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로 자신이나 타인을 사랑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타인'의 의미.
겐타로가 키요코를 타인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약간의 상실감도 있었다. 처음에는 키요코를 보며 자신을 발견했지만 어느 순간 키요코를 보면서 자신이 아닌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으니까.
그때부터 키요코가 자신을 사랑할지, 어떤 삶을 선택하는지, 자신과 함께할 것인지조차 겐타로가 결정할 수 없다. 그리고 바로 그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타인을 인정하는 행위가 된다. 불확실성은 키요코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에게 부여했던 겐타로의 창조주의 의미를 하나씩
하지만 키요코가 독립된 개인이 된 순간, 겐타로에게는 처음으로 이런 사실이 생겼다.
"키요코가 무엇을 생각하는지는 키요코만이 결정한다."
겐타로가 창조주라는 사실도 그것을 바꿀 수 없다. 그녀가 자신을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고, 화낼 수도 있고, 자신과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타인에 대하여.
처음의 키요코는 겐타로가 만든 인물. 그러니 당연히 그녀 안에는 겐타로의 미학과 가치관이 스며들어 있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이야기를 중요하게 여기고, 세상을 조금 비껴서 바라보는 태도 같은 것들. 그래서 겐타로는 키요코를 보면서 어쩌면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타인'이라는 개념이 중요해진다. 여기에서 말하는 타인은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아무리 사랑해도 끝까지 소유하거나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키요코가 겐타로의 피조물일 때는 그녀를 어느 정도 ‘내 것’으로 생각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배려하는 것이다. 그 순간 겐타로는 깨닫는다.
'……소생과 다르군요.'
처음에는 그것이 낯설었다. 자신이 만든 캐릭터라면 자신과 닮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차이가 오히려 키요코의 인간성이 되었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키요코다."
그녀는 겐타로가 예상하지 못한 것을 좋아하고, 예상하지 못한 선택을 하고,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기 시작한다. 겐타로가 멜론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혼자 멜론을 다 먹으면서도 굳이 말하지 않는 것처럼. 겐타로라면 “맛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상대에게도 권했을 상황에서, 키요코는
'역시 소생이 만든 아이답군요.'
그녀의 말투가 마음에 들고, 사고방식이 마음에 들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할지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초기의 키요코는 겐타로의 자아가 바깥으로 투영된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키요코가 이야기에 없는 행동을 하면서 균열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