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경력 시니어 디자이너가 본 클로드 디자인
나는 1999년에 웹사이트 디자인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Figma도, 컴포넌트 라이브러리도 없었다.
혼자 코드 몇 개와 여러 가지 꼼수를 동원해서
인쇄용으로 만들어진 Adobe 도구를 웹에 적용해야 했다.
지난 20년 넘게,
나는 대기업의 인하우스 팀과 대형 에이전시에서 굴렀고,
지금은 내 이름을 걸고 에이전시를 운영하고 있다.
그 사이 디자인 업계는 엄청나게 변화하고 '성숙'했다.
디자인 시스템, UX 표준, 아토믹 디자인 등이
디자인을 체계화하고 규칙과 패턴으로 정립했다.
요즘 Claude Code나 Google Stitch를 보고
처음엔 이렇게 느꼈다.
"해상도만 높지 다 슬롭(slop)이네.
겉보기만 번지지르하지,
결과물은 부실하고 평범한 패턴 덩어리잖아."
*slop: AI가 대량으로 찍어내는 저품질의 콘텐츠
근데 곧 깨달았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핵심은 오늘 날, 디자인 작업의 대부분이
패턴 복제로 귀결되었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해서 UX/비주얼 디자인의
대부분은 패턴을 재생산하는 일이다.
사용자 니즈를 이해하거나 비즈니스 요구사항을
조율하는 부분을 말하는 게 아니다.
냉정하게 산업 전체를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하는 일은 이렇다.
→ 이미 정의된 디자인 시스템 유지보수
→ 색상 팔레트, 여백, 라운드 값 살짝 바꾸기
→ 기존 컴포넌트 재조합해서 짜깁기
→ 이미 있는 패턴에 약간의 변주만 주기
링크드인이나 콘퍼런스에서
아무도 이런 말을 대놓고 하진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이렇다.
업계에서 진짜로 '브랜드를 처음부터 개발하거나,
제품 디자인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람'은 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95%는 그저 티켓을 읽고,
컴포넌트 재조합하고, 작은 변형만 반복하는 데
시간을 쏟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 부분이 문제다.
컴포넌트, 아토믹 디자인, 패턴의 특징...
이 모든 건 구조적이고, 논리적이며,
형식화되어 있고, 반복적이라는 점이다.
일관성과 규칙 준수가 목적이다.
다시 말해,
이건 처음부터 자동화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 시스템이다.
우리가 지난 10~15년간 공들여 만든
디자인 시스템과 패턴 라이브러리는
사실상 AI에게 먹히기 좋은 학습 데이터 세트였다.
이제 AI가 그걸 집어 삼키러 온 거다.
지금 당장은 출력물이 허술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굉장히, 아주, 터무니없이
잘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대규모 프로덕트 팀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다 안다.
현실에서 하는 작업의 90%는 패턴과 시스템이다.
완전 새로움을 만드는 대신,
이미 있는 걸 맞춰 붙이고, 유지보수하고,
엣지 케이스를 메우는 일.
이걸 인간이 해왔던 이유는 '인간이 더 잘해서'가 아니다.
그냥 그동안 도구가 부족해서
인간이 억지로 처리하던 영역이었을 뿐이다.
물론, 현재 인력의 10% 정도
즉 고객/이해관계자와의 협상 업무까지
담당하던 사람들은 살아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이 나머지 90%에 속한다면
디자인이라는 분야 자체가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