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닉스 2배 ETF가 문제라고 했더니 갑자기 미장을 건드림 ㅋㅋㅋㅋㅋ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거래가 국장 50% 이상의 거래대금을 독식하면서
한국 주식시장 전체를 흔들어 나락보내는 현상이 지속되자
이에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금융위원회가 갑자기 미장의 테슬라, 구글, 엔비디아 등,
해외 레버리지ETF에도 같은 규제방안을 적용해버림.
아니 엔비디아 때문에 국장이 나락가는거냐? ㅋㅋㅋ
갑자기 무슨 권리로 미장 거래 상품을 제한함?
코스피 규모가 작은데 삼전닉스에만 돈이 쏠리고,
그 현상을 삼전닉스 레버리지가 강화하는게 문제라구요.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문제의 본질을 파악 못한 정부.
타성에 젖은 세계관의 껍질을 깨고 나와 홀로 비판적 이성을 견지하는 일은 지독하게 고단하고 외로운 과정이다. 그 두려움의 무게를 나는 누구보다 뼈저리게 이해한다 자부한다. 나 역시 한때 그럴싸한 감정에 취해 있던 이른바 패션 좌파였기 때문이다. 내 주변을 가득 채웠던 지인들의 눈치가 보여, 속으로는 이것이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탄식하면서도 비겁하게 입을 닫고 침묵했던 부끄러운 과거가 내게도 있다.
그 알량한 소속감의 매트릭스를 찢고 나와 중도 우파의 황량한 벌판으로 걸어 나오는 과정은 꽤나 혹독했다. 애초에 내 인생의 유불리와 안락함을 따질 요량이었다면, 그냥 두 눈 질끈 감고 좌파 진영에 머물렀을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성정이었다면 애초에 정치에 대한 글을 쓰지도 않았을 터다.
그 모든 안락한 연대를 내던진 이유는 단 하나다.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무지성과, 그 맹목이 빚어낸 진영주의라는 괴물이 뼛속 깊이 역겨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그토록 혐오해서 도망쳐 나온 그 맹목적인 무지성의 괴물을 지금 다시 마주하고 있다.
서병수, 진종오가 사경을 헤맸던 부산 돌려차기 생존 피해자 면전에서 웃음을 띠며 발길질 농담을 주고받은 참혹한 촌극. 정치인 이전에 인간으로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조차 거세된 이 폭력 앞에서, 정상적인 시민이라면 마땅히 분노하고 매서운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 사태를 대하는 몇몇 우파 지지자들의 반응은 절망스럽다. 상처 입은 피해자의 피눈물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자신들만의 진영 논리만을 작동시킨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도덕적 기준이 작동해야 할 자리에, 누구의 계파냐 아니냐를 따지는 얄팍한 셈법만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글이 어떻게 쓰이건 일단 내 손을 떠난 후엔 통제하거나 참견하기 어려운게 당연한 이치겠지만 그래도 제발 나의 활자를, 진영이나 정치인을 호위하기 위한 맹목의 무기로 이용하지는 마시라.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내가 펜을 벼리는 이유는 단지 공화국을 망가뜨리는 이재명과 민주당의 폭주가 끔찍하게 싫고 그것을 멈춰 세우고 싶을 뿐이다. 물론 유심히 호의를 가지고 지켜보는 사람은 있지만. 아직 내 지성과 양심을 걸고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온전히 지지할 만한 '현직' 정치인을 현재로선 찾지 못했다.
작금의 국민의힘 역시 그저 민주당이라는 최악을 막기 위한 차악일 뿐, 남에게 자랑스레 떠먹여 줄 수 있는 수준의 대안이라고는 단언하지 못하겠다는 말이다.
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해 달라고 쓰는 글이 아니다. 다만, 내가 좌파 생태계에서 진저리를 치며 구역질을 느꼈던 그 무지성적인 맹신과 제 식구 감싸기를, 우파의 이름표를 달고 강요하지는 말아 달라는 뜻이다.
