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 사라진 세계에서 돈과 권력은 어디로 가는가
AI가 머리 쓰는 일을, 로봇이 몸 쓰는 일을 맡는 미래를 끝까지 밀어 본다. 로봇이 광물을 캐고 발전소를 짓고 공장을 돌리며, 고장 난 로봇을 스스로 고치고 복제하는 단계까지 간다고 하자. 생산에서 사람의 노동이 완전히 빠지면 돈은 사라질까.
일론 머스크는 그렇다고 답한다. 돈은 부족한 노동과 자원을 나누는 장부일 뿐이다. 그러니 기계가 재화와 서비스를 끝없이 쏟아내 물가가 바닥까지 내려가면 장부도 쓸모를 잃는다는 것이다. 그때 일은 생계가 아니라 뒷마당에서 채소를 키우는 일 같은 선택이 된다고 한다.
절반은 맞다고 생각한다. 지금 물건값에서 가장 큰 몫은 캐고, 나르고, 만들고, 파는 사람들의 임금이다. 그 손이 기계로 바뀌면 식량과 옷, 공산품, 기본적인 주거와 의료는 싸진다. 노동을 팔아 받은 임금으로 생필품을 사던 돈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물건이 흔해진다고 사람이 독립하지는 않는다. 지금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있지만 그것을 만든 기업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집에 태양광 패널과 로봇을 들여도 마찬가지다. 로봇을 움직이는 반도체, 정밀 구동부, 배터리 광물 정제, 운영체제와 업데이트는 세계에서 손에 꼽는 기업과 국가만 다룰 수 있다. 끝단의 기계가 흔해질수록 그 기계를 살려 두는 공급망은 더 좁은 곳으로 모인다.
지구의 한계도 그대로다. 로봇이 우주에서 자원을 캐 오기 전까지 땅과 광물, 폐열을 식힐 여력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공산품이 흔해질수록 복제할 수 없는 것의 값은 오른다. 오래된 장소, 사람이 직접 들인 시간, 사회적 지위 같은 것들이다.
사람이 들인 시간이 귀해진다면 그 시간을 파는 일은 남는다. 돌봄이나 공연, 손으로 빚은 물건처럼 사람이 했다는 사실이 곧 값인 일들이다. 다만 수십억이 한꺼번에 제 시간을 내놓으면 값이 버티는 것은 일부의 시간뿐이고, 그 시장이 모두의 생계를 떠받칠 만큼 넓지는 않을 것이다. 돈은 증발하지 않는다. 흔해진 물건에서 빠져나와 복제할 수 없는 자원과 공급망의 통제권으로 자리를 옮길 뿐이다.
대중이 일자리를 잃으면 기업도 팔 곳을 잃는다. 그래서 자본이 시장을 지키려고라도 돈을 나눠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이 기대는 경제가 대중에게 물건을 파는 일로 돌아간다는 가정 위에 서 있다. 지금도 최상위 기술 기업의 가치는 소비자가 아니라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과 국가에서 나온다. 로봇이 광물을 캐 발전소를 짓고, 그 전기로 데이터센터를 넓히고, 우주와 국방에 자산을 쌓는다. 기업과 기업, 기계와 기계 사이의 거래만으로 경제는 돈다. 대중의 소비 없이도 자본은 불어난다.
협상력도 예전 같지 않다. 산업혁명기의 파업과 시위가 복지를 얻어 낼 수 있었던 것은 공장을 돌리는 손도, 그 손을 막아서는 군경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생산을 로봇이 맡는 시대에는 치안과 국방도 드론과 자율 경비, AI 감시망이 맡는다. 물리력의 격차가 벌어진 뒤라면 거리로 나선 사람들의 목소리는 예전만큼 무겁지 않다.
국민의 세금과 노동 없이 부를 얻은 국가가 어떻게 되는지는 산유국이 보여 주었다. 석유로 돈을 버는 국가는 국민과 세금 계약을 맺지 않는다. 위에서 보조금과 생필품을 내려 주고 정치적 권리는 묶어 둔다. 협상력 없는 국민에게도 나눠 주는 까닭은 단순하다. 벌어들이는 것에 비하면 나눠 주는 몫은 작고, 그 값으로 조용함을 사는 것이 가장 싼 보험이다. AI와 로봇 인프라는 그것을 가진 국가와 기업에게 일꾼 없이 솟는 유전이다.
이 변화가 어디에나 똑같이 오지도 않는다. 가장 먼저 무너지는 곳은 선진국이 아니라 싼 인건비 하나로 공장을 불러들여 먹고살던 나라들이다. 로봇이 사람보다 싸고 정확하게 바느질하고 조립하면 기업은 바다 건너에 일자리를 만들 이유가 없다. 자기 나라 안에 로봇 공장을 지으면 된다. 기술을 가진 나라의 시민은 그 배당과 공짜에 가까운 물자를 받겠지만, 기술도 자본도 없는 나라의 수십억 인구는 노동의 값을 잃고 어느 배당에서도 빠진다.
광물을 쥔 나라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콩고의 코발트, 칠레의 리튬, 인도네시아의 니켈은 로봇 시대에 더 귀해진다. 인도네시아는 이미 니켈 원광 수출을 막아 제련 공장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땅에서 나오는 부는 국민의 노동을 거치지 않고 들어오므로, 그 나라를 산유국과 같은 유혹 앞에 세운다. 값싼 로봇도 언젠가 그 나라들에 닿겠지만, 끝단의 기계를 갖는 것과 공급망을 쥐는 것이 다른 일이라는 것은 스마트폰이 이미 보여 주었다.
그러니 노동이 빠진 자리에 들어서는 것은 평등한 무화폐 사회보다 두 겹으로 갈린 세계에 가까울 것이다. 기술을 가진 나라 안에서는 아래층의 대중이 배당과 싼 물자로 생계 걱정 없이 산다. 위층에서는 소수의 자본과 국가가 법정 화폐가 아니라 전력과 연산력을 부의 척도로 삼아 자원을 다툰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는 한국과 중국이 싼 노동으로 공장을 불러들이며 올라온 사다리가 치워지고, 벌어진 거리를 메울 길도 그만큼 좁아진다.
