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ynman no pensaba que la ciencia fuera difícil.
Pensaba que imaginar lo invisible lo era.
Entender átomos, fuerzas o energía requiere una habilidad diferente:
→ No la memoria
→ No el CI
→ Sino la capacidad de visualizar lo que nadie más puede ver
확실히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학생들이 제출한 에세이를 받아보면 학술적 글쓰기를 어떻게 하는지 기본적인 이해가 되어 있다. 한국 학생들에게 누락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것. 그 이유는 명확하고, 그게 한국의 인문학 교육의 문제인데 고쳐질 기미가 없다. 아무리 가이드라인을 줘도 안 된다.
비슷한 풍의 그림이라도 어떤 것은 한국적인 풍물을 더 드러내기에 괜찮고, 어떤 것은 근대식 문물이 더 드러나서 괜찮지 않다면 다룰 수 있는 ’한국적’이라는 것의 패러다임은 너무나 좁아집니다. 한국적이라는 것이 꼭 ‘조선적‘이어야만 하는지, 꼭 어느정도의 향토성이 있어야만 되는지 묻고 싶어요
“대동아전쟁” 관련 삽화를 그린 조선인/한국인 화가들은 친일파로 낙인을 찍고 단죄하면서, 정작 일제의 해군성이나 육군성의 의뢰를 받아 일본인 화가들이 그려놓은 전격적 “성전화”(침략 전쟁과 희생을 성스러운 전쟁과 순교로 미화하는 대형 회화들)와 “성전화”의 전시를 용인한다는 게 말이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