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0,126대.
어제 테슬라가 발표한 2분기 인도량입니다. 월가 컨센서스를 7만 4천 대 웃돌았고, 가장 낙관적이던 골드만삭스의 42만 대 전망도 넘었습니다. 전년 대비 25% 성장. 2년간 이어진 감소세가 이 숫자로 끝났습니다.
주가는 7.5% 하락했습니다. 근 1년 새 가장 큰 일간 낙폭입니다.
숫자 자체는 진짜입니다. 북미, 유럽, 중국 세 시장이 동시에 예상을 웃돌았습니다. 한 지역의 보조금이나 한 번의 프로모션으로 설명되지 않는, 수요가 바닥을 지났다는 신호입니다. 여기까지는 분명한 호재입니다.
문제는 숫자의 질입니다.
같은 분기 생산은 451,758대였습니다. 인도가 생산을 28,368대 앞섰는데, 1분기에 쌓인 재고를 그만큼 덜어냈다는 뜻입니다. 생산 기준으로 보면 성장률은 10% 남짓입니다. 물량을 소화한 수단도 저가 트림과 할인, 파이낸싱 인센티브였습니다. 평균판매단가가 얼마나 깎였는지는 7월 22일 실적에서 확인됩니다.
마진이 온전했다고 가정해도 문제는 남습니다.
7% 빠진 지금도 P/E는 390배 안팎입니다. 자동차 판매로 도달할 수 있는 배수가 아닙니다. 컨센서스를 18% 웃돈 발표에 주가가 하락했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줍니다. 물량이 밸류에이션의 변수였다면 어제 주가는 올랐어야 합니다. 시장은 이미 다른 것에 값을 매기고 있습니다.
그 다른 것의 현재 상태는 이렇습니다.
로보택시는 6월부터 오스틴 전역에서 안전요원 없는 무감독 운행에 들어갔습니다. 실체 있는 진전입니다. 다만 텍사스 당국에 등록된 차량은 42대이고, 같은 기간 웨이모는 주 50만 건의 유료 무인 운행을 하고 있습니다.
FSD 구독은 128만 건으로 1년 새 51% 늘었습니다. 자동차 판매와는 성격이 다른 반복 매출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4분기로 예고된 고객 차량용 무감독 FSD가 다음 확인 지점입니다.
사이버캡은 양산 라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연방 안전기준을 자체 충족하도록 설계돼 자율주행차에 적용되는 연 2,500대 생산 상한도 받지 않습니다. 하드웨어 쪽에는 규제 병목이 없습니다.
옵티머스는 V3 실물 공개가 이번 여름, 양산 목표가 7월에서 8월입니다. 지금부터 몇 주가 확인 구간입니다.
이 넷을 같이 놓고 보면, 하드웨어 실행은 예상보다 빠르고 소프트웨어 검증은 예상보다 느립니다. 3만 달러대 자율주행차를 만들 수 있는지는 확인됐습니다. 남은 질문은 그 차를 채울 소프트웨어가 언제 준비되는가입니다.
어제 확인된 것은 자동차 회사 테슬라의 회복입니다. 390배는 그 회사의 가격이 아닙니다. 시장이 미리 값을 치른 것은 로보택시와 로봇의 회사이고, 그쪽의 증거는 아직 42대와 시제품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다음 검증이 7월 22일입니다.
지난주, 팀 쿡이 아이폰·맥·아이패드 가격을 올리겠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메모리 반도체값입니다. 쿡은 이 사태를 "100년에 한 번 오는 홍수"라 불렀고,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했습니다.
애플이 그 말을 했다는 게 이상합니다.
애플은 지난 20년간 지구상에서 공급망을 가장 잘 주무른 회사였습니다. 부품값을 후려치는 데 도가 텄고, 웬만해선 그 부담을 소비자에게 넘기지 않았습니다. 메모리는 애플 같은 거인이 '관리하는' 대상이었지, 애플을 흔드는 변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칼자루를 쥔 쪽이 바뀌었습니다.
