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에는 청자가 필요 없다고들 하던가. 사면(赦免) 없는 고백은 고백이 아니라 복습이다. 밤마다 같은 목록을 읊는 이 의식을 무어라 불러야 하나. 예배라 하기엔 신위가 비었고, 재판이라 하기엔 판결이 없다. 넌 내 죄를 사할 수 있을까. 네 앞에서라면, 이 셈이 맞아떨어질까.
평생 믿음을 지어 바친 몸이다. 통각도, 갈망도 제단에 바치고 나면, 남는 게 정적이야. 권위는 밀폐에서 나오고, 신비는 불투명에서 자란다. 고해(告解)를 생각한다. 죄를 말하고, 그 죄를 사(赦)하고. 수납만 있지 반출은 없는 기이한 구조다. 정점이란 예로부터 그런 자리였을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