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책장에 아이 키 잰 자국이 남았다고 했는데 구매자가 지우지 말아 달래 그 아래부터 쓰면 된다고
이사하면서 책장을 작은 걸로 바꾸기로 했음. 옆판에 연필 선 다섯 개가 있었음
아이가 자랄 때마다 그어둔 거라 높이가 제각각이었음. 이름과 날짜도 조금씩 적혀 있었음
표시 옆 날짜 중 하나는 덧쓴 자국이 있었음. 아이가 스스로 키를 재다가 발꿈치를 들고 서서 조금 높게 그었던 날이었음
다시 재자고 해서 아래에 진짜 선을 그었는데 위의 짧은 선도 다 지워지지는 않았음. 사진을 찍을 때 그 자국부터 보였음
책장 크기는 메모해놔서 바로 답할 수 있었음. 그런데 선을 왜 남겼는지 설명하려니 물건 설명보다 말이 길어졌음
구매자가 그냥 흠집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니 지워도 된다고 먼저 말해둘 생각이었음. 사포를 꺼낸 뒤에도 옆판을 한 번에 문지르지는 못했음
차가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책장 안 먼지부터 닦았음. 옆판의 연필 선은 마지막까지 그대로였음
책장을 보던 구매자가 옆판에서 손을 멈췄음.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선이 진하다고 하셨음
걸리는 부분이면 지금 지워드리겠다고 했음. 사포는 책장 맨 위 칸에 그대로 올려둔 상태였음
그 사람은 제일 낮은 선 아래를 손으로 쓸어봤음
“이 밑에 아직 자리가 있네요.”
자기 아이는 세 살이라고 하셨음. 나는 그제야 사포를 내려놨음
일곱 살 조카 생일 초대장에 내 이름이 친구 칸에 있었음 나는 어른들 밥상에 앉으려고 했는데
초대장은 며칠 전에 받았음. 조카가 직접 이름을 적었길래 기념으로 가방에 넣어뒀음
나는 생일 파티를 도와달라는 뜻으로 이해해서 아침에 갈 때도 음식부터 물어봤음. 필요한 접시를 사서 갔고 도착하자마자 상을 닦았음
아이들끼리 먼저 먹고 어른들은 음식을 더 차려서 따로 먹기로 했음. 나도 부엌 쪽에 접시를 놨음
조카가 와서 왜 여기 앉느냐고 물었음. 나는 너희끼리 먹으라고 했음
아이들은 자기 자리를 찾으며 이름표를 비교했음. 나는 종이컵을 놓아주다가 어른들 쪽으로 빠졌음
조카가 내 손을 잡았을 때도 뭘 더 가져다 달라는 줄 알았음. 내 의자라고 가리키길래 작은 의자에 앉아도 되느냐고 되물었음
조카는 의자 뒤에 붙인 종이를 먼저 보라고 했음. 나는 들고 있던 행주를 싱크대에 놓고 손을 씻었음. 어른들 쪽에는 잠깐 앉아 있다가 오겠다고 했음
조카가 가리킨 의자 옆에 내 이름표가 있었음
종이 왕관도 하나 놓여 있었음. 다른 아이들은 이미 쓰고 있었음
나는 내가 도와주러 온 건 줄 알았다고 했음. 조카는 초대장을 줬으면 손님이라고 함
옆에 앉은 아이가 나를 올려다봤음
“몇 살이에요?”
서른둘이라고 했음. 아이가 왕관과 내 머리를 번갈아 봤음
영수증에는 '아메리카노 HOT' 이라고 찍혀 있었음
아침에 내가 뭐라고 했는지 떠올려 봤음 "아메리카노요" 아이스라는 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고 메일을 보고 있었으니까 영수증은 정확했음 영수증은 내가 말한 걸 찍는 거니까 직원이 "따뜻한 거 맞으세요?" 하고 물었던 것도 같고 내가 "네" 했던 것도 같고 그것도 기억이 안 나고
직원은 "죄송합니다" 를 두 번 했음 한 번은 내가 "아이스로 시켰는데요" 했을 때 한 번은 "확인 좀 하세요" 했을 때 두 번 다 영수증은 안 보여 주고 영수증을 보여 줬으면 내가 틀린 게 되는 거였고 뒤에 줄이 있었고 직원은 그냥 두 번 사과하고 새로 만드는 쪽을 골랐고 그게 30초였고 나는 그 30초 동안 "확인 좀 하세요" 를 했고
뜨거운 아메리카노는 카운터에 남았을 거고 누가 마셨는지 버렸는지 모르고
다음 날 같은 카페 같은 직원 줄은 네 명 나는 "어제는 제가 잘못 시켰더라고요" 직원이 "아니에요" 하고 웃었고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라고 끝까지 말했고 영수증에는 'ICE' 가 찍혀 있었음 그날은 영수증을 안 구기고 폰 옆에 뒀음 메일은 회사 가서 봤고
바쁜 아침에 카페에서 커피를 시켰음 출근 시간 줄이 여섯 명 폰으로 메일 보면서 주문하고 폰 보면서 기다렸음 받아 보니 뜨거운 거 손에 닿는 순간 알았음 나는 "아이스로 시켰는데요" 직원이 "죄송합니다" 하고 바로 새로 만들어 줬고 뒤에 줄이 있어서 나는 "확인 좀 하세요" 한마디를 더 보탰음 뒤에 선 사람들이 들으라고 한 건 아니었는데 들을 만한 크기였고 직원이 고개를 숙였고 나는 아이스를 받아서 나왔음 뜨거운 건 카운터에 그대로 두고
회사에 와서 커피를 마시는데 가방에서 영수증이 나왔음 받을 때 가방에 구겨 넣은 거 버리려다가 봤음
그러더니 케이크를 큰 걸 먹어도 되겠다고 했음. 나는 그럼 큰 걸 달라고 했음
왕관은 머리에 잘 안 들어가서 뒤 테이프를 조금 벌려 썼음
케이크 크기를 정해주던 아이가 내 접시에 포크도 놓아줬음. 나는 고맙다고 했고 그 아이는 자기 포크는 이미 있다고 설명했음
조카가 왕관 끝을 다시 붙여줬음. 나이가 제일 많아서 제일 큰 게 필요한데 준비한 건 전부 같은 크기였음
게임은 같은 그림을 빨리 찾는 거였음. 나는 아이들 보라고 천천히 할 생각이었는데 실제로 찾는 속도부터 느렸음
내가 한 장을 가리키자 옆 아이가 그건 아까 나왔다고 알려줬음. 봐주고 있었다는 말은 끝내 못 했음
조카가 규칙을 다시 설명해줬고 나는 들으면서 자기 차례는 언제냐고 물었음. 내 이름이 이번에도 정확히 불렸음
설거지 도와주러 일어나니 아직 내 차례가 안 끝났대. 다시 앉아서 차례를 마쳤음
집에 갈 때 왕관을 벗었음. 조카가 가져가라고 했음
다음에도 같은 걸 쓰면 된다고 해서 생일은 일 년 뒤라고 했음. 조카는 그냥 놀러 올 때 써도 된대
현관 거울에서 왕관을 다시 봤음. 테이프가 더 벌어져 있었음
그날은 어른들끼리 찍은 사진보다 아이들 사이에 앉은 사진이 많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