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는 원래 우리나라 국기인데 우파의 상징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네. 그들이 강탈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오해받지 않으려면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뭐 이런 논리인가? 그렇게 말하면 일베가 오염시킨 우리말들은 평생 안쓰면서 살건가요? 되찾아와야지. 오염시킨 사람들을 꾸짖어야지.
이란 외무부가 다급하게 마이크를 잡았다. 미군 아파치 헬기와 이란 무인기(드론)가 충돌한 직후, 미군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란 남부를 폭격해 버리자 융단폭격을 맞은 이란이 "고의적인 공격이 아니었다", "의도치 않은 우발적 사고"라며 황급히 꼬리를 내린 것이다.
이 눈물겨운 이란의 항복 선언을 듣고 있자니, 묘한 기시감과 함께 서늘한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고의성이 없다." 참으로 익숙한 변명 아닌가. 그렇다. 불과 얼마 전, 대한민국 상선에 이란의 대함 미사일 두 발이 연달아 꽂혔을 때 이재명이 천연덕스럽게 내놓았던 바로 그 기적의 알리바이다.
하지만 두 사건의 군사적 본질을 차갑게 대조해 보면, 이재명 정권이 연출한 블랙코미디는 한층 더 기괴하고 역겹게 다가온다.
미군 헬기와 부딪힌 드론은 기계적 결함이나 조종 미숙이라는 '우발적 사고'의 여지라도 아주 희박하게나마 주장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우리 상선에 꽂힌 것은 '대함 유도 미사일(Guided Missile)'이었다. 미사일은 결코 바람을 타고 우연히 날아가지 않는다. 레이더로 표적의 좌표를 획득하고, 조준(Lock-on) 상태를 유지하며, 최종적으로 사격 통제 장치의 발사 버튼을 직접 눌러야만 날아가는 무기다. 심지어 1분 간격으로 두 발이 연달아 배의 선미를 정확히 때렸다. 군사학적으로 이는 100% 완벽하게 통제된 '고의적 조준 타격'이다. 세상 어떤 군대에서도 유도 미사일 두 발이 실수로 발사되어 같은 타깃을 맞히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후에 이란이 우리 정부를 향해 먼저 나서서 "고의가 아니었다"고 머리를 조아리며 해명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던가? 없다. 가해자는 오만하게 팔짱을 끼고 침묵하는데, 정작 미사일을 처맞은 피해국의 정부가 나서서 "이란이 인정하지 않으니 고의성을 알 수 없다"며 굽신거렸다. 스스로 국가의 뇌를 비우고 가해자의 심리 치료사를 자처한, 전무후무한 외교적 자해극이었다. 우리 상선 보호보다, 반미 전선의 우방인 이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숭고한 가치였던 셈이다.
반면 미국의 방식은 달랐다. '실수'일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드론 충돌 앞에서도, 미국은 이란의 내면적 의도 따위를 자비로운 독심술로 헤아려주지 않았다. 군 통수권자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이란 영토에 자위적 폭격을 쏟아부어 버렸다. 압도적인 물리적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이란은 헐레벌떡 무대 위로 기어 나와 "제발 오해하지 말라, 고의가 아니었다"며 납작 엎드려 평화를 구걸했다.
이것이 국제 정치의 잔혹하고도 정직한 룰이다. 국가의 평화와 안전은 상대의 속마음을 변호해 줄 때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내 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 이상의 뼈아픈 피를 흘리게 된다는 '공포'를 각인시킬 때만 유지된다.
이재명이 양심이 있거든 지금이라도 sns수정하길 권한다.
"한국인을 고의적으로 건드렸다고 시인해야 패가망신한다." 쓰고보니 더 짜치다.
역사를 가르치는 자의 통찰은 때론 그 어떤 정치 평론보다 서늘하고 예리하다.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한국사 강사 최태성이 6.3 지방선거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두고, 1960년 4.19 혁명의 사진을 소환했다.
"백주대낮에 참정권이 침해됐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훼손됐다."
역사학도의 렌즈로 작금의 사태를 투영해 본 결과, 2026년 잠실 투표소 앞의 아스팔트와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분노해 일어섰던 그날의 광장이 정확히 겹쳐 보인다는 서늘하고도 묵직한 경고장이다.
