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조선에 근대의 바람이 불어오고 조명이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엽니다. 1887년 경복궁에 우리나라 최초의 전등이 불을 밝히고, 이후 덕수궁에도 전등이 켜집니다. 100여 년 만에 제자리에 온 이화문 샹들리에 그리고 유리 등갓, 촛대 등 근대 조명기구 100여 점을 돈덕전에서 다시 만납니다.
[전시]
최근 오례는 인사동 윤 갤러리에서 11월 26일까지 전시중인 박기찬 선생님의 《직성(織成), 금사로 짜다》 展을 관람하고 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직금 흉배 유물을 바탕으로 재현된 직금공작흉배 저고리와 흉배를 직접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시]
인사동에서 가까운 운현궁의 노락당(老樂堂)에서는 임지연 작가의 조선 시대 여성의 관모 재현품을 전시중인 《조선 여인의 관모(冠帽)》 展이 11월 24일까지 진행중입니다. 전모, 너울, 지우산, 난모 등 옛 여성이 착용하던 쓰개류를 정성스레 재현한 전시이오니 여러분의 많은 관람 바랍니다.
[전시]
배화여자대학교의 도서실 내 1층에 마련된 전통문화전시관에서는 자수▪︎복식 기획전 《색실로 그린 정성》 展이 진행중입니다.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면복, 적의와 더불어 공주의 봉황문후수 재현품, 17세기 여성의 자수 저고리, 치마 재현품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한제국 궁중 복식으로 보는 자주성 이야기]
1897년 10월 고종은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바꾸고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원구단에서 황제 즉위를 고하는 제사를 지낸 후 스스로 왕에서 황제의 위에 올라 만조 백관들이 보는 앞에서 십이장복을 갖춰 입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즉위식을 거행한 걸로 알려져 있지요.
대한제국하면 떠오르는 궁중 복식하면 역시 면복인 십이장복과 황색 곤룡포일 것입니다. 두 복식 모두 황제를 상징하는 것으로, 왕에게만 주어지던 9개의 장문에서 황제의 복식에서만 주어지는 장문인 해(日)·달(月)·별(星辰)의 3가지 장문이 추가됨으로서 차별을 두었고, 황색(黃色) 역시 황제를 상징하는 색으로 조선 시대에는 함부로 쓸 수 없는 색이었으나 이때부터 곤룡포의 옷 색깔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현전하는 황룡포 유물은 세종대학교박물관에서 소장중인데요. 자료를 살펴보면 해당 유물에 달린 네 장의 흉배 중 가슴과 왼쪽 어깨에는 해, 등과 오른쪽 어깨에는 달의 형상을 표현함으로서 기존의 곤룡포에 사용되던 흉배와는 차별성을 두었습니다. 이를 두고 중국 황제의 복제를 그대로 따라했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겠지만, 옷을 꾸며주는 장식의 크기와 옷의 형태는 당시 유행하던 우리 복식의 양식을 사용하는 국속화(國俗化)의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라 한층 더 의의가 있다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1910년 8월, 한일합병의 경술국치(庚戌國恥)를 겪으면서 대한제국은 13년의 짧은 역사를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망국의 군주가 되어버린 고종(高宗)과 순종(純宗)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존재하지만, 복식만 놓고 볼 땐 그 짧은 역사 속에서도 피어났던 우리의 자주성을 엿볼 수 있는 복식을 착용하곤 했었기 때문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흥선대원군의 관복 (1) - 상상으로 범벅된 흥선대원군의 자적 단령 제작기]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 1821~1898)은 역대 대원군 중 유일하게 살아있던 국왕의 생부(生父)로서 고종(高宗) 즉위 초부터 10년간 막강한 권력을 누리며 국정을 좌지우지 하던 인물이자, 아들인 고종과 정치적 라이벌이기도 했습니다.
재미 있는 점은 하필 살아있는 유일한 대원군이었기 때문에 그의 복식 제도를 정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왕이나 세자보다는 등급이 아래이지만, 그렇다고 문무백관이나 종친과는 같은 수준일 수 없는 그의 지위를 인정하기 위해서 특별한 복식을 착용하게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왕과 왕비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대군의 지위와 동일하게 여겨 기린 흉배에 흑단령을 착용하게 한 모습을 초상화를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전 하는 복식 유물 중에서 관복의 경우 초상화에서 보이는 흉배의 도안을 한 대원군의 흑단령 유물은 남겨져 있지 않고, 자적색 단령 유물과 거북 흉배 유물이 남겨져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관복 색상에 대해서는 초상화와 다르기에 의문이 남아 추후 연구가 더 필요하겠으나, 자적 단령에는 다른 모양의 기린 흉배가 달려있고, 거북 흉배는 문헌 기록과 사진에서 나타나는 유물이지요. 비록 집권하던 당시에는 이런 복식을 착용하지 않았지만, 임오군란 이후 재집권하던 1882년 이후부터는 이와 같은 복식을 착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따른 추정으로 흥선대원군이 1882년 임오군란 이후 궁으로 입궁했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으로 복식을 제작해보았습니다. 관복의 색깔은 자적색으로 하되 흉배는 문헌 기록과 남겨진 유물에 따라 거북 흉배를 사용하고, 허리띠는 수정대(水晶帶)를 사용하였다고 하나, 초상화에서 보이는 밀랍색 포도알 문양의 서대(犀帶)를 사용하였습니다. 옷감과 문양은 당시 유행하던 운보문의 사(紗)직물을 사용하였고, 규격은 작은 거인이라 불렸던 대원군의 신체와 현대인의 신체가 달랐던만큼 유물을 그대로 재현하기 보다는 현대인이 착용할 수 있도록 크기를 늘리고 수정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얼기설기 끼워 맞추고, 규격도 유물과 다른 점이 많으므로 상상에 따른 제작이라서 '복원'이나 '재현'을 했다고 함부로 말할 순 없겠지만, 이러한 의복을 갖추는 행사나 개인 제작자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의복을 갖추었기에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해당 작업은 수개월간 진행하였는데요. 당시 유행하던 문양의 운보문단을 구입 및 여러번 염색하였고, 유물의 규격을 참고하되 착용자의 치수에 맞춰 도면을 완성하였으며, 이후 각 분야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단령, 사모, 서대, 목화, 호패, 쌍학 흉배와 같은 장신구들도 제작하였습니다.
최근 주문을 받아 제작한 조선 말~대한제국 시기 황룡포, 단령 4벌을 공개합니다. 대한제국이 건국된 10월에 맞춰 완성되도록 작업하였으며, 직물 문양은 그 시대 유행하던 문양을 사용하고, 흉배는 모두 손자수로 하였으며, 규격은 유물을 참고하되 현대인들이 착용할 수 있도록 많이 확장시켰습니다.
오늘은 정유진(@fedora5432)님이 주문하신 조선 말~대한제국 시기 흑단령 제작 결과물 모두 착용한 모습을 공개합니다. 해당 착장을 위해 저고리, 바지, 행전과 같은 기본 복식 위에 두루마기, 전복과 같은 중단을 걸쳐 입고, 그 위에 흑단령을 겹쳐 입어 풍성한 실루엣을 완성 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