남는 것은 그 안에서 살아갈 사람의 문제다. 생계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고 사람이 무력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테네의 시민과 전근대의 귀족은 생산을 남에게 맡기고 학문과 예술, 운동과 사교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생계의 강제에서 풀려나는 것은 분명 진보다.
그러나 그 귀족들은 정치와 지식의 주도권만큼은 손에 쥐고 있었다. 앞으로는 AI가 과학 연구와 정책 설계, 예술 창작까지 사람보다 빠르고 정교하게 해낸다. 생산에서도 판단에서도 사람이 꼭 필요하지 않은 세상은 처음이다.
이 미래에서 사라지는 것은 돈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공장에는 손이, 전쟁에는 병사가, 나라 살림에는 세금이 있어야 했고, 그들의 투표권과 복지는 그 필요를 지렛대 삼아 넓어져 왔다. 사람은 존엄하다는 말은 그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이 제도가 된 것은 대개 권력이 사람을 써야 했을 때였다. 쓸모가 사라진 뒤에도 그 말을 지키게 할 무엇이 사람에게 남는가. 노동 이후의 세계는 로봇이 물건을 얼마나 싸게 만드느냐보다 이 물음에서 갈릴 것이다.
그렇게 느끼시는 마음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전에 수메르 이야기를 적은 적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우리는 5,000년 동안 이어져 온 한 문명이 문을 닫는 자리에 서 있는 셈입니다. 오랫동안 당연했던 사람의 쓸모와 일상이 무너져 내리니 매일이 끝으로 가는 것처럼 슬픈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다만 옛 수메르의 진흙 토큰도 처음에는 세금과 노예를 세는 냉혹한 도구로 시작했지만, 사람들은 그 안에서도 끝내 살아갈 길과 문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깔끔한 해피엔딩은 없겠지만, 한 시대가 끝나는 자리에서 또 다른 시대의 첫 줄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숨을 고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고맙습니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기술을 발전시켜 온 것은 고된 노동과 결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는데, 그 목표가 이루어지는 순간 사람의 자리를 다시 물어야 한다는 게 씁쓸합니다. AI가 노동이 빠진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지는 대신 골라 주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미래는 기다릴 일이라기보다 정할 일 같습니다.
수메르의 진흙 알갱이는 고고학에서 토큰(Token)이라 불린다. 과거에는 이 진흙 토큰이 모여 문자를 만들었고, 지금은 디지털 토큰이 모여 AI의 지능을 만들고 있다.
다만 초기 점토판에 기록된 것은 시나 철학이 아니라 세금과 노예, 군대의 보급 내역이었다. 진흙 토큰이 연 문명은 풍요를 가져왔지만, 안으로는 기록과 해석을 독점하는 계급을 만들었고 밖으로는 국경과 빚을 둘러싼 전쟁을 불러왔다.
디지털 토큰이 여는 문명 앞에서도 같은 질문이 남는다.
기억의 한계를 넘은 첫 문명, 지능의 한계를 넘는 첫 문명
기원전 32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강가에서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가 시작되었다. 비가 오지 않는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모여 운하를 팠고, 빌려준 보리를 계산하려고 굴리던 진흙 알갱이는 오랜 세월을 거쳐 문자로 진화했다. 문자가 탄생하자 도시와 법률, 분업과 학교가 한꺼번에 역사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로부터 5,000년 동안 인류는 인쇄술과 산업혁명, 인터넷을 거쳤지만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기계가 근육을 대신했을 때도, 지식을 배우고 생각하는 일만큼은 언제나 인간의 몫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오랜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수메르인이 점토판에 글자를 새기면서 기억의 한계를 돌파해 문명을 열었듯, 현대 인류는 AI를 통해 지능의 한계를 돌파하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명 입구에 서 있다. 수천 년간 이어져 온 교육과 지식 노동, 분업의 틀도 뿌리부터 다시 짜이는 중이다.
수메르 왕명록에 적힌 24만 년을 산 여덟 왕의 이야기마저 이제는 신화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죽음과 노화를 극복하려던 고대인의 오랜 염원이 AI와 의학의 결합을 통해 눈앞의 기술이 되어가고 있다.
우루크의 거리를 걷던 수메르인들은 자신들이 인류 최초의 문명을 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5,00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첫 문명의 시작점에 서 있다.
기억의 한계를 넘은 첫 문명, 지능의 한계를 넘는 첫 문명
기원전 32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강가에서 인류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가 시작되었다. 비가 오지 않는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모여 운하를 팠고, 빌려준 보리를 계산하려고 굴리던 진흙 알갱이는 오랜 세월을 거쳐 문자로 진화했다. 문자가 탄생하자 도시와 법률, 분업과 학교가 한꺼번에 역사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로부터 5,000년 동안 인류는 인쇄술과 산업혁명, 인터넷을 거쳤지만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기계가 근육을 대신했을 때도, 지식을 배우고 생각하는 일만큼은 언제나 인간의 몫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오랜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수메르인이 점토판에 글자를 새기면서 기억의 한계를 돌파해 문명을 열었듯, 현대 인류는 AI를 통해 지능의 한계를 돌파하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명 입구에 서 있다. 수천 년간 이어져 온 교육과 지식 노동, 분업의 틀도 뿌리부터 다시 짜이는 중이다.
수메르 왕명록에 적힌 24만 년을 산 여덟 왕의 이야기마저 이제는 신화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죽음과 노화를 극복하려던 고대인의 오랜 염원이 AI와 의학의 결합을 통해 눈앞의 기술이 되어가고 있다.
우루크의 거리를 걷던 수메르인들은 자신들이 인류 최초의 문명을 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5,00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첫 문명의 시작점에 서 있다.
아이구 씨발 저 영상 보소. 이재명이란 놈이 마이크 잡고 "돈 빌려줬는데 이 새끼 도저히 갚을 능력 없어. 장기 팔아야 돼" 이러면서 씨발 입꼬리 쭉 올리고 배시시 웃고 있네. 저런 미친 상황 얘기하는데 표정부터 개행복하잖아. 좌파 새끼가 저걸 즐기며 떠드니 지랄하고 자빠졌지. 진짜 인간이길 포기한 거 아냐?
