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esWu41845006 한국의 문헌사학계를 중심으로 근래까지만 해도 기자조선을 인정하는 기조였지만 고고학의 발달에 따른 정면 배치 근거들이 나오면서 기자조선설은 사장되었다. 다만 기자의 존재나 기록은 부정하지는 않는다. 요즘은 고대 중국의 영향력을 거론할 때면 기자(箕子)보다 연나라와 한사군이 더 언급된다.
@JamesWu41845006 고조선의 준왕을 몰아낸 위만이 연나라 출신이어도 현지 문화와 언어를 쓰고 현지화를 거쳤으니까 위만조선 또한 한국사로 보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 한사군은 토착 고조선인들을 지배하는 한나라의 기미주 같은 위치였기 때문에 한사군은 한국사의 일부였을지언정 한국 왕조나 세력으로 보지 않는다.
@JamesWu41845006 하지만 중국 국내도 그렇고, 한국 사학은 물론 해외학계는 청나라를 중국사로 인정한다. 결국 뿌���는 이민족이어도, 만주족이 중국의 문화와 질서를 통치 근거��� 활용하고 중국어를 구사하며 스스로를 중화 천하의 주인으로 생각했으니까 다 청나라도 중국사로 인정하는 거임.
@JamesWu41845006 반면, 국제학계가 발해를 온전히 한국사로 보지 않는 이유도 크게 네가지. 첫번째, 건국 주체의 다양한 구성 (고구려인+말갈인). 두번째, 대씨 왕실의 족원에 대한 불확실성 (고구려인인가, 속말말갈족인가). 세번째, 발해 언어와 문화의 다민족적인 형태. 네번째, 멸망 이후 흩어져 사라진 발해인들.
@JamesWu41845006 국제학계가 고구려를 한국사로 보는 이유는 크게 네가지. 첫번째, 대다수 고구려���들의 발해 잔�� 및 신라 합류. 두번째, 신라의 고구려인 통합 정책 및 삼한일통 사상. 세번째, 고구려인들의 고구려 계승국인 고려 건국 및 발해 유민 대규모 수용. 네번째, 고구려의 정치문화 및 혈통적 연속성.
@JamesWu41845006 정말 만한(滿漢)이 한 가족이었다면, 수만 명의 명나라 사람들이 조선에 망명할 일도 없었겠지. 이들이 굳이 중원을 떠나 해동의 변방으로 올 이유가 없었다. 중국에서 유명한 송지효도 이여송의 부관이였던 명나라의 총독장(總督將) 천만리(千萬里)의 후손이다.
@JamesWu41845006 요나라/금나라로 끌려간 발해인들은 몽골족, 만주족, 중국인이 되었고, 고려에 망명한 발해인들은 한국인이 되었다. 고구려보다 훨씬 복잡한 문화 양상과 인구 구성에 대한 갑론을박 때문에 국제사학계는 고구려는 철저히 한국사로 보는 한편, 발해는 온전히 한국사로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JamesWu41845006 발해 멸망 이후 유민들은 크게 세 가지 갈래로 흩어졌다. 첫번째는 요나라로 끌려간 사람들. 두번째는 고려에 귀부한 사람들. 그리고 세번째는 고토에 남아 요나라에 저항한 사람들이다. 세번째 부류도 나중에 요나라/금나라와 고려로 흩어지게 된다.
@JamesWu41845006 한족과 만주족이 한 가족이라고 볼 수는 없을 텐데... 의화단 운동, 태평천국 운동, 신해혁명까지. 니 말대로 이건 한 이민족이 중원을 강탈해 중국을 참칭한 사건에 가깝다. 물론 청나라는 중국사로 본다만, 명청 교체��� 과연 중원이라는 틀 속에서만 일어난 일이라고 본다면 그건 오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