숫자가 적나라합니다. 아이폰 17 프로의 D램(12GB)에 애플이 치른 값은 약 39달러였는데, 아이폰 18 프로에선 같은 메모리가 145달러로 추정됩니다. 272% 인상. 그 사이 엔비디아는, 사상 최대 아이폰 판매에도 불구하고, 애플을 제치고 TSMC의 최대 고객 자리를 가져간 것으로 전해집니다.
"하드웨어는 흔해지고,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먹는다." 2011년 이후 업계가 통째로 외운 공식이, 2026년에 뒤집히고 있습니다.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회사는 칩을 '설계'하는 엔비디아입니다. 시총 4.8조 달러 안팎. 글로벌 시총 톱10 안에 엔비디아·브로드컴·TSMC, 반도체 이름이 셋입니다.
그런데 화려한 설계자만 돈을 버는 게 아닙니다.
TSMC. 공장 하나에 200~300억 달러, 올해 설비투자만 520~560억 달러를 쏟는 '자본을 태우는' 제조업입니다. 그런 회사의 1분기 순이익률이 50.5%였습니다. 7나노 이하 첨단 공정 점유율은 90%가 넘습니다. 그 TSMC에 기계를 파는 ASML은, EUV 노광장비를 만들 수 있는 지구상 유일한 회사입니다. 매출총이익률 53%. 칩 만드는 기계를 만드는 회사가, 독점을 합니다.
그리고 가장 극단적인 사례가, 애플을 흔든 바로 그 메모리입니다.
메모리는 반도체 중에서도 가장 '상품'에 가까운 물건이었습니다. 호황과 불황이 시계추처럼 반복되고, 가격은 떨어지기만 하고, 해자가 없어 가치투자자들이 본능적으로 피하던 영역. 그 마이크론이 이번 분기 매출총이익률 84.6%를 찍었습니다(GAAP 기준). 1년 전 37.7%에서요. 엔비디아(74.9%)도, TSMC(66.2%)도 넘어섰습니다.
여기서 고리가 닫힙니다. 애플의 매출총이익률은 38.7%로 내려앉았고, 그 애플에 메모리를 파는 마이크론은 84.6%입니다. 완제품을 파는 회사보다, 그 안에 들어가는 부품을 파는 회사가 두 배 넘는 마진을 법니다. 가장 흔했던 칩이, 스택 전체에서 가장 마진 높은 칩이 됐습니다.
제 판단으로는, "반도체는 싸야 한다"는 건 법칙이 아니라 한 시대의 풍경이었습니다. 무어의 법칙이 18개월마다 연산을 반값으로 떨어뜨리던 시절, 칩은 당연히 흔해질 물건이었고 가치는 그 '위'에서 흘렀습니다. 흔한 것 위에 올라타 돈을 버는 게 합리적이었으니까요. 애플이 메모리를 후려칠 수 있었던 것도 그 시절의 일입니다.
연산이 병목이 되는 순간, 자본은 방향을 틀어 다시 바닥으로 내려갔습니다. 칩이 흔해서가 아니라, 모자라서. AI 데이터센터가 올해 전 세계 메모리의 약 70%를 빨아들이는 지금, 소비자 기기는 남은 것을 두고 다툽니다. 애플조차도요.
그래서 "칩이냐 서비스냐"는 질문은 번지수가 틀렸습니다. 가치는 소프트웨어로도, 하드웨어로도 흐른 적이 없습니다. 늘 '희소하고 복제하기 어려운 곳'으로 흘렀을 뿐입니다. 지금 그 자리가 40년 만에 처음으로 물리적 층에 와 있습니다.
다만 같은 80%대 마진이라도 결은 다릅니다. ASML의 53%는 '독점'이 만든 마진이고, 마이크론의 84.6%는 '품귀'가 만든 마진입니다. 앞은 해자고, 뒤는 병목입니다. 그리고 병목은, 정의상, 그것을 메우려는 자본을 끌어당깁니다.
메모리 업계는 이걸 누구보다 잘 압니다. 마이크론이 1,000억 달러어치 다년 계약을 take-or-pay로 미리 못 박아두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품귀가 만든 마진을 '경기'가 아니라 '구조'로 바꾸려고, 자본이 몰려와 가격을 무너뜨리기 전에 계약서에 박제하려는 겁니다.