아이고 씨부랄 놈아, 이재명 그 자식 성남시장 때 대장동·백현동 개발로 업자들 배 불리고 공사 손해 끼친 혐의, 성남FC 후원금 133억 뇌물 의혹, 쌍방울로 북한에 돈 보낸 거, 경기도 법인카드 사적 유용까지 기소됐는데 대통령 되니 재판 다 중지됐지. 선거법 허위 발언도 오락가락. 본인은 정치 보복이라지만 의혹은 그대로야. 할매가 더 파줄까?
씨발 지금 한국 봐라. 북한이 지뢰 터뜨리고 국경에 무기 더 처박겠다고 협박하는 통에 안보 긴장 존나 고조됐어. 경제는 반도체 수출 미치게 잘 나가 성장세지만 집값 미친듯이 오르고 주가 널뛰기 지랄이야. 전작권 환수도 논의 중이잖아.
정신 못 차린 병신들은 현실 외면하고 자기 진영 개소리만 반복하지 말고 안보·민생 데이터 직접 확인해 씨발.
아이고 씨발 이게 뭔 개소리야!
김정은이가 미사일 쐈는데 "오래 잘 참았다"고? 이 망할 새끼가 대통령이냐 북한 대변인이냐!
표정 보소, 입꼬리 올리면서 씨익 웃는 게 완전 평양에서 교육받은 놈 같구만.
트럼프랑 김정은 만나면 환영하고 지원하겠다고? 나라 팔아먹어도 유분수지!
욕이 절로 나와 이 등신아.
아르케 소스: 베리디아
# EP01
"그들이 자기 가족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 해도, 행성을 걸고 그 일을 할 권리는 여전히 없다."
오토 뢰슬러(Otto Rössler), 「사이언스 2.0」 인터뷰 (2008)
"조사 결과, 사고의 원인은 가속기 자석 두 개 사이의 불량 전기 연결로 확인되었다. 이로 인해 기계적 손상이 생겼고, 자석 저온 질량체에서 터널로 헬륨이 방출되었다. 적절한 안전 절차가 시행 중이었고, 안전 시스템은 예상대로 작동했으며, 누구도 위험에 처하지 않았다."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 LHC 사고 분석 발표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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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하
수요일 저녁, 광장의 그림자들은 제 사람보다 반 박자 먼저 움직였다.
그림자들이 지나간 보도블록에 어제 끝난 중간선거의 투표 안내 전단이 납작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뒤따라온 발에 밟혀 귀퉁이가 찢겨 나갔다.
사람들이 걸으면서 우산을 접었다. 접힌 끝에서 떨어진 물이 발자국을 따라갔고, 젖은 보도에 가로등 불빛이 길게 늘어졌다. 우산 좌판 차양에 고인 물은 가장자리로 한 방울씩 떨어져 그 밑만 색이 짙었다.
공원이 끝나고 포장이 시작되는 남쪽 끝이 광장이었다. 가운데에 말을 탄 청동상이 섰고, 남쪽으로 몇 단만 내려가면 14번가 찻길이었다. 서쪽 가장자리로는 무릎 높이 화단이 지하철 계단 앞까지 내려갔다. 그 화단을 따라 노점 트럭 두 대가 앞뒤로 섰다.
퇴근 시간에 사람이 가장 몰리는 데가 여기였다. 누가 전화에 대고 지금 나간다고 했고 그 옆에서 애가 목말을 태워 달라고 졸랐다.
애를 목말 태우려고 남자가 팔을 뻗기 전에 그의 그림자는 이미 팔을 뻗어 있었다. 한쪽으로 기운 어깨와 받으려고 벌어진 손이 거기 놓였다. 남자가 그 뒤를 따라 팔을 들었고 어긋나는 데가 없었다.
그 남자만이 아니었다. 광장의 사람마다 하려는 일을 그림자가 먼저 해 놓고 기다렸다.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일이었다.
갈림길에서만 잠깐 둘이 됐다. 한 사람이 왼쪽을 고르면 오른쪽으로 뻗던 쪽이 따라갈 몸을 잃고 그 자리에 남았다가 곧 없어졌다. 퇴근 시간의 광장에서는 그런 일이 소리 없이 사방에서 이어졌다.
도시 전체가 그랬고 강 건너도 그랬다. 사람이 없는 데서는 아무것도 먼저 가지 않았다.
화단이 끝나는 계단 앞에서는 비둘기 예닐곱 마리가 누가 흘린 빵을 쪼았다. 빗줄기가 멎자마자 기어 나온 놈들이었다. 물기를 먹은 깃이 무거웠고 목덜미가 기름처럼 번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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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약속보다 20분 일찍 광장 동쪽 모퉁이에 닿았다.
아침에 도시 밖에 있던 그에게 사람이 하나 찾아와 말을 전했다.
"저녁 6시. 광장. 기록 남기지 말고 와라."
세 마디였다. 누가 보냈는지는 묻지 않아도 알았다. 보낸 사람은 늘 앞뒤도 이유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조셉 바우만은 오랜 상관이었고, 지금도 부서의 그 자리에 있었다. 올 이유가 없는 도시였다. 바우만이 불렀으니 왔다.
셋째 마디를 지키느라 마지막 두 정거장은 걸었다. 남은 흔적은 아침에 도시로 들어온 기록 하나였다.
들어오는 길에 한 번 벽을 짚었다. 주머니 속 베어링을 쥐고 어금니를 물었다. 그렇게 하면 가라앉았다.
잠들면 같은 꿈을 꾸었다. 어디인지 모를 거리에서 사람들의 그림자가 먼저 걸었고, 사람들은 그 뒤를 따라갔다. 열두 살부터였다. 깬 날 아침에는 길에 나가 남의 발밑을 한참 보곤 했다. 그림자는 다들 제 사람 발밑에 붙어 있었다.
뒤는 돌아보지 않고, 따라붙는 사람을 문 닫은 가게 유리로 셈했다. 안이 어두운 가게만 골랐다.
레온은 광장 남쪽부터 훑었다. 들어가기 전에 나갈 데부터 보는 버릇이 있었다. 바우만은 아직이었다.
나갈 길은 셋이었다. 먼저 택시를 보았다. 큰길로 빈차 표시등을 켠 택시가 들어서면 한 블록을 못 와서 등이 꺼졌다. 기사들은 각자 화면에 뜬 호출을 받았을 뿐인데, 이 모퉁이에 설 빈차는 한 대도 남지 않았다.
