의 여러 면모를 '내'가 이해하려 노력하고
존중 가능한지.
상대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지.
그게 전부 가능할 것 같다면
우선, 시작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
서브라는 이름표에 모든 걸 보고했던 때가 있었다.
하나뿐인 주인에게 전부를 보이라고...
그 행위에서 욕구는 느꼈을지언정 존경은 느끼지 못했다. 그저 형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지금에서야 하는 생각이지만,
존경심이 선행되어야 했던 게 아닐까?
보고는 거기서 파생되는 어떤 것.
🕯
아무 생각 없이 정말 한 없이 낮아지고 싶을 때가 있다.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대고
양손은 가지런히 앞으로 모아 올리고
그런 나의 위에는 차마 얼굴조차 볼 수 없는 상대가.
라는 생각을 하다가...
"내가 무릎 꿇은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 이라는 문장이 머리를 스친다.
어떤 상대를 나의 주인으로 삼아야 할까?
...... 조금 억지스러운 말일 수 있으나
나는 그 자리에 자신을 먼저 올려보는 편이다.
상대의 여러 면모를 '내'가 이해하려 노력하고
존중 가능한지.
상대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지.
그게 전부 가능할 것 같다면
우선, 시작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
세상에 절대적으로 완벽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서브가 객관적 절대자를 찾기 시작하면, 아마 그 사람은 자신을 담아줄 상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나를 자신의 돔으로 두기도 쉽지 않다.
나의 소중하고 중요한 관계를 쉽게 정할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
주인님이라는 단어는 묘하게 오글거리는 감이 있다.
그러니까 '우리 깜찍이 애기' 라던가 '허니, 나의 하늘 서방님' 같은 과함.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다시 생각해도 속이 반 ���도 뒤집히는 기분이 든다.
차라리
'싸우자 주인!' 하고 얼굴... 은 좀 그러니까
배에다 장갑을 던지자
🕯
어릴 적 악당이 주인공 일행을 무릎 꿇리는 부분에 오묘한 감각을 느끼던 아이는
내기를 통해 불합리한 처지가 되는 것에 두근거림을 느끼게 되었고...
탈선 하나 없이 그대로 자라버려서
지금은 일상의 순간 순간에 성향적 불균형이 가해지는 걸 설렘이라 생각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
한때는 내가 과연 서브가 맞는지 고민이 깊었다. 복종이라는 단어가 매력적이면서도 거북했기에.
심지어 기본 상태에 반발심이 있어서...
관계에 있어서 매사 조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깨달은 사실은
얌전히 말 잘듣는 건, 내 성향이 아니라는 것.
그렇게 순수 복종으로부터 벗어난 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