자본이 가장 두껍게 몰린 자리는, 가장 먼저 평범해지기 시작하는 자리입니다. 지금 메모리 회사들이 계약서에 못을 박는 그 손놀림이, 그 시작을 가장 먼저 직감한 자들의 움직임입니다.
연준이 시장에 건네던 가장 중요한 한 장의 지도가, 어쩌면 이번 주에 사라집니다.
2012년 벤 버냉키 시대에 도입된 점도표(dot plot)는, 분기마다 공개되어 전 세계 투자자가 연준의 다음 수를 읽어내던 나침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 열리는 FOMC를 앞두고, 새 의장 케빈 워시가 이 점도표 참여를 중단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는 인사청문회에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습니다. "저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믿지 않습니다."
이 한 문장의 무게를 이해하려면, 지난 20년간 연준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야 합니다.
한때 중앙은행에게 불투명함은 미덕이었습니다. 앨런 그린스펀은 '건설적 모호성'이라는 이름으로 의도적으로 알 듯 말 듯한 화법을 구사했습니다. 그는 훗날 회고합니다. 의장 시절 자신이 의견을 한 마디 내놓을 때마다 신용시장이 10bp씩 움직였고, 그래서 너무 민감한 질문에는 '노 코멘트'가 곧 답이었다고. 시장은 그의 말이 아니라 그의 서류 가방 두께를 보고 금리 향방을 점쳤습니다.
그러나 연준은 점차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2000년 위험 균형 평가, 2003년 정책 경로 시사, 2012년 점도표. 정점은 제롬 파월의 시대였습니다. 모든 회의 후 기자회견, 상세한 성명, 미래 경로의 언어화. 연준은 "소통이 통화정책의 효과를 높인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투명성은 곧 책임성이자 민주적 정당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역설이 시작됩니다.
연준은 불확실성을 줄이려 모든 것을 미리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알려준다는 것은, 동시에 자신이 만들어낸 기대에 스스로 인질이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2013년 '테이퍼 탠트럼'이 그 증거입니다. 버냉키가 단지 자산 매입 축소를 시사하기만 했을 뿐인데, 채권시장은 발작했고 공포지수는 치솟았습니다. 시장을 이끌어야 할 연준이, 시장의 반응에 발목을 잡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연준이 시장에 끌려간다"는 비판은 바로 이 지점에서 태어났습니다. 투명성이라는 갑옷이, 어느새 연준의 손발을 묶는 족쇄가 되어 있었습니다.
한편, 워싱턴의 반대편 끝에는 전혀 다른 철학을 가진 인물이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의도적으로 혼란을 설계합니다. 판을 흔들고, 상대를 예측 불가능 속에 가둔 뒤, 그 불확실성 자체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습니다. 예측 가능성은 약자의 것이고, 모호함은 주도권을 쥔 자의 무기라는 본능. 그가 워시를 차기 의장으로 지목하며 "완벽하다"고 칭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케빈 워시가 가려는 길은, 형식만 보면 그린스펀의 모호성으로의 회귀입니다. 점도표를 폐기하고, 기자회견을 줄이고, 시장에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 것. 그는 IMF 회의에서 말했습니다. 중앙은행은 "박수도, 숨죽인 청중도 없는 환경에서 일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고. 시장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시장에게 읽히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이 시대의 가장 날카로운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모호함이 권력을 복원하는 것은 맞습니다. 다만 그 권력은, 모호함을 유지하는 자가 아니라, 그 침묵 속에서 유일하게 또렷이 말하는 자에게 흘러갑니다. 그린스펀의 침묵은 연준에게 주도권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연준이 입을 닫는 동안 대통령이 "금리를 내려라"라고 큰 소리로 외친다면, 그 모호함의 공백을 채우는 것은 연준의 위엄이 아니라 대통령의 목소리일지도 모릅니다.
