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알하이탐의 세계는 고요하고 단정했을 것이다. 흩어짐 없고 규칙적인 일상, 그 속에서 그는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평범하고 안정된 나날들이었고, 그 평온은 그의 이성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게 했을 터였다.
반면 어린 루바라의 시간은 결코 평온과는 닮아 있지 않았으리라. 또래라면 응당 누려야 할 안온함 대신, 그녀의 나날은 이른 무게로 기울어 있었을 것이다.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훈련과 억눌린 숨. 평범함은 당연히 주어졌어야 할 것이었지만, 그저 닿을 수 없는 개념에 가까웠다.
그렇게 서로 다른 궤도를 그리며 흘러가던 두 삶은, 결코 교차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균열과 고통이 방향을 틀어 놓았다. 루바라는 결국 그 세계를 떠나기로 결심했고, 그 결심은 그녀를 수메르로 이끌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온했던 세계를 살아온 소년과, 지나치게 거칠었던 세계를 견뎌낸 소녀가 마주한다.
서로가 살아보지 못한 시간을, 가까이에서 마주하듯이.
루바라가 그곳을 떠나 수메르로 향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의 세계는 끝내 스쳐 지나갈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녀의 선택 하나가, 닿지 않을 것 같던 두 삶을 같은 자리에 세워 둔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