정치인을 아이돌처럼 숭배하며 명백한 잘못조차 감싸고도는 순간, 좌파들이 하는 것과 다름없이, 시민이 아니라 스스로 권력의 노비가 되는 길을 택한 것이다. 내 편의 악행을 꾸짖지 못하는 진영은 결국 반대편의 악을 심판할 자격조차 잃게 된다.
잊지말자. 정치가 정상화되고 제 위치를 찾는 길은, 정치인이 그저 우리의 권한을 잠시 위임받은 일종의 서비스업 종사자일 뿐이라는 걸 모든 국민들이 깨닫는 길 뿐이다. 그리고 타인의 고통보다 계파의 이익을 먼저 계산하는 낡은 진영론자들에게 내어줄 곁방은, 나의 글과 삶 그 어디에도 없다.
텅 빈 금고 앞에서 비상벨을 누르면서도, 정작 그 금고를 거덜 낸 장본인인 '이재명'의 이름 석 자는 절대 입에 올리지 못하는 전임 김동연과 현직 추미애의 묵언수행이 눈물겹다.
추미애가 짐짓 비장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고 “이 시간부로 경기도 재정 비상 상황을 공식 선언한다”고 외쳤다. 국가의 축소판이라는 경기도의 곳간이 바닥났다는 이 심각한 선고 앞에서, 상식적인 시민들은 도리어 솟구치는 헛웃음을 참아내야만 했다. 범인이 누구인지 온 국민이 다 아는데, 정작 삿대질을 하는 자들만 범인의 이름을 투명 인간 취급하는 완벽한 블랙코미디였기 때문이다.
작금의 경기도 재정을 탈탈 털어 껍데기만 남겨놓은 이재명 시절의 정책과 그 결과를 아주 건조하게 팩트로만 복기해 보자.
중앙정부가 재정 부담을 우려해 코로나 재난지원금 소득 하위 80% 선별 지급을 결정했을 때, 이재명은 자신의 정치적 선명성을 돋보이게 하겠다며 도의 예산을 헐어 100% 보편 지급을 밀어붙였다. 수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지자체 혈세가 단발성 매표 행위의 불쏘시개로 허공에 증발했다.
'청년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무차별적인 현금을 살포하고, '지역화폐' 발행액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며 10%에 달하는 캐시백 인센티브를 도비와 시군비로 땜질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청년기본소득으로 풀린 푼돈은 온라인 불법 도박 자금이나 사행성 게임의 판돈으로 유입되는 부작용을 낳았다. 지역화폐 역시 조폭과 사기꾼들이 수천 명의 유령 회원을 동원해 이른바 '깡'을 저질러 수십억 원의 세금을 편취해도 활기만 돌면 된다던 그 아니였나.
여기에 방점을 찍은 것이 이른바 '경기 극저신용대출'이다. 신용이 낮은 이들에게 심사도 없이 세금으로 대출을 퍼주었지만, 그 결과는 기하급수적인 연체와 참혹한 미회수율이었다. 애초에 받을 생각조차 없었던, 대출의 탈을 쓴 악성 무상 복지였다. 도민의 고혈을 사실상 매몰 비용으로 탕진해 버린 것이다.
이 화려한 돈 잔치를 벌이고 범죄의 판돈을 대주기 위해, 그는 미래 세대의 비상금인 '지역개발기금'을 마른수건 쥐어짜듯 끌어다 썼다. 겉으로는 채무 제로를 외치며 탁월한 행정가 행세를 했지만, 실상은 지자체 내부의 기금을 헐어 쓰는 '내부 차입'의 폭증이었고, 후임자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할 완벽한 재정 분식회계의 늪이었다.
자신의 대선 가도를 위한 융단으로 경기도의 금고를 헐어 쓴 포퓰리즘 잔치. 그 무자비한 빚잔치의 폐허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이 이재명 다음으로 부임한 전직 지사 김동연이다. 경제 관료 출신인 그가 텅 빈 장부와 폭증한 내부 부채를 보며 얼마나 속이 타들어 갔겠는가. 그럼에도 맹주의 흠결을 지적하면 즉각 ‘수박’으로 몰려 척살당하는 살벌한 진영의 룰 때문에, 그는 차마 앓는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지금껏 묵묵히 폭탄 돌리기를 견뎌왔다.
