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임하지 않겠다’는 말 한마디를 못 하고, 기껏 짜낸 게 ‘연임할 생각이 없다’였다. 끝까지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다. 연임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가 나중에 뒤집으려면, 그 비난을 감수할 만큼의 자신감과 권력의 정당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열등감의 산물이자 욕망의 찌꺼기 같은 이재명에게 그런 것이 존재할 리 만무하다.
"내용은 제가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결정을 했겠죠."
그렇치 바로 이거다. 이래야 이재명이지.
막대한 국가적 파장을 부른 레버리지 ETF 정책에 대해 묻는 질문에, 이재명이 내놓은 대답이다. 나는 모르는 일이고 밑에 있는 누군가가 알아서 했겠지라는, 동네 구멍가게 사장님도 알바생에게 이런 식으로는 책임을 넘기지 않을 전대미문의 유체이탈 화법이었다.
미국의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의 집무실 명패에 걸려있던,
"모든 책임은 여기서 끝난다."
물론 애당초 이재명에게 저런 거룩한 책임감 따위를 바란 적도 없다. 하지만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려거든 최소한 말의 앞뒤 논리는 맞아야 하는 것 아닌가.
재명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분들에게는 이 선택적 기억상실증과 뻔뻔함이 가히 세계최강이자 말로 형용하기 힘든 미학의 정점이라 여길 것이다.
동네 보도블록 교체부터 시작해 생리대 지원, 바나나 가격 동향, 경기도 계곡 정비까지 시시콜콜 나서며 자신이 세상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유능한 행정가인 양 만기친람 코스프레를 해왔다. 불과 며칠 전에는 지지율이 바닥을 치는 위기 상황 속에서도 돌연 300만 원짜리 아이돌 암표 수익을 끝까지 추적하겠다며 동네 면장 노릇에 핏대를 세우던 분이다. 아이돌 티켓값은 귀신같이 추적하는 분이, 왜 수십조 원의 국민 자본이 널뛰는 초고위험 금융 파생상품 앞에서는 갑자기 뇌를 리셋하고 순진한 양 코스프레를 시전하는 것일까.
관료 사회의 생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얄팍하고 새빨간 거짓말인지 단번에 안다. 수익과 손실이 배로 증폭되는 레버리지 ETF의 치명적인 부작용을 보고서 상신 자료에서 누락할 간 큰 공무원은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중에 독박을 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붉은 글씨로 빼곡하게 적어 올렸을 것이 뻔하다.
만약 진짜로 그가 이 내용을 몰랐다면, 그 중요한 보고서를 읽지도 못한 처참한 무능을 자백한 꼴이다. 게다가 과거 작전주 투자 경험 등을 무용담처럼 털어놓으며 주식 전문가 행세를 하던 그가 레버리지의 개념과 파장을 몰랐다는 것은 대중의 지능을 모욕하는 행위다.
이재명이라는 인간의 뇌 구조를 가만히 뜯어보면, 참으로 조잡하고 얄팍한 이진법 알고리즘으로 돌아가는 단순 기계나 다름없다. 입력값이 성공이거나 달달한 단물이 나올 때는 이 모든 것이 내 탁월한 결단이자 단군 이래 최대의 치적이다라는 결괏값을 요란하게 출력한다. 반면 결과가 안좋거나 범죄의 영역까지 넘나들어 검찰의 수사망이 조여오거나 책임을 져야 할 엿 같은 상황이 닥치면, 한 치의 딜레이도 없이 나는 파악하지 못했다, 밑에 있는 누군가가 알아서 한 일이다라며 안면을 몰수하고 부하 직원을 사지로 내던진다.
대장동부터 백현동, 대북송금, 그리고 작금의 레버리지 ETF 사태까지. 변수만 바뀌었을 뿐, 잘되면 내 탓 망하면 네 탓이라는 이 앙증맞고 비겁한 자동화 시스템은 수년째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완벽하게 작동 중이다.
내가 살아숨쉬며 보아온 많은 인간중에 가장 정치를 해서는 안되는 인간이 무려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맡고있다는 절망감이 엄습한다.
"그래서 국힘 찍을 거야?"라는 질문에는 적어도 민주당이 국힘보다 나은 점, 혹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전제되어야 했다. 그것은 대체로 도덕성이나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 의식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을 보면 어떤가.
도덕성은 이재명이 등장하는 순간 이미 실종됐고, 이후의 행보는 괴물독재를 향한 질주였다. 마침내는 사법파괴로 범죄공화국을 초래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며 민주주의의 근간인 투표권마저 훼손했다.
부동산은 근저당에 코스피는 도박판이 되었다. 전방에는 총알도 없이 경계를 섰고 도처에 중국인과 범죄자가 설친다. 환율은 정치 얘기라며 말도 못 꺼내게 한다. 경제·안보·민생·치안까지 국정 전반이 무너졌다. 정치의 수준도 저질이 되어 '보완수사'와 '보안수사'를 구분도 못 하는 멍청이들이 의원이 되어 표결을 했다.
나는 누구라도 찍을 수 있다. 이제는 내가 묻고 싶다. "그래서 민주당 찍은 거야?"
이 나라가 무섭다. 국민은 누구나 한 표의 권리를 가지며 한 표의 힘이 민주주의를 증명하는 것인데, 그 표 저렇게 조작해도 나라가 조용하다. 목숨 바쳐 얻고 지킨 참정권이 저런 취급 받아도 침묵하는 사람들. 잃어버리면 또 피를 흘리게 되겠지. 그때도 그들은 필론의 돼지처럼 계속 침묵할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