그런데 이 명징한 메시지 앞에서, 좌파 성향 네티즌들이 보여주는 반응은 경이로울 정도로 기괴하다. 그들은 최태성의 글에서 '4.19 혁명'이라는 가장 핵심적인 역사적 메타포를 억지로 도려낸 뒤, 기상천외한 해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핵심은 4.19를 들고나온 게 아니다. 진상 규명과 대안 제시를 전광석화처럼 하라는 행정적 촉구가 핵심이다. 물타기 하지 마라."
이쯤 되면 단순한 난독증을 넘어선 애처로운 정신 병리 현상이다. 4.19 혁명이 무엇인가. 국가 기관이 선거의 룰을 조작하고 주권자의 표를 도둑질한 '3.15 부정선거'에 맞서 정권을 무너뜨린 피 끓는 항쟁이다. 역사를 업으로 삼는 강사가 투표용지 증발 사태에 하필 4.19의 사진을 덧붙였다면, 그 의도는 초등학생도 읽어낼 만큼 노골적이다. 지금 선관위가 저지른 짓이 과거 3.15 부정선거의 21세기적 변종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좌파 맹신도들은 이 서늘한 진실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 4.19의 비유를 긍정하는 순간, 주권자의 입을 수갑으로 틀어막은 경찰과 무능한 선관위, 그리고 그 파행의 결과로 선거 승리의 과실을 챙긴 자신들의 진영 전체가 '1960년의 부패한 독재 정권'과 완벽하게 동기화되기 때문이다.
진영의 앙상한 도덕성이 박살 나는 이 인지부조화의 고통을 견딜 수 없으니, 그들은 기어이 글쓴이의 명백한 의도마저 자신의 입맛대로 윤색해 버린다. "우리 편에 불리한 4.19 비유는 못 본 척할 테니, 이것은 그저 선관위의 행정 실수를 빨리 고치라는 점잖은 훈계일 뿐이다"라고 뇌를 세탁하는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대로 해석하며 스스로 정신적 위안을 얻는 참으로 얄팍하고 지독한 '지적 자위(自慰)'다.
그동안 4.19와 민주주의의 역사를 자신들만의 신성한 전유물인 양 독점해 오던 자들이 아니던가. 그러나 정작 그 역사의 교훈이 자신들의 치부를 겨누는 비수로 날아오자, 그들은 가장 먼저 그 역사의 맥락을 거세하고 텍스트를 왜곡하는 파시스트적 몽매함을 드러냈다.
역사는 진영의 유불리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 있는 뷔페가 아니다. 팩트는 차갑고 묵직하게 그 자리에 존재한다. 한 역사학자는 작금의 투표용지 증발 사태를 3.15 부정선거에 빗대어 4.19를 소환했다. 글쓴이의 의도마저 제 꼴리는 대로 찢어 발겨 억지 자위를 시전하는 저 맹신도들의 눈물겨운 회피 기동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지금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치명적인 독재의 늪에 빠져 있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완벽한 희비극이다.
같은 이유로 대중에게 영향력을 가지는 문학 예술인들도 대중들에게 작품을 던졌기에 대중은 그들에게 사회적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본다. 답을 하든 침묵을 하든 그것 역시 사회적 평가의 대상이 될 것이다. 대중은 질문 할 자격 있고, 사회적 영향력 가진 사람들은 대답 여부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내가 ㅇㅈㅁ 싫어하는거 아는 그의 지지자들은 나를 만나면 어떻게든 설득을 하려고 하는데.. 당신들이 그를 알게 되기 그 이전부터 나는 그를 싫어했고, 민주당에 있을때도 딱 그만 싫었고, 단 한번도 내마음에 든 적이 없으니 헛고생 그만해요. 진도가 달라서 일일이 설명하기도 귀찮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들이 투표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가운데, 대기자 연장 투표를 둘러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지침이 투표소마다 다르게 적용된 정황이 확인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단독] “버려진 대기표로 투표했다”…뒤죽박죽 대기인 투표 마감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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