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매우 짧은 전반생은 대체적으로 사람 잘못 만나 꽤나 엉망이었기에, 여생은 그냥 점잖게 물어뜯고 살렵니다. 저만 예의 차리고 입에서 차마 내뱉지 못한 직언 고이 담아 문드러진 채 호구마냥 잔존하는 것도 저에게 몹쓸 짓 뿐만 아니라, 2차 피해자도 나온다는 사실을 봐버렸기에.
아름다운 것만 보고 아름다운 것만 듣고 살아도 번잡스러운 세상인데.. 여러분 눈에 맺히는 것 중 불온한 것들은 모두 잔상처럼 흘려보내고 사랑하는 것들만 곁에 둔 채 행복하세요.
왜 가끔, 어쩌면 꽤 자주 그런 사람이 있는데요.
행동의 중심에 항상 ‘타인’보다 ‘자기 자신’이 먼저 놓여 있었던 사람.
사람을 위해 했던 모순적인 희생 역시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놓는다기보다 “나는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자기 증명에 가까운 사람. 일종의 “도구적 이타성”이 있는.
선한 행동 자체는 하지만, 그 선행이 결국 인정, 우월감, 자기 가치 확인만을 얻기 위한 수단인. 누군가 자신보다 더 큰 공을 세우면 자신의 선행마저 가치가 없어진 것처럼 느끼는 사람. 선행을 할 수 있었지만 선한 신념을 가진 사람은 아닌 사람.
“승인에 의존하는 도덕성”
자신의 내부에 확고한 기준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인정받는가.
내가 남보다 우월한가.
내가 남보다 가치있는 것처럼 보이는가.
이런 외부의 평가를 통해 자신의 행동이 옳은지, 자신의 존재가 가치 있는지를 결정하는 사람.
그래서 마음속에 선과 악이 공존한다기보다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선한 행동을 할 능력은 있었지만, 그것을 붙잡아둘 선한 중심이 약한 사람.
하지만 전 이 부분도 결핍으로 면죄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그동안 만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보다 노력하고 앞서 나가는 사람이나, 심성이 곱고 이해심이 높은 사람이 있을 경우 대체적으로..
단순히 속으로 질투한 게 아닌 보는 이가 없는 곳에서 일부러 상처를 골라 공격하고, 어떤 수단이든 이용해 가장 아픈 곳을 찌르려고 하고, 상대가 지나친 상처를 받을 것을 알면서도 말해요.
그냥 열등감이 아닌, 상대에게 고통을 주고 싶은 의도가 존재한 행동.
즉 자기 결핍 때문에 괴로워한 피해자인 동시에, 그 괴로움을 타인에게 적극적으로 전가한 가해자.
저한텐 그게
결핍 자체를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악한 성향을 이용해 점점 더 정당화하게 만든 사람으로 밖에 안 보여서.
무엇보다
그런 사람들에게도 살면서 선택지는 계속 있었을거란 말이죠.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고, 상대에 대한 질투를 인정할 수도 있었고, 자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고.
그런데도 매번 더 편한 쪽을 선택하고,
자기 마음을 고치는 대신 남을 미워하고 상처주는 선택을 하는게.
선행을 할 수 있었으나 선을 사랑하지 않았고, 사람의 마음보다 자신의 가치만 바라보는. 마음은 비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밑이 깨져 있었던, 아무리 사랑과 가르침을 부어도 오래 남지 않았고, 그 구멍을 메우는 대신 더 많은 인정을 집착하는 쪽을 택하고, 끝내 그 그릇에는 신념보다 열등감이, 애정보다 소유욕이, 선의보다 자기증명이 먼저 고여 결국 썩어문드러지는..
전 그런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고, 너무 많이 겪었고, 미련하게도 너무 오래 붙잡고 헤아리고 이해하려 했어요. 저와는 인생에서 끊을 수 없는 관계의 밀도를 가진 이들도 있었기에.
다만 이해하려 할 수록 저와는 가치 기준이 다른 이기에 더 미궁인 느낌이었고 그럴 수록 침전하는 건 저죠 뭐.
이 글을 본 여러분도 만일 글과 형태가 닮은 사람이 있다면 그냥 밟으려하지말고 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