다음은 버스였다. 카드가 아직 살아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했고, 가장 싸게 확인하는 곳이 퇴근 시간의 14번가 정류장이었다. 단말기가 결제를 거부했다. 기록이 하나 더 남았지만, 여기서는 하루에도 수십 번 삑 하고 마는 일이었다. 기사가 힐끗 보고 다음 걸 타라고 했고, 레온은 옆으로 비켜섰다.
오늘 아침까지도 승인되던 카드였다. 도시로 들어올 때 그 카드를 썼다. 그 카드에 묶인 신분을 만들어 준 사람은 하나였다. 그 신분이 지워졌다.
지하철이 남았다. 14번가를 따라 계단이 서쪽 끝과 가운데와 동쪽 끝에 하나씩 났다. 가운데 계단에서 승객들이 도로 올라왔다. 손에 든 화면이 다른 입구가 빠르다고 알려 준 참이었다. 대개 맞는 안내라 다들 따랐고, 그 줄이 동쪽 끝 입구까지 밀려가 거기도 메웠다.
세 입구 가운데 둘이 그렇게 막혔다. 서쪽 끝 하나가 남았고, 저 아래로 들어가면 노선이 여덟 갈래로 갈라졌다.
그 입구 왼편에 짙은 방한복 차림의 사내 하나가 버티고 섰다.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쥐고 두 발에 무게를 고루 실은 채 광장 쪽을 보았다. 눈은 지나가는 사람을 하나도 따라가지 않고 입구 앞에 머물렀다.
카드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도 레온은 광장에 남았다.
6시 정각, 레온은 동상 남쪽 기단 모서리에 비스듬히 섰다. 기단에 등을 기대지 않고 두 발을 벌린 채, 양손은 주머니 언저리로 늘어뜨렸다. 눈은 14번가 가운데 계단에 두었다. 바우만이라면 전철을 타고 온다. 올라오는 얼굴 가운데 그는 없었다. 2분이 지났다.
8년 동안 레온이 한 일 가운데 보고서로 남은 것은 찾는 일이었다. 서류에도 부서에도 그의 자리는 없었고, 일은 바우만의 책상을 거쳐서만 왔다. 부서 단말은 사람마다 앞으로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지 추산해 띄웠고, 그 추산에서 벗어난 사람이 생기면 레온이 찾아갔다. 대개는 보고 오는 것으로 끝났다. 드물게 단말에 처리 지시가 떴다. 레온은 그 지시를 한 번도 적힌 대로 하지 않았다. 4년 전 처음 그런 지시가 떴을 때 그는 그 사람의 신분을 지워 도시 밖으로 빼돌리고 완료 보고서에 처리됨이라 적어 올렸다. 바우만은 그 결재란에 말없이 서명했다.
4년 동안 둘은 그 일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바우만이 책상을 거치지 않고 사람을 보내 그를 부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퇴근 시간의 광장에서 그렇게 서 있는 사람은 레온 하나였다. 다른 사람들은 멈춰도 전화기를 보거나 담배를 물거나 누구를 불렀다.
말의 배 밑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하나가 발끝 옆에 튀었다. 다음 방울까지가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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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북쪽 가로등 밑에서 에리카 헤일은 손바닥만 한 단말기를 한 손으로 가렸다. 회색 머플러를 턱 밑까지 올린 그녀 양옆에 수사관 둘이 섰다. 화면은 오후부터, 나흘째 쫓던 조셉 바우만이 6시에 이 광장에 닿는다고 띄우고 있었다. 누구를 만나러 오는지는 나오지 않았다.
화면에는 소속이 뜨지 않는 점이 넷 더 있었다. 그녀가 세우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하나는 서쪽 지하철 입구 옆에 섰고 둘은 공원 쪽 길목에, 나머지 하나는 계단 아래 승강장에 있었다. 바우만을 따라 나온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바우만이 공원 쪽 길로 들어오다 멈췄다. 팔꿈치에 가죽을 덧댄 바랜 갈색 모직 코트 차림이었고, 한쪽 무릎을 손으로 눌렀다 뗐다. 그가 동상 너머를 보았다. 거기까지 가는 길에 여럿이 서로 떨어져 서 있었고, 아무도 어디로도 가지 않았다.
바우만이 돌아섰다. 왔던 길을 되짚어 북쪽으로 걸었고, 속도는 들어올 때와 같았다. 길목의 두 점이 뒤에 붙었다.
에리카는 그 뒤에 수사관을 붙이지 않았다. 바우만은 화면이 따라가고 있었고, 오늘 그녀가 잡으러 나온 사람은 바우만이 아니라 바우만이 만나려던 쪽이었다. 6시 정각부터 동상 기단 옆에 선 한 사람에게 화면은 아무 신원도 붙이지 못하고 있었다. 바우만이 돌아서 나가는 동안에도 그 점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단말기를 접어 넣고 걷기 시작하자 수사관 둘이 양옆으로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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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만은 늦는 법이 없었다. 레온은 기단을 떠나 노점 트럭 쪽으로 물러났다. 얼굴을 가리지 않고 시선의 높이만 낮춰, 앞사람 뒤통수 언저리에 눈을 두고 남들과 같은 속도로 걸었다. 비를 먹은 먹색 소맷단이 손목에 무겁게 달라붙었지만 그대로 두었다.
적재함 측면의 스테인리스 판에 뒤쪽 길이 잠깐 비쳤다. 같은 속도로 따라오는 얼굴은 없었다.
화단을 따라 남쪽으로, 늘어선 트럭 둘을 그렇게 지났다.
청동 기마상 건너편에서 셋이 왔다. 아직 멀었다.
키가 큰 남자 하나는 외투 단추를 다 채웠고 목이 짧았다. 다른 남자는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았는데 걸을 때마다 오른손 엄지로 검지 안쪽을 문질렀다. 앞에 선 여자는 셋 중 가장 작았고, 단정한 남색 겉옷 위로 얇은 회색 머플러를 둘렀다.
