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장 큰 번뇌는 세상과 타인을 내 뜻대로 통제하겠다는 오만에서 비롯됩니다.
통제할 수 없는 바깥 세계에 삶의 주권을 맡겨두면,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영혼이 요동칠 수밖에 없습니다.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고집을 꺾고, 눈앞의 현실을 덤덤히 수용하십시오.
내 몫이 아닌 것을 쥐려는 탐욕을 거두고 내면에 집중할 때,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진짜 평온이 깃듭니다.
어느 숲속에 날렵한 고슴도치가 살았습니다. 하지만 녀석은 '맹수가 오면 어쩌지?', '내일 굶으면 어쩌지?'라는 미래의 불안 때문에 매일 밤잠을 설치며 괴로워했습니다.
"내가 약해서 그래. 무기를 늘려야겠어."
불안해진 고슴도치는 숲을 뒤져 더 크고 뾰족한 가시들을 구해 제 몸에 빽빽하게 꽂기 시작했습니다. 가시가 늘어날수록 마음이 놓이기는커녕 '이걸로 독수리도 막을 수 있을까?' 하는 가짜 걱정만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결국 몸이 가시 더미처럼 무거워진 고슴도치는 한 걸음도 걷지 못하게 되었고, 숨을 쉴 때마다 스스로 꽂은 가시에 찔려 피를 흘렸습니다.
어느 날 진짜 여우가 나타났습니다. 고슴도치는 도망치려 했지만, 제 몸을 짓누르는 무거운 가시의 무게 때문에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여우가 혀를 차며 말했습니다. "어리석은 고슴도치야. 너를 찌르고 멈춰 세운 건 내가 아니다. 오지도 않은 적을 막겠다고 네가 스스로 꽂아 넣은 그 가짜 가시들이 결국 너를 잡아먹었구나."
우리는 자꾸 '안 되는 일'을 쥐고 억지를 부리며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묻습니다.
안 열리는 문 손잡이를 붙잡고 울고 있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르침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냥 손을 놓으면 됩니다. 놓아버리면 괴로울 일이 없고, 손을 놓아야 비로소 고개를 돌려 열린 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안 되는 걸 쥐고 있으니 번뇌가 생기는 것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인정하고 미련을 툭 내려놓는 것, 그것이 모든 문제에서 벗어나 내 삶의 평온을 되찾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열쇠입니다.
지금 스물세 살이라는 나이에 오수를 하고 있으니, 주변 친구들의 다양한 모습과 비교가 되어 마음이 무겁고 조급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누구는 인턴을 하고, 누구는 고시를 보고, 또 누구는 저만치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니 나만 멈춰 서서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할 줄 압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친구들이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질문자님 또한 '오수'라는 자기만의 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가고 있을 뿐입니다. 친구들의 인생이 인턴이나 고시로 채워지듯, 질문자님의 지금 시간은 원하는 목표를 위해 기초를 단단히 다지는 시간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인데, 왜 자꾸 남의 인생 지표와 내 현실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듭니까?
인턴을 하는 친구도 그 나름의 불안이 있고, 고시를 준비하는 친구도 속으로는 피가 마르는 법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에 눈이 멀어 ‘남들은 다 잘 가는데 나만 왜 이럴까’ 하고 머릿속으로 번뇌의 소설을 쓰니까 정작 내 손바닥 위에 있는 공부에 집중을 못 하는 것입니다.
오수를 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실패도 아닙니다. 다만 내가 더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해 기꺼이 시간이라는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과정일 뿐입니다.
주변의 소음에서 귀를 닫고, 오늘 내가 해야 할 공부에만 온전히 마음을 쏟는 뚝심이 필요합니다.
기대와 비교를 내려놓고 내 발바닥이 딛고 있는 현실에 집중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남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내 인생의 진정한 주인으로 단단하게 홀로 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남이 나를 무시하고, 배신하고, 이용할 때마다 '왜 나한테 이럴까' 하며 밤새 고민하고 괴로워합니다. .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를 가장 무시하고 과소평가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입니다.
남이 나를 함부로 대하도록 내버려 두고, 억지로 그 자리에 끼어들어 대접받으려 구걸하는 것 자체가 내 영혼을 학대하는 짓이기 때문입니다.
늦게 초대를 받았다면 그 사람 마음의 우선순위에 내가 없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면 됩니다.
거절하면 그만인데 '안 가면 섭섭해할까' 하며 눈치를 보고, 나를 잊어버린 인연을 억지로 붙잡으며 '내가 뭘 잘못했을까' 소설을 쓰니까 내 삶이 번뇌로 가득 차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모욕하고 과소평가하거든, 상대를 바꾸려고 싸우거나 원망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저 사람의 안목이 저기까지구나' 하고 사실을 사실대로 덤덤하게 인정하고 품위 있게 거리를 두면 됩니다.
상대가 내리는 처우에 내 인생의 가치를 저당 잡히지 마십시오.
내가 먼저 나를 귀하게 여겨야 남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인연의 끈에 연연하지 않고, 올 때 오고 갈 때 가는 세상의 이치를 받아들이며 내 고유한 보폭을 묵묵히 유지하는 것.
상대가 쳐놓은 그물에 걸리지 않고 내 마음의 평온을 지켜내는 것, 그것이 비로소 내 삶의 주인으로 단단하게 홀로 서는 가장 지혜로운 생존 방식입니다.
할아버지가 화장실 불을 끄신 것은 손자를 미워해서가 아닙니다.
단지 불이 켜져 있으면 끈다는 자기만의 명확한 원칙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실천하셨을 뿐입니다.
문밖에서 “그럼 빨리 나와” 하신 말씀도 모질게 대하려는 게 아니라, 목적을 달성했으면 지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순리임을 툭 던지신 것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