그런데 이제 와 추미애가 요란하게 ‘재정 비상’의 사이렌을 울린다. 곳간이 비었다고 핏대를 세우면서도, 정작 그 문을 열어젖히고 돈 잔치를 벌인 맹주의 이름은 철저히 생략한다. 노무현시절 보여줬던 익히아는 그 성격에 “대체 어떤 인간이 재정을 이따위로 거덜 내고 도망갔느냐”며 시원하게 쌍욕이라도 박고 싶었을 텐데, 수령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으니 그 입술을 얼마나 꽉 깨물고 참았겠는가. 원인 제공자는 덮어둔 채 애먼 허공에 대고 비상사태만 읊조리는 그녀의 그 눈물겨운 인내심과 혀의 통제력에 진심 어린 경탄을 보낸다.
대한민국이 겪을 재정상황의 미리보기라는 게 섬뜩하지만, 표를 돈으로 사는 얄팍한 매표 정치가 낳은 필연적 결말이다. 권력자는 지자체의 금고를 헐어 자신의 정치적 몸값을 부풀린 뒤 유유히 청와대로 엑시트(Exit)했고, 남겨진 자들은 범인의 이름표를 숨긴 채 텅 빈 금고 앞에서 남 탓만 늘어놓고 있다.
나라 곳곳이 무너져가는 와중에도, 중국인을 중국인이라 부르지 못하는 언론이나, 이재명의 실책을 이재명의 짓이라 부르지 못하는 추미애나, 호부호형을 하지 못해 입을 틀어막은 홍길동이 되기는 전 국민이 매한가지다.
이재명은 이전에도 대장동 원주민이 고작 300명이라고 헐값에 토지를 몰수하고 내쫓았다....
이번에는 고가주택 보유자가 전국민중에 0.4% 라고 그들에게는 세금을 징벌적으로 부과해도 무방하다고 씨부린다.
대장동 원주민들은 본래 대장동 토지를 지켜온 주인들이고
0.4%의 고소득층은 대한민국 경제를 움직이며 많은 상속세와 소득세를 국가에 부담해 온 핵심 기여층이다.
이재명을 내쫓아야 공정과 상식의 세상이 돌아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오늘 두 가지 발언을 했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는 비정상적 형사사법 시스템의 정상화이며 사필귀정이라는 것. 그리고 경찰의 수사권 독점과 비대화 우려가 있으니 관련 법령 정비 등 후속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사실상 보완수사권 폐지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표명이다.
나는 두 번째 발언에 방점을 찍는다. 그리고 그 순서를 문제 삼는다.
자동차로 보면 간단하다. 마력이 커질수록 브레이크도 같이 커져야 한다. 경차 브레이크를 단 차에 수백 마력을 얹으면 그건 성능이 아니라 사고다. 고성능차는 엔진만 바꾸지 않는다. 디스크와 캘리퍼, 타이어까지 통째로 다시 설계한다. 잘 서는 차라야 빨리 달릴 수 있으니까.
지금은 엔진을 먼저 키우고 브레이크는 나중에 달겠다는 격이다. 비대화가 우려된다면 그 견제 장치는 폐지 이전에 마련됐어야 한다. 제도는 한번 자리 잡으면 되돌리기 어렵고, 그사이 벌어지는 일의 비용은 국민이 진다.
그럼 지금 그 경찰의 브레이크는 어떤 상태인가? 최근 몇 주간의 기사만 봐도 답이 나온다.
거제왕이라 불리는 간부는 36년 중 34년을 한 지역에서 근무했고, 부적격 판정을 받고도 요직에 앉았고, 인사철도 아닌 때 복귀했다. 강남서에서는 팀장이 유흥업소에 신고자 정보를 넘겼다는 의혹이 나왔다. 수사 정보가 참치집 밥자리에서 오갔다는 보도도 있었다. 문제는 무궁무진하다. 과연 보도된 이사건이 전부일까?
공통점이 하나 있다. 전부 언론 보도로 드러났다는 것.