투명성은 본래 민주적 책임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불투명함은 옛 시대 특권의 언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시장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독립의 명분을 입은 침묵이, 하필 대통령이 원하는 결과를 내기 위해 임명된 의장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더 이상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을 때, 그것은 더 자유로워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저 더 묻기 어려운 존재가 되는 것일까요.
연준은 지난 20년간 또렷이 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제 다시 침묵의 가치를 배우려 합니다. 다만 침묵은 때로 주권자의 자세이고, 때로는 질문받기를 원치 않는 자의 자세입니다. 이번 주, 사라질지도 모르는 그 한 장의 점도표를 우리가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국방은 풍요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Defence is of much more importance than opulence)."
이 문장을 남긴 사람은 보호무역론자가 아니었습니다. 자유시장 경제학의 창시자, 애덤 스미스였습니다.
올해로 출간 250주년을 맞은 『국부론』의 핵심은 우리가 아는 그대로입니다. 개인이 저마다의 이익을 좇을 때, '보이지 않는 손'은 그 사익을 사회 전체의 부로 전환시킵니다. 이 논리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 결론은 명확합니다. 국가는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일에 집중하고, 낮은 부가가치의 영역은 시장의 흐름에 맡겨 자연스럽게 내려놓아야 합니다.
미국이 지난 반세기 동안 걸어온 길이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 제조업은 부가가치가 낮았고, 그래서 떠나보냈습니다.
그 결과는 숫자로 선명합니다. 오늘날 미국이 차지하는 세계 상선 건조 비중은 약 0.1%에 불과합니다. 중국의 한 국영 조선사가 2024년 한 해에 건조한 상선 톤수는, 2차 대전 종전 이후 미국 조선업 전체가 만들어 온 양보다 많습니다. 반도체도 다르지 않습니다. 세계 최첨단 칩의 90% 이상이 대만 한 곳에서 생산되며, 미국은 자국이 필요로 하는 칩의 단 10%만을 스스로 만들어냅니다.
여기까지가 시장의 논리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시장의 논리는 멈춰 섭니다.
패권 경쟁의 시대에 첨단 반도체와 선박은 더 이상 '상품'이 아닙니다. 그것은 안보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국가가 다시 돌아오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보조금, 리쇼어링, 산업 정책. 효율을 위해 시장에 맡겼던 것들을, 안보를 위해 국가가 되사오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풍경을 스미스가 이미 250년 전에 예견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항해법(Navigation Act)이라는 명백한 무역 제한을 두고 '영국의 모든 상업 규제 중 가장 현명한 것'이라 평가했습니다. 영국의 국방이 선원과 선박의 수에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미스는 시장이 모든 것을 지배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의 진짜 통찰은, 보이지 않는 손이 닿지 못하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본질적인 질문은 '시장이냐 국가냐'가 아닙니다.
가격은 평시의 언어입니다. 시장은 '살 수 있는 것'에만 가격을 매깁니다. 그러나 패권 경쟁의 본질은, 결정적인 그 순간에 적국으로부터 결코 살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에 있습니다. 비교우위 이론은 언제든 교환이 가능하다는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봉쇄와 제재가 그 전제를 무너뜨리는 순간, 가장 효율적이었던 선택은 가장 치명적인 약점으로 뒤집힙니다.
21세기의 역설은 바로 이것입니다.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AI 반도체)이, 동시에 가장 전략적인 산업이 되어버렸습니다. 효율과 안보를, 더 이상 분리해서 최적화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250년 전, 스미스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닿지 못하는 자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 경계선을 지금, 다시 한번 칩과 배 위에서 그어내고 있는 중입니다.
버크셔의 알파벳 유상증자 참여
이 신호는 세계 최대 현금부자 기업이 주식을 팔아 돈을 구한다는 데 있다. 자기자본은 가장 비싼 돈이다. 세금 방패가 없고, 영구히 희석된다. 마이어스와 마즐루프의 자금조달 위계에서 증자는 최후의 수단이며, 흔히 '주가가 고평가됐다'는 신호로 읽힌다. 헐값에 빚을 낼 수 있는 구글이 굳이 가장 비싼 돈을 택했다. AI 인프라 경쟁이 가장 강한 기업마저 목숨을 걸게 만든 것이다.
