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식자의 우리〉 제3부: 붉은 명찰의 지배자
치익- 쏴아.
기상 점호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기까지 앞으로 20분.
칠흑 같던 어둠이 서서히 걷히고, 창살 틈새로 푸르스름하고 서늘한 새벽빛이 3사동 2호실의 시멘트 바닥 위로 길게 내려앉고 있었다. 방 안의 공기는 여전히 밤새 갇혀 있던 사내들의 눅진한 체온과 비릿하고 은밀한 열기가 엉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윤서준과 하민우, 한태이는 눈을 떴음에도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모포를 턱 끝까지 뒤집어쓴 채, 벽을 향해 웅크려 얕은 숨소리조차 조심스럽게 죽이고 있었다. 다들 잠이 덜 깨 멍한 상태였지만, 감방 구석에서 들려오는 차가운 물소리 하나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그 차가운 물줄기 앞에 선 것은 서이현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완전한 나신.
백옥처럼 희고 매끄러운 등줄기와 가녀린 골반 라인 위로 서늘한 새벽 공기가 닿아 옅은 소름이 돋아 있었다. 이현은 작고 낡은 수건을 수도꼭지 밑에 대고 흠뻑 적셨다.
짜악.
물기를 가볍게 짜낸 차가운 수건이 이현의 쇄골과 목덜미, 그리고 붉게 달아올랐던 살갗 구석구석을 천천히 훑고 지나갔다.
간밤, 모포 밑 좁은 어둠 속에서 정한과 뒤엉키며 남겨졌던 끈적한 땀과 체액의 흔적들이 얼음장 같은 수건 끝에 씻겨 내려갔다. 무릎 안쪽과 허벅지를 타고 흐른 붉은 자국들을 무심하게 닦아내는 이현의 표정에는 그 어떤 동요도, 수치심도 없었다. 마치 더러운 얼룩이 묻은 유리창을 닦아내듯 무미건조하고 정갈한 손길이었다.
작은 세면대 거울 속에 비친 이현의 호박빛 눈동자는 감정의 파문 하나 없이 투명했다.
세면대 바로 뒤편 구석, 모포에 파묻혀 누워 있는 오정한의 어깨가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1년 전 미처 닿지 못했던 덫에 걸려 밤새 사형수의 완벽한 지배 아래 숨을 몰아쉬어야 했던 스물한 살의 사기꾼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하복부의 뻐근한 통증과 공포감에 짓눌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었다.
뚝, 뚝.
마침내 수도꼭지가 잠겼다.
고요한 감방 안에는 배수구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만이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물에 젖은 수건을 걸어둔 이현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물기가 맺힌 투명한 나신 위로 푸른 새벽빛이 쏟아져 내렸다. 이현은 젖은 흑발을 쓸어 넘기며, 숨죽인 채 굳어 있는 사내들을 서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새벽의 정적 속에서, 교도소의 또 다른 하루가 서서히 목을 조여오고 있었다. 삐이익-!
정적을 깨뜨리는 기상 사이렌이 사동 복도를 날카롭게 찔렀다.
차갑게 식은 콩나물국과 마른 깍두기가 담긴 식판을 비우는 내내 3사동 2호실에는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 외엔 단 한마디의 사담도 오가지 않았다. 밤새 겪은 일로 넋이 반쯤 나간 정한은 밥을 입에 넘기지도 못한 채 목구멍으로 억지로 밀어 넣었고, 한태이는 제 허리를 감싸 쥔 채 여전히 엉거주춤하게 앉아 눈치만 살폈다.
아침 배식과 인원 점호가 끝나자마자 복도에서는 교도관들의 고함과 함께 죄수들의 출역(작업장 이동) 방송이 쏟아져 나왔다.
"3사동 작업 인원, 일렬로 복도 집합!"
철문이 덜컥 열렸다. 수감자들은 각자의 노역장에 맞춰 흩어지기 시작했다.
봉제장, 목공장, 인쇄장으로 향하는 죄수들 틈에서 이현의 발걸음은 묘하게 한적한 외곽 쪽으로 이어졌다. 원래 중범죄자나 사형수는 위험성 때문에 작업 배치가 엄격히 제한되거나 독방에 묶이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보안과장의 특별한 조율 덕분인지 이현에게 내려진 작업장은 교도소 구석의 ‘원예·채소류 재배 온실’이었다.
"이현아, 아니…… 이현 님. 이쪽입니다."
앞장선 하민우가 연신 뒤를 돌아보며 싹싹하게 길을 안내했다. 마약 전과로 들어와 온갖 잔머리로 편한 보직을 꿰차고 있던 민우는 교도소 안쪽의 지리며 작업장 사정에 훤한 놈이었다.
"우리 교도소에서 제일 꿀 빠는 구역이 바로 이 채소 하우스거든요. 교도관들도 흙먼지 날리고 덥다고 안쪽까진 순찰 잘 안 돌아요. 밖에서 보는 눈도 없고, CCTV 사각지대도 널렸고……."
민우는 행여나 이현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목소리를 낮추고 나긋나긋하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본관 건물을 벗어나 철조망이 겹겹이 쳐진 외곽 터를 지나자, 길게 늘어선 대형 비닐하우스 여러 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축축하고 눅눅한 흙냄새와 풋풋한 풀잎 향이 훅 끼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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