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우던 고양이가 3마리로 복제됨
어느 태국인이 '성게'라는 까만고양이를 잃어버림.
그래서 급하게 5천 바트의 사례금을 걸고 전단지를 붙이고 다님.
바로 연락이 와서 사례금을 주고 성게를 집에 데려옴.
성게가 좀 마른 것 같아서 얼른 집에 데려와서 밥먹임.
근데 다음날 찐성게가 태연하게 집에 돌아옴.
그래서 성게 두 마리를 키우게 됨.
근데 또 하루 뒤에 찐찐성게가 침대 밑에서 태연하게 등장함.
그래서 성게가 3마리 됨.
지금은 3마리 전부 잘 살고 있다고.
한국인들이 이 발언을 단순히 Love yourself로 여길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1. 타인종이 우리 인종의 피부색을 '원래 이렇다'고 단정했다.
운동선수라면 야외 활동이 많으니 구릿빛 피부인 게 당연하고, 나도 그 피부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피부색은 생활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고, 같은 동아시아인이라도 구릿빛일 수도 흰 피부일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동아시아인의 '원래' 피부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단정하나.
반대로 동아시아인이 '흑인의 원래 피부는 이렇다'고 규정한다고 생각해봐라. 그 즉시 인종차별 논쟁으로 번질 문제다.
2. 흰 피부를 지향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다뤘다. 여기엔 두 가지 오해가 겹쳐 있다.
하나는 흰 피부를 원하는 걸 마치 잘못된 것처럼 표현하는 것. 구릿빛 피부를 원해 태닝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듯, 흰 피부를 유지하려 선크림을 바르거나 화장을 하는 것도 똑같은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이 트윗이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해도, 한국인은 이미 같은 지적을 십수 년간 들어왔다.
다른 하나는 피부색을 계급이나 서열의 문제로 보는 것. 흰 피부 선호는 수백, 수천 년 이어져 온 미의 기준 중 하나일 뿐이고, 실제로 태닝을 즐기는 한국인도 많으며 하나의 유행이기도 하다. 게다가 매체가 다양해지고 글로벌화된 지금은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전반에 여러 미의 관점이 공존한다.
3. 그러니 이건 '한국과 일본이 또 피부 가지고 발끈한다'는 식의 문제가 절대 아니다. 십수 년간 반복돼 온, 외부에서 우리 외모와 피부색을 멋대로 규정하는 또 다른 형태의 인종적 시선에 대한 반박이다.
정작 문제는,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쪽이 그에 대한 이성적인 반박엔 귀를 닫고 노이즈만 키워, 본질은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