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예쁜데 너무 금방 없어져…” 어제 동작대교 난간에서 불꽃을 보던 아이가 중얼거렸다. 맞아, 짧은 시간동안 예쁠 수 있어서 아름다운 거야. 너도 언젠간 매일매일을 화려한 축제처럼 살 수 없음을 알게 될 거야. 활짝 피어 펑 타올랐다가 어느새 금방 사그라드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위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있었다. 당신은 가만히 눈을 내리며 속삭였지만 찰나의 망설임이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이라는 것을. 다시 의미를 찾고자하면 한 번도 상관없는 순간은 없었다. 적막한 숲속에서 시간도 잊은 채 헤매이다 문득 올려다 본 밤하늘, 빛이 조용히 춤추고 있었다. 젖은 눈을 감는다.
간절한 소망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서 ���가 취할 수 있는 액션은 모두 해보는 삶. 우연의 불시착으로 하여금 길들여져 익숙해져 그대로 눌러앉게 되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잠든 밤, 홀로 들판을 서성이며 잔뜩 벼려진 감각을 애써 누르고 무디게 함. 잃어버린 유토피아는 여기보단 어딘가에.
나에게는 고인의 숱한 작품 중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는 <안녕하세요 하나님>이다. 병태가 반 친구들과 함께 가고싶었던 경주, 한참의 세월이 지나 첨성대에 올라 반짝이는 별을 스케치북에 맘껏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이제 아픔 없는 곳에서 영면에 드시길 기도드립니다.
아이들 많은 곳에서 잘 지내길.”
오늘 아침 출근길에 라디오에서 한 사연을 듣고는 눈 앞이 뿌얘지더니 울컥 나도 만원 전철에서 눈물을 쏟았다. 바로 고개를 들고 천장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최근 이별하는 것/작별의 순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였을까. 애틋한 감정에 격하게 공감되었나보다.
1795님의 사연:
“유학 시절, 대형 매장에서 충동 구매했던 대형 곰인형이 있습니다. 이사비가 더 들어도 두고 올 수가 없어서 같이 귀국했습니다. 거실 한 켠에 앉혀놨죠.
평수를 줄여 이사를 해야 해 이런저런 물건을 처분하던 ��, 이 아이도 중고 거래 플랫폼에 올렸습니다. 임자가 나타났습니다.
새 주인은 소아과 선생님. 병원 대기실에 둔다고 합니다.
좋은 차에 오르는 녀석에게 잘 가라고 하고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눈물이 쏟아져 한참을 울었습니다. 중년의 나이, 인형을 보내고 우는게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외로운 시절, 제 곁을 지켜줬던 곰탱이.
미안해, 그리고 고마웠어.
김태용 감독의 시나리오집 <꼭두 이야기>를 읽으며 평소 우리가 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한다. 찰나에 삼도천을 건너고 북망산을 오르면 우리는 언제 작별을 나누어야 하는 것일까. 외롭지 않게, 무섭지 않게 당도한 그곳은 어디일까. 아우구스토 몬테로소 우화집 중 눈에 들어온 <불완전한 천국>
붉은 하늘
푸르른 바다
를, 바라보는 눈동자
와, 분홍빛으로 물든 뺨
너의 뒤로 다가오는 새까만 꼬리
금세 머리 위로 달려와
눈앞에 펼쳐지는 밤
밤의 눈동자가
반 짝 반 짝
새하얗게 빛나는 별이 둘,
셋, 넷,
끝없이
하나하나 세어 보려고 하면
잠이 찾아오는 별하늘
파도가 대신 세어주는 소리
한껏 쌀쌀해진 날씨에 몸이 웅크려진다. 센 바람��� 두 귀도 차갑게 얼었다. 왼쪽 주머니에서 에어팟케이스를 꺼내어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귀에 꽂았다. 스포티파이에서 에디 히긴스의 크리스마스 송 앨범을 찾아 틀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제 귀가 시렵지 않다. 음악은 추위도 막아주는걸까.
사랑은 여전히 오는가, 여전히 아픈가, 여전히 신열에 몸 들뜨나, 음악을 고르고, 차를 끓이고, 책장을 넘기고, 화분에 물을 주고, 이것을 아늑한 휴일이라 부른다면, 뭐, 그렇다 치자, 창밖, 가을비 내린다, 삼십대, 나 흐르는 빗물 오래오래 바라보며, 사는 둥, 마는 둥, 살아간다. 심보선 <삼십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