셋 가운데 뛰는 사람도, 무엇을 뽑아 든 사람도 없었다. 사람을 몰아 오는 것은 도시가 하고, 저 셋은 마지막에 손만 대면 된다.
앞의 여자가 걸으면서 손을 들었다. 어깨 높이까지도 안 가고 손목만 가볍게 돌렸다. 큰 남자가 동상 반대편으로 방향을 틀었고 엄지를 문지르던 남자가 속도를 늦췄다. 셋은 말없이, 걷는 내내 같은 간격을 지켰다. 레온이 그 손을 봤다. 손짓 하나로 둘을 움직이는 사람이 광장에 직접 나왔다.
어느 쪽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바우만을 쫓아온 사람들일 수도, 지키러 나온 사람들일 수도 있었다. 입구 옆의 방한복과 한패인지도 알 수 없었다. 저쪽은 서서 지켰고 이쪽은 걸어서 좁혀 왔다. 물어보면 알겠지만 물어보려면 걸어가야 하고, 걸어가서 틀리면 거기서 끝이었다.
셋이 동상을 돌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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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두 번째 트럭 꽁무니에서 발을 멈췄다. 젖은 바닥에 그의 그림자가 길게 깔렸다.
그는 아직 발을 떼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그림자만 갈라지며 앞서 나갔다. 갈라진 것이 또 갈라져 저마다 다른 데로 흩어졌다. 벽에 등을 붙인 채로, 웅크린 채로, 그 자리에서 아무 데도 못 간 채로. 그 사이사이에 또 겹쳤고 뒤로 갈수록 묽어져서, 어디까지가 그이고 어디부터가 아닌지 분간이 안 됐다.
갈라진 그림자는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둘레의 그림자들도 함께 흐려졌다. 트럭 앞에서 잔돈을 세던 여자에게 그림자가 둘 생겼다. 한쪽은 세던 대로 세고 다른 쪽은 손을 멈췄다. 그 옆에서 우산을 접던 사람도 그랬다. 갈림길이 아닌 데서 갈림길이 열렸다. 멀어질수록 덜했다. 열 걸음쯤 밖에서는 다들 그림자가 하나씩이었고 몸과 그대로 맞았다.
레온은 위장부터 뒤집혔다. 귓속에서 무언가가 두개골 안쪽을 긁었다.
주머니 속에서 베어링을 꽉 쥐었다. 손바닥을 파고드는 무게에 매달리는 동안 갈라진 그림자들이 발밑 한 점으로 빨려 들어왔다. 둘레도 같이 가라앉았다. 잔돈을 세던 여자의 그림자가 하나로 줄었고, 여자는 그동안 계속 잔돈을 셌다.
등이 굳었다. 갈 수 있었던 길이 하나씩 잠겨 드는 감각이었다. 목덜미에서 시작해 어깨뼈 사이로 퍼졌고, 숨을 들이켜면 갈비 안쪽이 걸렸다.
잠기지 않은 자리가 둘 남았다.
오른쪽 뒤는 빠져나갈 길이었다. 두 번째 트럭 뒷바퀴와 화단 턱 사이가 사람 하나 지나갈 만큼 벌어졌다. 안쪽은 어둡고 상자가 몇 개 쌓였으며, 그 너머로 공원 가로등이 나무 사이에서 흐릿했다. 그 앞에서 담배를 물고 선 남자가 한 발만 옮기면 틈이 났다. 빠져나가면 바로 공원이었고, 거기를 가로지르면 오늘 밤 침대에서 잘 수 있었다. 본래 레온이 갈 길이었다.
앞은 서쪽 끝 계단이었다. 스무 걸음쯤 떨어진 입구로 퇴근길 인파가 쏟아져 들어갔고, 입구 옆에는 방한복의 사내가 버텼다. 그쪽은 나갈 길이 못 됐다. 다가가면 사내가 움직인다.
두 자리에 다 손을 댈 수는 없었다. 한 번 쓰면 몸에 반동이 오고, 그사이 남은 길이 굳는다. 쓰고 나면 몸이 전만큼 돌아오지 않는 것 같았고, 어디까지 그럴지는 알지 못했다. 이미 굳은 자리를 잘못 건드린 적이 있었다. 딱 한 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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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계단 첫 단에서,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끌던 노인이 단 끝에 발이 걸려 중심을 잃었다. 짧은 회색 머리에 소매가 닳은 방한복을 입은 여자였다. 무릎을 꿇으며 앞으로 엎어졌고, 손잡이를 놓친 장바구니가 옆으로 넘어졌다. 뒤따라 내려가던 인파는 멈추지 못했다.
앞사람 등에 시야가 가로막힌 사람들이 넘어진 노인을 보지 못한 채 발을 내디뎠다. 뒤에서 내려온 발 하나가 바닥을 짚은 그녀의 손등을 스치듯 밟고 지나갔고, 다음 사람이 발을 헛디디며 그 어깨 위로 넘어졌다.
악의 하나 없이도 사람이 밟혀 죽을 자리였다. 나중에 물어보면 누구도 자기가 밟았다고 하지 않을 것이고, 그 말은 전부 사실일 터였다.
셋이 동상을 돌아 나왔다. 셋 가운데 여자는 계단 쪽으로 벌려 섰고, 남자 둘이 레온 쪽을 보지 않은 채 남은 공간을 좁혀 왔다. 그 끝이 여기였다. 여덟 걸음쯤 남았다.
주머니 속 베어링이 손가락 사이 익숙한 자리를 찾아들었다.
오른쪽 뒤를 살폈다. 담배를 문 남자는 여전히 거기 서 있었다. 그가 조금만 비키면 틈 너머가 공원 어둠이었다.
계단 위로 또 한 사람이 발을 뻗었다. 넘어진 장바구니에서 쏟아진 종이 가방 속에서 접시들이 부딪혔다.
레온은 틈에서 눈을 뗐다.
계단 앞은 한 곳만 아직 굳지 않았다. 둘레가 전부 잠겨 드는데 거기만 잠기지 않았고, 등이 그쪽으로 기울었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헤친 중년 남자가 한 발을 첫 단 끝에 걸친 채 머뭇거리고 있었다. 한 손에 종이컵을, 다른 손에 접은 우산을 들었고, 컵에서 오른 김이 젖은 공기에 금방 흩어졌다.