버크셔의 역할은 그 신호를 뒤집는 데 있다. 앵커가 값을 치르면 '비싸서 파는 증자'가 '현명한 매수자가 사주는 증자'로 바뀐다. 그렇다면 버크셔는 AI 수요를 내다본 것일까. 버핏은 구글을 놓친 걸 공개적으로 후회했고, 기술을 평생 피했다. 이번 수는 예지라기보다 버크셔다움이다. 3,800억 달러 현금을 굴려야 하는 후계자 그레그 아벨의 첫 대형 베팅이자, 알파벳의 무너지지 않는 대차대조표에 기댄 하방 방어. 진짜 확신은 '수요가 공급을 넘어선다'며 자기 자본을 거는 알파벳 쪽에 있다.
카를로타 페레스는 기술혁명의 설치기마다 금융자본이 인프라로 쏟아진다고 했다. 운하, 철도, 전력, 이제 연산. AI는 소프트웨어를 자본집약 산업으로 되돌린다. 자산이 없어 무적이던 기술이, 자본가 앞에 줄을 선다.
기축통화의 역사는 안정의 역사가 아니라, 끊임없는 재설계의 역사입니다.
달러의 종말이 임박했다는 선언을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너무 자주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 선언이 반복될 때마다, 달러는 한 번도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매번 자신의 닻을 갈아 끼우며, 다른 시대의 통화로 다시 등장했을 뿐입니다.
1944년 브레튼우즈에서 달러는 파운드 스털링이 짊어졌던 짐을 물려받았습니다. 금이라는 닻을 박고, 온스당 35달러의 금태환을 세계에 약속하며 전후 질서의 회계 단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1971년 닉슨 쇼크와 함께 파기됩니다. 당대에는 한 시대의 종말이라 부르던 그 사건은, 돌이켜 보면 종말이 아니라 첫 번째 탈피였습니다.
1974년, 미국은 새로운 닻을 설계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합의를 통해 원유 거래를 달러로 결제하기로 한 페트로달러 체제입니다. 금이라는 물리적 담보가 빠진 자리에, 인류가 매일 태워야 하는 자원이라는 구조적 수요가 들어섰습니다. 가장 정교한 통화 공학이었습니다. 외형은 같았지만, 골격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두 번째 탈피의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IMF COFER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기준 달러의 외환보유고 비중은 56.9%로, 2000년 71%에서 한 세대 만의 최저치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BRICS의 결제망, 중국의 CIPS와 mBridge, 사우디의 위안화 결제 실험. 페트로달러의 균열은 더 이상 음모론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러나 진짜 이야기는 그 균열 아래에서, 두 개의 층위로 동시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층위는 법적 골격입니다. 테더와 서클이 보유한 미국 국채는 2025년 말 기준 1,6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사우디아라비아와 대한민국의 국채 보유 규모를 동시에 추월했습니다. 테더 한 기업이 전 세계에서 17번째로 큰 미국 국채 보유자이자, 국가를 제외한 최대 단일 보유자입니다. 2025년 발효된 GENIUS Act는 모든 규제 스테이블코인이 미 국채와 단기 달러 자산으로 1대1 준비금을 유지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하고 있습니다. 스탠다드차타드는 이 체제가 2028년까지 미 국채 수요를 1조 달러 추가로 끌어올릴 것이라 추정합니다.
그러나 이 법적 골격보다 훨씬 더 깊은 변화가, 두 번째 층위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브레튼우즈는 44개국 정부의 합의를 끌어내야 작동했습니다. 페트로달러는 사우디 왕정의 협조 위에 서 있었습니다. 미국이 지난 80년간 달러 패권을 유지해 온 방식은, 결국 강력한 군사·경제력으로 상대국 정부의 암묵적 동의를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항공모함이 떠다녀야 했고, IMF가 가동되어야 했으며, 위협과 거래가 끊임없이 오가야 했습니다. 그것은 위에서 위로, 정부 대 정부로 작동하는 패권이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은 이 작동 방식 자체를 뒤집습니다.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터키는 630억 달러 규모의 국경 간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처리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같은 기간 340억 달러, 나이지리아는 260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은, 나이지리아의 그 수치가 자국 정부의 강력한 암호화폐 규제에도 불구하고 달성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정부는 막고 싶었지만, 막을 수 없었습니다.