내부에서 먼저 걸러진 게 아니다. 거제왕 건도 36년간 조용하다가 보도가 나가고 나서야 감찰이 붙고 수사로 전환됐다. 조직 안에서 모를 수 없는 일이었는데도 그랬다. 자정이 아니라 외부 압력이 열어젖힌 결과다.
왜 이럴까. 공직 조직의 생리 때문이다.
내 관할에서 사건이 커지면 관리 책임을 진다. 조용히 넘기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그러니 고위직 입장에선 문제를 드러내는 것보다 덮는 쪽이 유리하다. 보신이 기본값이 되는 이유다. 그래서 대통령이나 상급기관이 한마디 해야 움직이고, 외부에서 터져야 마지못해 칼을 뽑는다.
그런데 여기서 진짜 문제가 나온다. 감찰 부서장 자신의 의혹이다.
서울청 감찰을 총괄하는 청문감사인권담당관이 가해자로 지목된 간부 측 변호인 2명을 따로 만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 변호인들은 담당관의 경찰대 후배이자 그가 교수로 있을 때 입학한 제자였다. 그리고 그 만남 직후 감찰 간부회의에서 갑질 피해자를 감찰하라는 취지의 발언이 나왔고, 실제로 피해자 감찰이 시작됐다. 내부에서 보복성 감찰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게 왜 다른 사건들보다 중요한가. 감찰은 나쁜 경찰을 걸러내는 최후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수사관이 잘못하면 감찰이 잡는다. 그 전제 위에서 수사 권한이 유지된다. 그런데 그 감찰의 수장이 인맥으로 움직인다면, 전제 자체가 무너진다. 브레이크를 점검해야 할 사람이 브레이크를 고장 내는 상황이다.
일반인 입장에서 이게 무슨 뜻인지 구체적으로 그려보자.
내가 사기를 당했다. 큰돈을 잃었고 증거도 있어서 고소장을 냈다. 그런데 조사가 이상하다. 참고인도 안 부르고 몇 달째 진척이 없다. 알고 보니 가해자가 담당 수사관과 아는 사이다. 술자리를 같이하는 사이라는 얘기까지 들린다.
그래서 감찰에 민원을 넣는다. 이 수사관이 사건을 뭉개고 있다고. 여기까지가 제도가 상정한 정상 경로다.
그런데 그 감찰 부서장이 수사관과도 친하고, 가해자 측 변호사와도 선후배 사이라면 어떻게 되나.
민원은 접수되고 형식적으로 검토된 뒤 문제없음으로 끝난다. 그 과정에서 내가 민원을 넣었다는 사실은 수사관에게 전달된다. 그때부터 내 사건은 더 안 굴러간다. 심지어 나는 무고나 명예훼손으로 역공을 당할 수도 있다. 실제로 신고한 여경이 오히려 감찰 대상이 된 사건이 보도됐다. 남 얘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뭔가. 언론 제보다.
기자에게 연락하고, 커뮤니티에 글을 쓰고, 화제가 되기를 기다린다. 그런데 언론은 모든 사건을 다룰 수 없다. 자극적이고 화제성 있는 것만 다룬다. 내 사건이 그만큼 극적이지 않으면 아무도 안 본다. 그러면 나는 그냥 묻힌다.
이게 지금 구조의 실체다. 화제가 되는 피해자만 구제받고, 나머지는 운에 맡겨진다.
그리고 방치된 비위는 사라지지 않고 자란다. 한 번 덮이면 당사자는 이 정도는 넘어간다고 학습하고, 주변은 말하면 손해라고 학습한다. 그렇게 쌓인 결과가 36년짜리 거제왕이었을 거다.
그러니 후속조치의 핵심은 감찰이어야 한다.
감찰 기구를 어떻게 독립시킬지, 사건 관계인 접촉을 어떻게 차단하고 위반 시 어떻게 처벌할지, 부실 수사 이의를 누가 심사할지, 신고자 보호를 어떻게 실효화할지. 외부 압력 없이 자동으로 작동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대통령이 지시해야 움직이는 시스템은, 대통령이 다른 데 신경 쓰는 동안 멈춰 있다.