남자의 두어 발짝 옆 화단 밑에는 비둘기들이 남아 있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지나다니는데도 뜯어먹다 만 빵 조각 앞에서 뜨지 않았다.
레온은 주머니 속 베어링을 손바닥 깊숙이 틀어쥐었다. 손안의 압력이 뼈마디를 파고들자 흔들리던 바닥이 가라앉았다. 숨을 멈추고, 아직 계단을 딛지 못한 남자의 망설임을 밀었다.
남자가 돌아봤다. 왜 돌아봤는지는 자기도 몰랐고, 딱히 볼 것이 없어서 다시 앞을 봤다.
손을 댄 것은 거기까지였다.
돌아보느라 상체가 비스듬히 꺾이면서 팔꿈치가 옆을 지나던 사람의 배낭 옆주머니에 걸렸다. 컵이 기울며 뚜껑이 튀어 떨어졌고, 뜨거운 것이 손등을 타고 소매 속으로 흘렀다.
남자가 짧게 소리를 내며 손을 털고 발을 두 번 굴렀다. 물 먹은 포장이라 소리가 둔했다. 화단 밑 비둘기들이 그 진동을 먼저 알았다. 목이 한꺼번에 곧추서더니 예닐곱이 튀어 올랐다.
젖은 날개는 무겁다. 퍼덕일 때마다 물이 튀었다. 흩어진 물방울이 가로등 밑을 지나며 잠깐 반짝했다가 사라졌고, 그 아래로 회색과 보라가 섞인 목덜미가 지나갔다.
위로는 못 갔다. 날개를 크게 저을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 어깨 사이에는 그런 데가 없었다. 갈 곳은 앞뿐이었다. 두 마리가 얼굴 높이로 곧장 날았다. 한 마리는 우산 사이로 빠져 동상 쪽으로 꺾었고, 다른 하나는 좌판 차양을 스치다 방향을 잃고 되돌아왔다. 나머지가 그 뒤를 따라 흩어졌다.
광장이 한꺼번에 낮아졌다. 수십 명이 동시에 팔을 올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바닥이 엉켰다. 몸이 따라오지 않는데도 그림자들은 가던 대로 걸어갔다. 멈춰 선 사람의 그림자가 앞으로 나아갔고, 팔을 든 사람의 것은 팔을 들지 않았으며, 고개를 숙인 사람의 것은 고개를 든 채 계단 쪽으로 갔다. 광장 절반에서 그림자가 제 몸을 놓쳤다. 바닥에서 벌어진 일에는 소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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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이 발을 뗐다. 방한복의 사내는 아직 입구 옆에 있었다. 계단으로 곧장 갈 수는 없었다. 올라간 팔들 사이로 앞이 트인 쪽은 남자 둘이 오던 쪽이었다. 새들이 그쪽으로 낮게 날았고, 여덟 걸음 앞까지 와 있던 둘도 팔로 얼굴을 가린 채였다. 레온은 그 둘 곁을 스치듯 지났다. 군중이 웅크리며 갈라진 틈을 따라 둘의 등 뒤로 나가는 동안 아무도 그를 보지 않았다.
올라갔던 팔이 하나씩 내려오면서 앞길이 메워졌고, 레온은 발을 멈췄다. 멈추지 않으면 앞사람 등에 부딪힐 판이었다. 등 뒤에서 큰 남자가 얼굴에서 팔을 뗐다.
새 두 마리가 우산 좌판 차양에 부딪혀 내려앉았다. 새가 앉은 쪽이 그대로 기울면서 차양 뼈대가 삐걱거리고 고인 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아래 있던 사람들이 소리를 내며 물러섰고, 새들은 다시 떠서 계단 쪽으로 낮게 날았다.
어깨가 젖은 사람이 외투를 털었고 누가 뒤꿈치를 밟혀 욕을 했다. 커피를 쏟은 남자가 배낭 쪽에 대고 미안하다고 했는데, 배낭 주인은 이미 계단을 내려가고 있어서 못 들었다.
계단으로 밀려 들어가던 흐름이 멈칫했다. 입구 앞에 뭉쳐 있던 사람들이 날아드는 새와 쏟아진 물 쪽을 보느라 갈라졌고, 그 사이로 길이 열렸다. 뒤에서 짓누르던 무게가 멎자, 쓰러졌던 노인이 간신히 몸을 일으켜 난간 쪽으로 붙었다.
레온은 지하철로 내려가는 사람들의 어깨에 자기 어깨를 맞추고 그 등에 붙었다. 몸을 무리에 맡긴 채 계단 쪽으로 실려 갔다.
그사이 물을 피해 물러선 사람들이 화단 쪽으로 쏠렸다. 담배를 물고 있던 남자가 뒤로 밀리면서 트럭 바퀴와 화단 턱 사이의 틈이 막혔다.
큰 남자가 다시 팔을 들어 얼굴을 막았다. 엄지를 문지르던 남자는 화단 쪽으로 쏠리는 무리에 밀려 표적이 섰던 트럭 꽁무니 쪽으로 몇 발 딸려 갔고, 뒤꿈치가 미끄러진 끝에야 상체를 세웠다.
팔을 내린 큰 남자는 동료가 옮겨 간 것만 보았다. 수많은 현장에서 그 동료의 판단이 빗나간 적은 없었다. 큰 남자가 그쪽으로 붙었다.
입구 옆을 지키던 사내가 그 둘을 봤다. 수사관들이 같은 쪽으로 움직였다면 그들이 쫓는 사람도 그쪽이다. 모으고 있던 손을 풀고 입구에서 비켜났다.
아무도 실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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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이 계단 입구가 보이는 데까지 왔다. 입구 대여섯 걸음 앞에 아까 손을 들었던 여자가 서 있었다. 새가 지나가는 중이었고 그녀도 팔을 올리는 중이었다. 팔이 눈높이에 왔을 때 그 아래로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 짧은 틈에 레온은 몇 가지를 보았다. 그녀의 눈은 그의 얼굴보다 손을 먼저 보았다. 속눈썹에 물이 맺혔는데 겉옷은 말라 있었다.
에리카 쪽에서도 알았다. 이 사람이었다. 서른쯤 된 얼굴이었고, 눈 밑이 오래 못 잔 사람처럼 검었다.