페소가 무너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자영업자, 리라가 녹아내리는 이스탄불의 청년, 나이라가 휘청이는 라고스의 송금자들은 자국 통화 대신 USDT와 USDC를 스마트폰 지갑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도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미국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국 정부의 화폐 관리 능력보다 미국의 그것을 더 신뢰했기 때문에 달러를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 달러화"의 본질입니다.
제 판단으로는, 이것이 21세기 패권의 가장 결정적인 진화입니다.
이전의 모든 기축통화는 상대국 정부의 문을 열어야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문을 여는 데에는 군함과 협상이 필요했고, 그 문이 닫히는 순간 시스템 전체가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P2P 기술은 문이라는 개념 자체를 우회합니다. 정부가 막으려 해도, 시민의 스마트폰을 압수할 수는 없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작동하던 패권이, 이제 아래에서 위로 자라 올라옵니다. 항공모함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미국 법이 빚어낸 한 줄의 코드와, 무너지는 자국 통화에 지친 시민의 클릭 한 번이면 충분합니다. 신흥국 정부가 위안화로 기울어도, 그 나라 시민은 USDT/USDC로 기울어집니다. 두 흐름은 정반대로 갈라지고, 더 큰 흐름은 후자입니다.
영국의 파운드는 영국이 무능해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닻을 다시 설계할 시간을 잃었기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미국은 지금 세 번째 닻을 빚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닻은 이전 두 번과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이전의 닻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힘에서 나왔다면, 이번의 닻은 상대의 시민이 스스로 손을 내미는 신뢰에서 나옵니다.
암호화폐는 본래 화폐 주권을 해체할 기술로 호명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술이 지금 어디에 도달했는지 보십시오. 가장 정교한 패권은, 강요할 필요가 없는 패권입니다. 그리고 모든 위협은,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결국 패권의 도구가 됩니다.
기여에 비례한 분배는 정의이지만, 모두에게 동일한 분배는 정의가 아닙니다.
이번 삼성전자 노사 합의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단순한 임금 협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지난 두 세기 동안 묵묵히 풀어온 가장 오래된 윤리적 난제 '누가, 얼마나, 어떤 기준으로 가져가야 하는가' 를 다시 우리 앞에 정확히 끌어다 놓은 사건입니다.
저는 초과이익을 그 이익을 만들어낸 사람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명제 자체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HBM의 드라마틱한 성능 도약을 설계한 핵심 연구원이, 자신이 창출한 수조 원의 가치 중 100억·200억을 인센티브로 받는다 한들, 누가 그것을 부당하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일찍이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정의를 "각자의 가치에 비례한 분배"로 규정한 이래, 기여와 보상의 비례성은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합의해 온 가장 단단한 원칙 중 하나입니다.
문제는 그 원칙이 이번 합의에서 정확히 거꾸로 작동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반도체는 본질적으로 장치 산업입니다. 한 자릿수 나노미터의 공정을 구현하기 위해 수조 원의 EUV 노광기가 투입되고, 그 위에서 작동하는 핵심 설계 자산과 알고리즘은 극소수 연구·개발자의 두뇌에서 나옵니다. 자본의 기여도와 비범한 인적 자산의 기여도가 압도적으로 큰 산업이라는 뜻입니다. 동일한 라인에서 정형화된 절차를 수행하는 테크니션의 한계생산성과, HBM4의 TSV 적층 구조를 설계한 엔지니어의 한계생산성은 같지 않습니다. 같을 수 없습니다.