브레이크를 달겠다면 그게 실제로 잡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지금 감찰은 그 점검을 통과할 상태가 아니다. 그리고 이건 남의 일이 아니다. 언젠가 내가 고소장을 들고 서게 될 자리의 얘기다.
@LifeBeLikeThatX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10억 아파트도 필수는 아니고 사치가 껴있는 거 아닐까요? 얼마 이상은 사치고 얼마 이하는 아니다 이런 잣대 자체가 주관적인 것 같아요. 소득이 더 낮은 사람들 눈에선 10억 아파트 사는 사람도 적은 세금 내면서 사치로운 데 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이재명 비판한 이유
코스피가 6월 고점에서 40% 빠지자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인 45.9%로 주저앉음.
이 광경을 영국 FT가 콕 집어 보도했는데 진단이 매서움. 이 대통령만큼 자기 정치 운명을 증시에 걸어본 한국 대통령은 없었다는 것. 나라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음.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 대선 때 스스로 '휴면 중인 개미'라 부르며 임기 말까지 코스피 5000 찍겠다고 공약을 걸었음.
지수가 10년 넘게 2000선에 갇혀 있던 걸 생각하면 겁 없는 약속이었고, 부동산에 묶인 돈 빼서 주식으로 옮기라고 국민 등을 떠밀었음.
6월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 실적 타고 코스피가 8000선을 넘볼 땐 "그래도 저평가"라며 부채질까지 함.
근데 여기서 판이 뒤집힘. 코스피가 6000선으로 고꾸라지자 대통령이 직접 키운 기대가 고스란히 부메랑으로 돌아옴.
수천 명이 물렸고 레버리지 태운 사람들은 마진콜 맞았음. 개미들은 정부가 불 질러놓고 발 뺀다며 등 돌리는 중.
특히 5월 말 금융당국이 처음 열어준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가 변동성을 키웠다는 원성이 커서 금감원장까지 유감을 표했을 정도. 신율 교수 말마따나 어느 정도 자초한 문제인 셈.
증시를 국정 성과로 내건 순간 주가가 곧 성적표가 됐는데, 그 칼끝이 지금은 자기를 향하고 있다는 게 FT가 찌른 대목.
매우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음.
■징벌적 증세를 거두시길 바랍니다
이재명 대통령님께.
지난해 대선 유세장에서 대통령님은 '코스피 5000'을 손에 들어 보이셨습니다. 자산이 우상향하는 나라, 국민이 시장을 통해 부를 쌓는 나라를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취임 1년, 서울 아파트 평균 거래가격이 2억 원 뛰는 사이, 대통령님이 국민 앞에 내민 것은 자산 증식의 사다리가 아니라 세금 고지서였습니다. 8월 3일 발표된 두 번째 세제개편안을 두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집은 사는(buying) 것이 아니라 사는(living) 곳이다, 거주 중심의 시장을 만들겠다.' 이 개편안이 내세운 원칙입니다. 그런데 그 원칙이 겨눈 과녁은 투기꾼이 아니라 실수요 1가구 1주택자입니다. 대토론회까지 열어 여론을 수렴하는 시늉을 하셨지만, 결론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증세였습니다. '답정너'라는 냉소가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가장 뼈아픈 건 39년을 지탱해온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손본 대목입니다. 보유 기간 공제를 없애고 거주 공제만 남겼습니다. 장특공제는 원래 수십 년 물가 상승으로 부풀려진 명목 차익까지 세금을 매기는 불합리를 덜어주려 만든 제도였습니다.
그 취지를 믿고 한 채를 오래 지켜온 국민에게, 이제 와 '거주하지 않았으니 공제를 걷어가겠다'고 하는 것은 국가가 스스로 세운 약속을 뒤집는 일입니다. 공제 한도까지 10억 원으로 조이면, 집을 팔아 세금을 치르고 나면 같은 동네는커녕 지금 사는 곳으로 되돌아오기도 버거워집니다.
