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리트리버가 물고 온 장난감으로
복도에서 잠깐 놀아준 적이 있었음.
그 뒤로 옆집 아이가 산책 나갈 때마다 하나씩 골라 물려주면서
“좋아하는 언니한테 인사하고 와” 했던 거.
잃어버린 장난감인 줄 알까 봐 글씨도 적었대ㅋㅋ
다 돌려주려고 문 열었더니
강아지가 가져갈 생각은 안 하고 내 앞에 앉음.
그러고 장난감이랑 내 얼굴만 번갈아 봄.
나한테 준 선물이 아니라
“지금 놀아주세요” 신청서였음.
제가 자취 시작하고 “퇴근하면 잘 왔다고 해주는 사람이 없네” 하고 웃은 적이 있대요. 아빠는 그 말이 계속 마음에 남으셨다고요.
제가 화요일엔 일찍 퇴근한다고 했던 것도 기억하신 거였어요. 늘 별일 없냐고만 묻던 전화가, 사실은 아빠식 “잘 다녀왔어?”였던 거예요.
이번 화요일엔 제가 먼저 전화했어요.
“아빠, 나 왔어.”
초등학교 때 영어학원 선생님이셨음.
비 오던 날 내가 빌려드리고 이사 가는 바람에
못 돌려받았던 우산을 아직 쓰고 계셨던 거.
학원에서 만든 이름 스티커도 그대로였음.
편의점 안에 있는 나를 알아보고
버스 시간 때문에 연락처만 맡기고 나가셨는데,
그 와중에 우산은 잘못 집어 가셨대ㅋㅋ
전화드렸더니
“네 우산 돌려줄 생각만 하다가 또 네 걸 들고 왔네.”
덕분에 다음 날 우산 두 개 돌려받고
선생님이랑 커피 마시기로 함.
그때 제가 집에서는 절대 안 울었대요. 그런데 영화관에 가면 슬픈 장면 핑계로 한참 울어서, 엄마가 자꾸 영화를 보자고 하신 거였어요.
이모가 표는 왜 모으냐고 물었더니 그러셨대요.
“얘가 저날은 울고 나서 저녁을 잘 먹었거든.”
저는 떨어진 회사 이름만 기억했는데, 엄마는 제가 다시 밥 한 공기 먹은 날을 기억하고 계셨어요.
선배가 마지막 출근날 옆자리 동료한테
간식 봉투 일곱 개를 맡기고 갔던 거였음.
한꺼번에 주면 내가 밥 대신 다 먹을 것 같다고
하루에 하나씩만 주라고 했대.
마지막 봉투에는 저 메모까지 넣어두셨고.
전화해서 왜 이런 것까지 챙기셨냐고 했더니
“업무는 인수인계했는데 너 밥 먹이는 걸 빼먹었네.”
그러다가 내 뒤에서 프린터 소리 들리니까
바로 “너 아직 회사야?” 하심.
선배는 퇴사했는데 잔소리는 계속 출근 중이었음ㅋㅋ
지난겨울 제가 핫팩 하나 드리면서 “아저씨도 추우니까 안에 계세요” 했대요. 저는 거의 잊고 있던 일이었어요.
“그날 내 걱정도 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싶어서 참 좋았어요.”
그래서 저도 피곤한 날 누가 챙겨줬으면 하셨대요. 봉투 들고 나오려는데 “오늘도 고생했어요” 하시더라고요.
그날은 저도 돌아서서 한 번 더 인사했어요. “아저씨도요.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책 주인은 이모였음.
얼마 전 이사하면서 옛날 책을 서점에 넘기셨대.
아빠가 엄마한테 잘 보이고 싶다고 하니까
이모가 “언니 이 책 좋아하니까 읽고 가” 하고 빌려준 거.
표 뒤 이름도 대신 예매해준 이모가 적어둔 거였음.
엄마는 평생 두 분 책 취향이 같아서 만난 줄 아셨다고.
엄마가 전화기에 대고
“그럼 그 책 결말이 뭐였는데?” 물으니까
아빠가 한참 있다가
“우리 결혼했잖아.”
아버지 아직도 줄거리 모르시는 눈치였음ㅋㅋ
저만 주면 제가 돈 아깝다고 안 받을까 봐, “내 것도 샀어” 하려고 꼭 두 봉지를 사신 거래요. 엄마가 그 얘기를 해주시는데 괜히 목이 메더라고요.
전화해서 할머니 몫은 드셨냐고 물었더니 그러셨어요.
“그건 네가 올 때 같이 먹으려고.”
그날은 귤 먹으러 할머니 집에 갔어요. 제가 도착하니까 빈 접시부터 두 개 꺼내셨어요.
중2 때 전학 간 짝꿍이었음.
전학 가기 전에 반명함 사진 서로 바꿔 가졌는데
지갑 속 명함에서 내 이름 보고 혹시나 해서
집에 있던 앨범까지 꺼내 확인해온 거.
“이걸 아직 갖고 있었어?” 했더니
“네가 버리면 가만 안 둔다고 했잖아.”
처음엔 서로 존댓말하더니
옛날 얘기 시작하니까 10분 만에 다시 반말 나옴ㅋㅋ
지갑 돌려받는 데는 5분 걸렸는데
카페에서 일어나는 데는 세 시간 걸렸음.
제가 졸업할 때 “취업하면 인사드리러 올게요” 하고는 몇 년을 못 갔거든요. 교수님은 잘됐다는 소식이 없어도 찾아올 핑계 하나는 남겨주고 싶으셨대요.
“우산 찾으러 오면 되잖아. 꼭 좋은 소식 있어야 오나.”
사실 일이 잘 안 풀려서 그냥 인사만 하고 가려던 참이었어요. 그날 우산은 두고, 의자에 다시 앉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