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그라 원료인 실데나필은 원래 고혈압 치료제로 개발됐다. 하지만 고혈압 치료 효과가 부족했다. 그런데 임상실험 중 의외의 효능이 발견된다. 높은 확률로 복용자의 성기를 발기시킨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결국 1998년 발기부전 치료제로 시판되기 시작했다.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인물이 만든 비트코인은 원래 p2p 거래가 가능한 전자 화폐로 고안됐다. 하지만 써 보니 현금이나 신용카드 같은 현대 지급결제 수단처럼 사용하기에는 사용성이 떨어졌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과정에서 의외의 자산성이 증명된다. 미국이 지배하는 스위프트 체제를 우회해서 자산을 어떠한 방해 없이 옮길 수 있는, 주인 없는 독립적인 금융 네트워크라는 가능성이 확인된 것이다.
모든 자산은 상황에 따라서 가치가 상대적으로 변화한다. 지금의 비트코인은 인프라 네트워크로서의 가치를 가지는 무형자산에 가깝다. 그리고 그 자산의 가치는 네트워크의 원료 역할을 하는 비트코인에 집약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아직도 이걸 진지하게 p2p 전자 화폐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상대적으로 소수다.(라이트닝 네트워크 등을 이용해서 화폐로 큰 불편함 없이 사용은 가능하다)
비트코인 현물 ETF가 SEC 승인을 받게 되자 뜬금없이 '사토시는 실패했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실데나필이 고혈압 치료제가 아니라 비아그라가 되었다면 그 연구는 실패한 것일까. 그리고 이 상황에 최초 기안자가 실패했다는 지적을 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비트코인은 사토시가 기획했을 뿐, 이미 사토시의 손을 떠난지 오래인데 말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월 11일 통화정책방향 간담회에서 "비트코인은 이제 하나의 투자재로 자리를 잡았다"며 "지금 상장이 됐으니까 변동폭을 보면서 비트코인 ETF가 투자 자산으로서 어느 정도 가치가 있고 안정성이 있는지 시험할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 비트코인은 이제 새로운 계기를 맞았고,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장에서 위험자산으로서 적합치 않다는 판정을 받으면 외면당하고 잊혀질 것이다.
점쟁이도 미래를 다 맞출 수는 없다. 장삼이사의 예측은 언제나 틀릴 수 있는 것이니, 지나간 예측에 억지 동그라미를 치기 보다는 당장 해야 할 일을 잊지 않고 찾는 태도가 중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 정도의 유연함을 가진 인물이 중앙은행 총재로 있다는 것이 새삼 다행스러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