종부세는 또 어떻습니까. 기본공제를 12억에서 14억으로 올려 집값 상승을 반영했다고 하시지만, 공정시장가액비율은 70%로 끌어올리고, 그동안 3주택 이상 다주택자에게만 물리던 중과세율을 1주택자에게까지 씌웠습니다. 비거주 1주택은 공제가 9억으로 쪼그라듭니다.
마포래미안푸르지오 84㎡ 한 채의 보유세가 올해 416만 원에서 개편 후 777만 원으로, 무려 86% 뛴다는 시뮬레이션이 나왔습니다. '똘똘한 한 채'를 겨눈 정밀 타격이 아니라, 서울에 집 한 채 가진 평범한 중산층을 향한 무차별 포격입니다.
살아도 세금, 팔아도 세금. 대통령님, 이건 퇴로 없는 외통수입니다. 유예기간을 뒀으니 팔 기회를 준 것이라 하시지만, 뒤집어 보면 '지금 안 팔면 2~3년 뒤 폭탄이 터진다'는 협박과 다르지 않습니다. 세금 낼 현금이 없는 고령 은퇴자에게 평생 산 집을 떠나라 등 떠미는 정책, 불가피하게 실거주 못한 1주택자에게 무리한 입주를 강요하는 정책. 이것은 헌법이 보장한 거주·이전의 자유를 정면으로 건드리는 위험한 발상입니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건, 이 길을 이미 가본 정부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노무현·문재인 정부는 다주택자에게 징벌적 세금을 물리며 수요를 누르는 데 매달렸고, 공급을 외면한 그 증세의 끝은 역대급 집값 폭등이었습니다. 늘어난 보유세는 전월세로 전가돼 서민 주거비를 밀어 올렸고, 무거워진 양도세는 매물을 잠가 거래를 얼렸습니다. 지금 개편안이 향하는 곳도 정확히 그 자리입니다.
대통령님. 집값이 불안한 진짜 이유는 국민이 집을 '너무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살고 싶은 곳에 집이 '충분하지 않아서'입니다. 시장이 원하는 자리에 제때 주택을 공급하는 일, 그 정공법을 놔두고 세금으로 국민을 편 갈라 겁주는 손쉬운 길을 택하신다면, 정책의 단기 효과는 얻을지 몰라도 조세의 예측 가능성과 국가에 대한 신뢰라는 훨씬 값비싼 것을 잃게 될 것입니다.
부디, 정책 실패의 청구서를 국민에게 떠넘기는 징벌적 증세를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LifeBeLikeThatX 애초에 자산가치에 적당한 세금이라는 건 무슨 근거로 정하는 거에요? 이만큼 가격대의 부동산에 이만큼 세금이 적정치다, 라는 근거가 어디에 있어요? 이미 부동산 관련 전체 세율이 oecd 국가 중 1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배를 올리는 게 어떻게 적정치가 될 수 있지?
호가방어를 잘 하시면서 집을 잘 판매하셨다니, 꼭 이야기하고 싶던 이 부분은 꼭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공간이란게 누구에게나 그렇듯 물리적 부피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집이란, 지난한 노동의 땀방울이 스며든 벽지이자 매년 조금씩 자라나는 아이들의 키를 문틀에 새겨 넣는 시간의 보관소다. 누구나 그렇게 은행의 문턱을 넘어 빚을 지고, 불안한 삶의 터전을 간신히 마련한다. 세월이 흘러 그 낡은 콘크리트 더미에 자본의 온기가 돌아 노후의 작은 방패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 그것은 타락한 탐욕이 아니라, 혹독한 세계에서 가족을 지켜내려는 지극히 애틋하고 보편적인 생존의 방식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이 소박한 인간의 냄새는 오직 한 줌의 현금을 두둑히 보유한 일부 부자와 외국인들에게만 허락된 사치스러운 낭만이다. 이재명이 분당의 아파트를 29억 원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한 편의 감성적인 소동은, 그들이 대중의 삶을 얼마나 오만하게 내려다보고 있는지 증명하는 한 편의 서글픈 희극이다.