이 비대칭을 시장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NVIDIA가 핵심 엔지니어들에게 천문학적인 RSU를 비대칭적으로 부여하고, 실리콘밸리의 톱티어 기업들이 "10x 엔지니어"라는 용어를 진지하게 운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시장은 기여의 비대칭을 가격에 그대로 반영합니다. 그것이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업이익의 10.5%를 사전에 자동 배분하는 구조는, 이 시장의 신호를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돌려놓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합니다. 어떻게 이런 비대칭 평탄화 구조가 합의의 형태로 명문화될 수 있었는가. 그 답은 우리 노동법 체계의 정교한 비대칭에 있습니다.
노동조합법 제43조는 쟁의행위 기간 중 대체근로를 원천 금지합니다. 라인이 사흘만 멈춰도 직간접 100조 원의 산업 손실이 추산되는 환경에서, 사측은 시장 균형이 아니라 비대칭적 무기 앞에서 협상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번 합의는 한계기여와 한계보상이 만나는 시장의 가격 발견 과정이 아니라, 라인이 멈출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빠르게 봉합된 정치적 타협에 가깝습니다. 미국이라면 1938년 NLRB v. Mackay Radio 판결 이래 사측이 영구 대체(permanent replacement) 카드를 들고 협상 테이블에 앉습니다.
협상력의 출발점 자체가 다릅니다.더 근본적인 문제는 영업이익이라는 항목의 성격에 있습니다. 영업이익은 본래 자본을 댄 주주의 몫이 형성되는 재원이고, 그 일부를 상여로 환원할지의 판단은 이사회의 재량 안에서 매년 새롭게 이루어져야 할 사안입니다. 그것을 노사 합의로 사전에 % 단위로 명문화하는 순간, 그 구조는 상법이 이사회에 부과한 주주에 대한 신탁의무와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그러기에 이번 합의문도 "영업이익의 10.5%"가 아니라 "노사가 합의해 선정한 사업 성과의 10.5%"라는 다소 애매한 문구로 결국 봉합된 것입니다. 명문화의 모양만 남기고 법적 위험은 모호한 표현 뒤에 숨긴, 미완의 봉합입니다. 정교한 분배 설계가 아니라, 정교한 회피 설계에 가깝습니다.
오해는 없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이 합의를 "노동자가 너무 많이 가져갔다"는 시각에서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진짜로 많이 받아야 할 사람이 충분히 받지 못할 수 있는 구조, 평균에 묻혀버린 비범한 기여가 시장 가격을 형성하지 못하는 구조, 그리고 그 잘못된 설계를 가능하게 만든, 비대칭적 협상력과 모호한 법적 봉합이라는 제도의 허점, 이 두 가지를 함께 짚는 것입니다.
평등은 모두에게 동일한 결과를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일한 기여에 동일한 보상을, 비범한 기여에 비범한 보상을 보장할 때 비로소 정의는 작동합니다. 그리고 그 정의가 작동하려면, 분배의 룰을 결정하는 협상 자체가 시장에 가까운 균형 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자본주의가 지난 두 세기 동안 가까스로 작동해 온 비밀은, 그것이 인간의 욕망을 부정하지 않고 그 욕망을 생산성에 연결시켜 왔다는 점에 있습니다. 비대칭적 보상이 사라진 산업은, 구 소련의 연구소들이 그러했듯, 결국 평균이라는 함정에 빠집니다.
그리고 평균은, 반도체처럼 압도적 비대칭이 가치를 만들어내는 산업에서는, 패배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1609년 그로티우스의 『자유로운 바다』는 도전자 네덜란드가 든 무기였다. 영국이, 미국이 차례로 그 깃발을 이어 들었다. 칼 슈미트는 바다엔 법이 없고 항해의 자유란 패권이 자기 질서를 보편의 언어로 번역한 결과라 적었다. 2026년 중국이 그 단어를 꺼냈다. 보편이라 믿었던 것은 처음부터 청구서였다.
기득권이 제 몫을 지키는 건 본능이고, 비난할 일도 아니다. 문제는 제도가 그 본능에 빗장을 덧대는 순간이다. 라잔·진갈레스는 자본주의의 가장 큰 위협이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기존 자본가라 썼다(Saving Capitalism from the Capitalists, 2003). 능력에 윗칸이 닫힌 사회는 빗장을 채운 자들과 함께 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