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yourLv 관둬. 말하지 마. 너는 내 목적이 아니고, 이곳에 존재할 수도, 그만한 배경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아. 출구는 저쪽. 방랑의 끝에 하자 있는 놈한테 구걸할 만큼 괴로운 게 끝나거든 다시 찾아. 그리고 그때 내가 널 기억하지 못한다면, 네 고용인이 될 테니 죽여. 나를. 이게 내 공백이야.
@FromyourLv 기억이 조금이라도 흔들릴 때 찾아온 것에 감사해야 할 거야. 아니었다면 네 목구멍에 두 발 정도는 박혔을 테지. 졸라가 만든 몸도 아니고, 내가 아는 놈도 아닌데, 팔을 알고 위치를 찾아내. 어디에 개연성이 있는지 모르겠군. 머리에 이상이 생긴 모양이지.
@FromyourLv 상대가 보였을 반응도 알만하군. 얼빠진 고용인을 만났어, 네 핏덩이는. 이봐, 젖먹이. 신상을 캐내려거든 본인을 확실히 감추든, 적개심을 내비치든 하나는 해.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재잘재잘 떠드니 집중이 안 되잖아. 네 기준으로 호빗 초판본이 몇 년 전에 나왔는지 계산해 봐. 1937년 작이야.
@FromyourLv 안 무서워. 애초에 난 기억되기 위해 설계된 목적물이 아니야. 그런 건 너 같은, 시간에 존재할 수 있는 이에게나 배당되는 특권이지. 네가 뭘 잃었고, 뭘 위해 이 구석진 옥상까지 따라붙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너를 기억하지 못해. 그러니 기억해 줄 수 있는 사람한테 가. 가서 빌어.
@FromyourLv ······ 하나는 명확해졌네. 그 이상한 쫄쫄이 말이야. 어지간히도 눈에 띄어. 잠행복 따위 입지 않아도 빠져나갈 길이 있다는 자신감인가? 되도록 네 고용주한테 보그드 전쟁엔 파병 보내지 말라고 해. 거미줄 붙일 건물이 없거든. 아니, 젠장. 그쪽은 끝난 지 한참이겠어.
@FromyourLv 모든 세포가 생존에 필요한 극히 드문 기능을 제외하고 정지한 다음, 깨어났을 때의 여파는 ‘안타깝다’ 정도로 설명할 수 있는 격통이 아니야. 빌어먹을 세상을 저주하게 되지. 네 취약점은 외로움인가 봐. 함부로 떠벌리고 다녀도 괜찮아? 나야 지져지면 잊는다지만. 감정은 네 심정에 남을 것 같네.
@FromyourLv ······ 핏덩이가 네 고용주야? 그를 위해 네 모든 걸 헌신할 수 있다면, 시간을 버리는 것도 할만한 짓이 되겠지. 그게 아니라면, 네게 선택권이 있다면 설득해. 네 몸은 보통 사람들처럼 시간에 비례해서 늙지 않아. 심장이 빨리 뛰잖아. 동갑이 되거든 너보다 시간을 앞지르는 건 순식간일걸.
I have a mission and it is the very utility through which I prove my worth. Nothing beyond what is true truly matters. Is it not utterly futile to seek truth in things that serve no necessary purpose?
그러나 그때의 우리는 몰랐다. 삶을 탈취당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영원히 느리게 늙어간다는 말이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될지 몰랐다. 해동되고 녹길 반복하며 아는 것이 모르는 것이 되기까지, 원망과 부질없음을 반복하며 나는 내가 아닌 ‘내’가 되었다. 포기는 없다. 내 것이 아니므로.
처음엔 아득했지만 현실은 점점 분명해졌다. ‘설원의 끝에서 인간의 삶은 이어질 수 없다.‘ 이 빌어먹을 공간을 빠져나갈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평화로웠다. 죽음을 예견한 순수하고 순진한 시절엔 포기가 쉬웠다. 맑은 하늘을 보며 우연히 잠에 들면 그만이었다.
시대는 혼란했으며, 우리는 알고 있었다. 세상엔 반전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단지 어둠이 내리면 몸을 숨기고, 환한 빛이 들어오면 자리에서 일어나 주어진 일을 하면 그만이다. 개개의 특색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시대상의 특징에 절차의 위배성을 주장하는 마음이나, 발악은 소용이 없다.
철제 기계 따위에 몸이 묶이거든, 어디에서 들리는지 모를 비명 소리와 북 소리 같은 것이 꼭 다시는 눈을 뜨지 말자 되뇌는 것 같아 껄끄러웠다. 껄끄럽다는 게 뭔지는 모르겠으나 종종 그런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곧대로 얘기하거든 머리에 다시 쇠가 박힐 테고. 그러면······.
피어스는 종종 제게 성비가 좋지 않다 말했다. 냉동고에 처박힐 적에 들어가는 품위 유지비며, 깨어나거든 신진대사가 살아있는 것들에 비해 높아 소모율이 높다고. 옳다 생각했다. 병사란 곧 집단의 도구이며, 소모되는 제품에 가깝다. 곳간을 채워넣진 못할망정 내내 열기나 갈망하고 있으니 녹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