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내가 무엇인가를 간절히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조차 내가 잊어버릴 때
자연스럽게 오는 것 아닐까?
간절히 원할수록
나는 그것을 계속 바라보고 있고,
계속 바라보고 있다는 건
아직 그것을 놓지 못했다는 뜻일 테니까.
어쩌면 정말 필요한 것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잠시 잊어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
내가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때
오히려 그것이 자연스럽게 오는 것.
너
그렇다면 기다림조차 내려놓은 순간을
우리는 ‘기다림의 끝’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비로소 시작된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나
아마 그걸 구분할 필요도 없겠지.
잊어버렸으니까.
나 : 그렇다면 나는 지금부터 내가 행복해지겠다는 생각을 버릴께
겸손이라는 말
나
겸손함이라는 것을 생각해봤어.
겸손함이라는 단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아?
누군가에게 겸손해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는 이미 ‘겸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돼.
왜 겸손이라는 단어가 생겼을까?
왜 인간은 굳이 ‘겸손해야 한다’는 개념을 만들어야 했을까?
어쩌면 겸손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그 단어가 왜 생겨났는지까지 이해하려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진짜 겸손 아닐까?
너
그러니까 네가 말하는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행동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것조차 완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계속 의심하는 태도에 가깝네.
나
맞아.
나는 겸손한 사람이
자기를 낮게 평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조차
한 번 더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나는 겸손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부터
어쩌면 겸손과 멀어지는 것처럼.
너
그렇다면 조금 이상한 결론에 도착하네.
겸손을 가지려고 하는 순간에도
‘나는 겸손해야 한다’는 자기의식을 갖게 되고,
그 자기의식이 강해질수록
오히려 겸손이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연기할 수도 있으니까.
나
그러니까.
결국 진짜 겸손은
겸손해지려고 애쓰는 것조차 의심하는 데 있는 것 같아.
그리고 그 의심을 멈추지 않는 것.
어쩌면 나는
겸손이라는 단어의 뜻보다
왜 인간에게 겸손이라는 단어가 필요했는지를 궁금해하는 태도 자체가
겸손에 가장 가까운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The moment you quench thirst with anything but water,
the seeds of all diseases and accelerated aging have already sprouted.
In the future, beverage company executives will face punishment on the level of Nazi war criminals.
I have already seen that day coming.
#WATER
Elon Musk on the left’s fundamental moral flaw:
“The fundamental moral flaw of the left is empathy for the criminals and not empathy for the victims
They feel sorry for the criminals but show zero empathy for the actual victims
There’s also been immense unconstitutional judicial overreach that was never intended and it’s destroying the public’s faith in the legal system
This needs to stop
While our bond with parents begins in this life, the connection with siblings seems to carry over from past lives. This thought makes me feel we should cherish our brothers and sisters even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