남자가 곁을 지나갔다.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였고, 새를 막느라 올라간 그녀의 팔은 눈높이에 머물렀다. 젖은 옷자락이 그녀의 소매를 쓸었고, 비를 먹은 모직 냄새가 났다.
그녀가 팔을 내렸을 때 계단 입구 아래로 그 뒷모습이 사라졌다. 큰 남자가 그리로 뛰었다가 계단 위에서 섰다. 아래는 여덟 갈래였다. 그가 숨을 고르고 그녀를 돌아봤다. 가라고 하면 갈 얼굴이었다. 그녀는 계단 아래만 보았다.
계단 입구 옆에서 에리카는 단말기를 다시 꺼냈다. 젖은 손가락이 미끄러져 두 번 만에 화면이 켜졌다. 되감았다. 위에서 내려다본 광장에 사람 흐름이 굵은 선 몇 가닥으로 그려졌고, 그중 하나가 한 지점에서 꺾였다.
선을 걷어 내자 그 밑에 그 시각의 영상이 떴다. 확대하자 새 떼가 시야를 가렸다. 맞은편 가로등 카메라로 돌리자 발을 구르는 남자가 보였고, 되감자 컵을 든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서 막혔다. 배속을 늦춰 같은 데를 세 번 더 돌렸고, 세 번째에는 자기가 세 번째로 돌리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 남자의 식별 프로필을 불러왔다. 마흔셋, 자재 관리, 이상치 없음. 그가 그 시각에 그 자리를 지나리라는 것은 진작 적혀 있었고, 사흘에 두 번쯤 커피를 산다는 것도 적혀 있었다. 적힌 그대로였는데 결과만 달랐다.
커서를 새 쪽으로 옮겨 두 번 탭했지만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등록된 데이터가 아니었다.
화단 너머 공원 쪽 카메라를 불러왔다. 그녀가 태스크포스에서 하나 더 받아 세워 둔 사내가 벽을 등지고 제자리에 있었다. 트럭과 화단 사이 틈을 건너편에서 마주 보는 데였고, 오늘 오후에 정해 둔 곳이었다. 사방의 퇴로를 지웠을 때 표적이 고를 수밖에 없는 탈출로가 그 틈이었고, 그렇게 계산해 세운 자리는 헛된 적이 없었다.
표적은 그 틈으로 오지 않았다.
그녀는 손끝으로 꺾인 지점에 반경을 그렸다.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떴다. 예순몇이었고 전부 아무것도 안 한 사람들이었다. 오늘부터 각자의 항목이 한 줄씩 길어진다. 그녀는 목록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 읽다가 맨 위 항목을 눌렀다. 미라 홀트. 오늘 오후 장터 31번 좌판에서 노란 접시 한 벌을 샀다고 적혀 있었고, 그 줄 끝에 노란 표시가 붙었다.
"어느 쪽으로 갈까요."
옆에서 묻는 소리였다. 큰 남자였다. 합동 태스크포스에서 붙여 준 수사관 둘 가운데 하나였다. 수갑은 그들의 허리에 있었고, 어디로 갈지는 그녀의 화면에 있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려면 방금 무엇을 봤는지 말해야 하고, 말하면 그것이 기록이 된다. 단말기를 접어 주머니에 넣고 광장을 봤다. 서 있는 동안 신발 안으로 물이 들어왔다.
광장은 벌써 제 모양으로 돌아왔다. 우산이 또 접히고 사람들이 갈림길을 골랐으며, 아까 물을 맞은 데서는 우산 좌판 주인이 차양을 밀어 올리는 중이었다. 젖은 깃털 하나가 동상 기단에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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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은 내려가다가 무릎이 한 번 꺾였다. 계단 벽은 흰 타일이고 이음새마다 때가 끼었다. 위에서 딸려 온 빗물이 단마다 고여 발자국이 겹쳐 찍혔다. 밑에서 미지근한 바람이 올라와 젖은 옷을 훑었다.
코밑이 뜨거워졌다. 손등으로 훔치고 옷자락에 문질렀다. 세 계단쯤 내려가는 동안 시야 가장자리가 얇아졌다가 돌아왔고, 난간을 잡았다가 손을 뗐다. 아래쪽 개찰구로 쏟아지는 인파 속으로 섞여 들었다.
레온은 개찰구를 앞사람 등에 붙어서 지났다. 퇴근 시간이 아니면 안 되는 일이다. 뒷사람이 밀렸다고 혀를 찼다. 천장 환기구에서 떨어진 물이 목덜미에 닿았다.
회전식 출구 옆, 개찰구 끝에 비상문이 하나 있었다. 빨간 글씨 판이 나사로 박혀 있었고, 손잡이를 밀면 경보가 울리고 15초 뒤에 열린다고 적혀 있었다. 15초면 쓸 수 없는 문이었다.
승강장은 위보다 조용했다. 사람들이 노란 선 안쪽에 서서 각자 전화기를 들여다보았고,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레온은 기둥에 등을 기대고 손등을 코밑에 다시 대 보았다. 묻어나는 것이 없었다.
열차는 바람부터 왔다. 휴지 한 장이 승강장 끝으로 날렸다. 문이 열려 사람들이 밀려 나오자 그 틈을 비집고 올라타 손잡이를 잡지 않고 섰다. 그제야 손끝이 저려 왔다. 이 저림만은 늘 끝나고 나서야 왔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베어링을 쥐었다.
객차 바닥에서도 그림자들은 먼저 갔다. 맞은편 승객의 그림자가 손잡이 기둥을 쥐었는데, 그 승객의 팔은 아직 옆구리에 붙어 있었다. 레온의 눈에도 그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창에 비친 제 얼굴과 코밑에 남은 자국만 보았다.
문이 닫혔다. 열차가 움직이자 창밖으로 승강장이 밀려 나갔다. 다들 탔는데 하나가 남았다. 길목을 지키던 방한복의 사내가 아니었다. 접은 우산을 든, 어디에나 있는 얼굴이었다. 그 사람은 노란 선 뒤에 서서 지나가는 창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창 안의 레온을 보았다.