중앙일보가 처음 대통령의 아파트 판매를 다룬 기사는 건조했다. 1998년 3억 6천만 원에 매입한 집이 29억 원이 되어 25억 원의 차익을 남겼다는 담담한 팩트였다. 그러자 이재명은 불쾌감을 감추지 않으며 활자를 교정하기 위해 나섰다. 기사가 악의적이라며 항변을 쏟아낸 그의 입술에서는 한 편의 문학적인 대사가 흘러나왔다. IMF 시절의 시린 찬바람 속에서 처음 장만했던 집, 아이들을 키워낸 애착 인형 같은 공간. 자신은 차익을 노린 투기꾼이 아니라, 오직 부동산 정상화의 모범을 보이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평생의 추억을 내놓은 구도자라는 것이다. 결국 기사의 제목은 시세 차익이라는 세속의 단어를 지워버린 채, '부동산 정상화 의지'라는 고결한 찬양가로 모습을 바꾸었다.
나는 이 지점에서 좌파 특유의 정치 공학이 뿜어내는 깊은 역겨움을 마주한다. 부의 독점보다 끔찍한 것은 '서사의 독점'이다. 도대체 이 땅에 시세 차익만을 목적으로 빈집을 사 모으는 이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일반적인 서민들도 이재명과 똑같이 대출서류에 도장을 찍으며 밤잠을 설치고, 그 집에서 아이들을 키워내며 눈물겨운 삶의 서사를 써 내려간다.
그런데 왜 평범한 이웃이 빚을 내어 집을 사면 국가 경제를 병들게 하는 투기꾼으로 전락하여 징벌적 세금의 과녁이 되고, 이재명이 25억의 차익을 실현하는 과정은 거룩한 희생과 눈물겨운 가족애로 칭송받아야 하는가. 타인의 자산 증식은 척결해야 할 자본주의의 병폐로 매도하면서, 자신들의 막대한 부는 '추억'과 '낭만'이라는 이름의 무균실에 가두어 탈색시킨다. 나의 이익은 한 편의 아름다운 수필이고, 너의 이익은 천박한 물욕이라는 이 지독한 독선. 대중으로부터 도덕적 우월감은 물론이거니와 평범한 삶의 서사마저 빼앗아 버리려는 그 가학성이야말로 좌파 정치의 진짜 민낯이다.
이 서정적인 신파극의 장막을 걷어내면, 그 뒤편에는 너무도 차갑고 영리한 자본의 셈법이 자리하고 있다. 추억 운운하며 모범을 보이겠다던 그 우아한 이별의 이면에는, 매수자에게 17억 7천만 원의 근저당을 설정해 주는 완벽한 사적 레버리지의 세계가 숨어 있었다. 재건축 조합원 지위를 확보해야 했던 매수자의 절박함과, 29억이라는 최고점을 온전히 받아내려는 매도자의 이해관계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훌륭한 거래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문법을 그 누구보다 탁월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그 서류에 도장이 마르는 동안, 거리는 혹독한 겨울을 맞고 있었다. 평범한 3040 세대들은 길거리에 나앉지 않기 위해 수천만 원의 전월세 대출을 구하려 꽉 막힌 은행 창구에서 고개를 숙였다. 서민들이 딛고 올라설 대출의 사다리를 그토록 무참히 불태워버린 권력자가, 정작 자신은 17.7억이라는 거대한 사적 융통의 봄날을 유유히 거닐고 있었던 것이다.
타인의 땀 냄새 나는 욕망은 가난의 평등 속에 가둬버리고, 자신들의 부와 추억만을 신성한 제단 위에 올려놓는 이 우아한 야만 앞에서 우리는 조용히 사유해야 한다. 서민의 생존줄인 대출을 철저히 틀어막은 채, 입맛대로 활자를 고쳐 쓰며 읊조렸을 그 고결한 변명들을 우리는 언제까지 인내해야 하는가. 권력이 독점한 그 위선적인 서사의 장막을 우리 스스로 찢어내지 못한다면, 평범한 당신이 집을 지키기 위해 견뎌온 그 눈물겨운 시간들은 영원히 투기라는 이름의 죄악으로 기록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