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벌레 울음은 유리창 너머로 얇게 눌려 들렸고, 매캐하던 산불 냄새도 문틈에 걸린 채 조금씩 희미해졌다. 대신 익숙한 냄새가 공간을 채웠다. 오래된 나무 선반에 스며든 먼지 냄새와 희미한 현상액의 약품 냄새, 하루 종일 닫혀 있던 실내 특유의 서늘한 공기. 방금 전까지 바깥에서 보았던 그을린 산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나는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밀어 넣고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자연스럽게 귀에 들어왔다. 문턱에 신발을 비벼 흙을 털어내는 소리, 자전거를 세우는 둔탁한 마찰음,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는 마른 천의 스침까지.
그가 냄비 손잡이를 잡는 소리가 들렸다. '물은 내가 올릴게.' 라는 말이 들렸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선반 문을 열었다. 낡은 경첩이 짧게 삐걱거렸고, 안쪽에서 자주 쓰던 냄비를 먼저 꺼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것보다 조금 작은 냄비였다.
"앉아 계시는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 말에는 특별한 온기도, 냉기도 없었다. 쉬라는 배려를 드러내려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내가 하는 편이 편했다. 그 정도의 거리만 남겨 둔 채, 나는 냄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의 손끝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간 감각은 오래 남지 않았다. 아주 짧았다. 바람이 머리카락 한 올을 건드리고 지나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간이었는데도, 그 자리에만 의식이 머물렀다.
반사적으로 몸을 피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그 손길을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대로 있었다. 피하는 순간 괜한 의미가 생길 것 같았고, 붙잡는 순간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 사이, 조금 늦게 식어 가는 저녁바람이 지나갔다.
고개를 들라는 말.
형이라고 불렀다는 말.
받아들이는 건 내 자유라는 말.
그리고 어느새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 참...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잔가지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매듭이 더는 흔들리지 않자 새끼 고양이들은 처음엔 의아한 듯 그 자리를 맴돌다가, 이내 서로의 꼬리를 붙잡고 다시 장난을 시작했다. 놀이는 생각보다 쉽게 다른 놀이로 이어졌다. 조금 전까지 필사적으로 끈을 쫓던 녀석이 이번에는 형제의 귀를 물고, 다른 한 마리는 빈 물그릇 가장자리를 앞발로 툭툭 건드렸다.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자전거가 눈에 들어왔다. 바퀴에는 마른 흙이 두껍게 들러붙어 있었고, 프레임 여기저기에는 재가 희끗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브레이크 케이블에는 검은 가루가 엉겨 있었고, 페달 한쪽은 급하게 밟은 흔적처럼 흙이 눌려 굳어 있었다.
얼마나 급하게 왔는지.
쉬지 않고 얼마나 달렸는지.
다시 그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내가 더 붙잡고 있으면, 당신도 그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한 발쯤 먼저 물러나,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으로 발을 디뎠고.
"있긴 있습니다."
사진관 문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짧게 덧붙였다.
"...라면."
문고리에 손을 얹었고, 오늘도 그를 내 가게 안으로 들였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시간이 늦었다는 것과, 배고픔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현재. 딱 그것 뿐이었다.
방금까지 꼼짝도 않던 새끼 고양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서로 먼저 잡겠다고 몸을 부딪쳤다. 앞발이 흙을 긁고, 작은 몸들이 엉키며 데굴데굴 굴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바라봤다.
산에서는 아직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타버린 나무 냄새는 바람을 탈 때마다 이쪽까지 흘러내렸고, 노을은 어느새 마지막 붉은 기운마저 거둔 채 잿빛으로 식어 있었다. 오늘 하루가 정말 끝난 것인지, 아니면 아직 끝나지 못한 채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저녁이었다.
계속 같은 사람이 옆에 서 있었을 때.