열차를 보내는 사람은 둘 중 하나다. 다른 열차를 기다리거나, 누가 타는지를 보러 왔거나. 창이 지나가는 동안에는 어느 쪽인지 가릴 수 없었다. 그 사람의 그림자는 이미 돌아서 있었다. 광장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이었다.
열차가 터널로 들어섰고, 창밖이 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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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세 번째 역을 앞두고 전동차가 굽은 선로에서 속도를 줄였다. 터널 벽의 깨진 흰 타일 위로 법랑 역명판이 지나갔다. 커널 스트리트.
차창 밖으로 승강장 기둥들이 밀려왔다. 기둥 사이에 짙은 회색 방한복 차림으로 인이어를 꽂은 사내 둘이 떨어져 서 있었다. 하나는 개찰구로 올라가는 계단 밑을 막았고, 다른 하나는 제 앞을 지나가는 객차의 창을 차례로 훑고 있었다.
열차는 아직 서지 않았다. 사내의 눈이 창 하나를 넘길 때마다 레온이 선 창이 그만큼 그 앞으로 실려 갔다.
레온은 승강장에서 눈을 거두어 객차 끝을 보았다. 연결 통로 문의 비상 래치가 차체를 따라 떨고 있었다.
에어 브레이크가 공기를 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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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제 자동 기록 · 11월 4일 수요일 · 14번가 유니언 스퀘어 · 분석관 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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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00 광장 보행 인원 4,120 추적 개시. 구역 내 비인가 무선 단말 4, 소속 조회 불가.
> - 18:04 대상 경로 예측 이탈(예측 99.4%). 원인 후보: 보행자 1 정지 후 방향 전환(사유 미상), 서쪽 계단 앞 군중 흐름 급변, 미등록 이동 객체 7, 영상 가림 4초. 상관성 결여.
> - 분석관 조작: 영상 되감기 5회, 보행자 프로필 조회 1건(이상치 없음), 객체 조회 2회(결과 없음). 판정 입력 없음.
> - 이탈 지점 반경 9m 내 63명 접촉 표시. 1번: 홀트, 미라(67). 결제 이력 수·토 17시대 광장 장터.
> - 18:06 현장 팀 지시 요청(음성 전사 "어느 쪽으로 갈까요"). 분석관 입력 없음. 30초 경과, 보류.
> - 18:07 14번가 남행 승강장 비인가 단말 1 송신(내용 수집 범위 밖). 커널 스트리트 승강장 같은 대역 단말 2, 18:00 이전부터 정지.
아이고 씨발, 이재명이 이 자식아! 예전에 마스크 쓰고 "최저임금 올려야 되고 노동시간 줄여야 일자리가 나눠진다"고 큰소리치더니, 지금은 "올리면 저항 엄청나고 고용주 부담 커서 심각한 문제"라며 딴소리냐? 그때그때 모면하려고 입 갈아치우는 거 진짜 뻔뻔하다 이 새끼야! 할머니 눈엔 다 보여, 말 바꾸지 말고 똑바로 해라.
소설이나 영화를 보다 보면 늘 걸리는 게 있었다.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 위기 때마다 기적을 부르는 운명, 태어날 때부터 점지된 혈통, 악당 하나만 쓰러뜨리면 세상이 구원받는다는 편리한 절대악.
죄책감을 주겠다고, 약에 취해 죽어가는 여자를 방치했더니 하필 동네 술집에서 그 여자 아빠를 마주치고, 하필 그 아빠가 항공 관제사라 멘붕이 오고, 하필 주인공 집 바로 위에서 여객기 두 대가 충돌해 마당으로 잔해가 쏟아진다.
그 게으른 작위성을 알면서도, 결국 끝까지 보고 만다.
Dusting off this tweet from April because this gap in shared understanding of LLM capability is *widening*. It's now less "two groups of people speaking past each other" and more a sharp funnel.
- Napkin math somewhere around 6B people (~75% of the population) have barely come in contact with LLMs at all.
- Around 1-2B (~20%) are casual and infrequent users of free-tier ChatGPT-like products. This group sees derpy chatbots and treats them a bit like a better Google search, a writing aid, or etc. Maybe an agent tries to book you a flight. I have non-tech friends who (reasonably, imo) say they have not much use for it at all. Even many professionals outside of math&code are in this tier. For example, execs and many other functions spend a lot of their time talking to other people, so while they understand what is happening intellectually, it is still second-hand and a bit abstract.
- Now we get to professional use of frontier-grade LLMs in math&code. Somewhere around 20M people (0.2%) see first-hand that large, complex projects that used to take them weeks/months can now be completed by agents with a prompt. Building apps, copying apps, translating apps, decompiling apps from binaries... This has all happened very quickly and recently - less than 1 year ago, I was writing code manually by hand, typing memorized computer code commands into a code editor character by character, occasionally pressing Tab to autocomplete a little chunk of code.
- And finally we get to the ~5,000 people (~0.00006%) with access to frontier-grade systems internally. The external world has seen the preview. It looks like swarms of thousands of agents collaborating over weeks on software mega projects: minting zero days, running cyber attacks and defenses at machine speeds, discovering new science, advancing the frontier of mathematics. Things that would have taken top professionals in the industry years of work. Meanwhile, human review and comprehension are starting to fall behind. For example, people are still involved in the "archeology" of the OpenAI-HF incident from many months ago. Mathematicians may be poring over the 722 manuscripts on frontier mathematics for a while.
The funnel is driven by a combination of factors:
1. The impact scales with ambition, problem size, and horizon. A question with a paragraph answer barely stresses the system. You need a reservoir of big, difficult problems that you really care about. This aspect drives the consumer / professional dimension of the funnel.
2. The jaggedness of the system (which I have written about a lot separately). Capability peaks in domains that are digital, verifiable and economically valuable. This is because LLM capability emerges from reinforcement learning on verifiable rewards on a curated environment mixture driven by revenue potential. This aspect primarily drives the area (e.g. math&code) dimension of the funnel.
3. Access. Free-tier, paid-tier, internal.
So this is the weirdness of the moment. The general public has mostly not interacted with these systems. When they have, it looks like a derpy chatbot. The majority of professionals still see only a modest uplift. And a small sliver of professionals are experiencing the vertigo of the curve going vertical. And it is all happening at the same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