바뀌는 건 봤다고.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것에 익숙해진다. 같은 골목, 같은 냄새, 같은 시간에 울리는 종소리. 처음에는 신경 쓰이던 것들도 어느 순간부터는 의식조차 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것과 경계를 푸는 일은, 내게는 조금 다른 이야기였고, 익숙해진 표정과 편해진 마음은 같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무릎 위에 놓인 잔가지를 손끝으로 천천히 굴렸다. 매듭 끝에 달린 끈이 힘없이 흔들리자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다시 앞발을 뻗었다. 이번에는 덤비지 않았다. 충분히 거리를 재고, 한 번 멈추고, 다시 다가왔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닐 텐데. 저 작은 몸도 자기 나름의 속도를 알고 있었고, 내 시선은 끝내 고양이들에게 머문 채였다.
"...그럴 수도 있겠죠."
담담하게 인정했다. 바람이 지나가며 그의 셔츠 자락을 흔들었다. 산을 향해 달려왔을 자전거의 바퀴에는 아직도 흙먼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여기까지 오는 길이 결코 가볍지는 않았다는 건 굳이 묻지 않아도 보였다.
"...그래도."
이번에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를 바라본 것은 잠깐뿐, 시선은 금세 다시 발치로 떨어졌다.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물그릇 앞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혀를 내밀었다. 다른 녀석들은 여전히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도, 반응은 모두 달랐다.
"...결국."
나는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정하는 거니까요."
끈 끝을 아주 작게 한 번 흔들었더니, 이번에는 가장 뒤에 있던 새끼 한 마리가 망설이다가, 아주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끈 끝에서 작은 매듭이 바람을 따라 느릿하게 흔들렸다. 방금 전까지 겁에 질려 있던 새끼 고양이가 조심스럽게 앞발을 뻗어 건드리고, 다시 한 발짝 물러섰다가, 이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듯 다시 다가왔다. 작은 생명들이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웅크린 자리에는 아직도 산에서 날아온 재가 성기게 내려앉아 있었다.
저녁노을은 이미 붉음을 잃고 잿빛으로 식어가고 있었고, 그 빛 아래 검게 그을린 산등성이는 아무 말 없이 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나는 그의 말을 조용히 들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냐는 질문도, 사람과 동물을 경계하게 만드는 공식이 같다는 말도. 하나도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이라고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도 없었다.
내 시선은 끝내 발치에 모인 새끼 고양이들에게 머물렀다. 잔가지를 따라 움직이는 끈을 쫓아 이리저리 앞발을 뻗는 모습.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그림자 하나에도 몸을 낮추던 것들이었다. 겁은 그대로인데, 갈증이 더 컸던 탓인지 물그릇 곁으로 모여들었고, 놀이는 또 놀이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경계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살아야 하니까.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아주 잠깐 잊는 것뿐이다.
사람도 동물도 같다는 말. 틀린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 말 속에는 빠져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경계를 푸는 건 억지로 벗겨지는 게 아니라, 상대가 결정하는 일이다.
거짓말인 걸 알아도 모른 척하고, 말하지 않는 과거를 억지로 열어보려 하지 않는다.말할 사람은 결국 말하게 되어 있으니까.
끈 끝을 한 번 더 천천히 흔들었다.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이번에는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매듭을 붙잡으려 폴짝 뛰었다가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다른 녀석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먼저 끈을 낚아챘고, 금세 둘이 엉겨 굴렀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아주 느리게 입을 열었다.
"...좋아하는 건 아니예요."
담담한 목소리가 저녁 공기 위를 잔잔하게 흘렀다.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잠시 말을 멈추고, 물그릇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조금 끌어당겨 고양이들이 더 가까이 닿을 수 있도록 자리를 바꿔놓았다.
"눈앞에 있으니까요."
그게 전부였다. 재 냄새는 아직 끝나지 않은 하루를 붙잡고 있었고,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고양이들이 물을 마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주 잠깐, 그리고 운을 뗐다.
"그 공식은 상대가 풀고 싶을 때나 통하는 겁니다."
침묵이 다시 내려앉으며, 끈 끝이 한 번 더 흔들렸다.
"억지로 익숙해지는 건."
잠시 생각을 고르듯 숨을 삼켰다가, 아주 작게 덧붙였다.
"...익숙한 게 아니라, 포기하는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