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5월 말부터 새벽에 응급실을 갈 만큼 상황이 좋지 못했다.
가정 상황도 그리 좋지 않았고, 매일같이 죽음을 생각했다. 술을 마시면 옥상에 올라가기도 했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자해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나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힘들다고, 아프다고.
다만 그 마음을 깊이 꺼내어 이야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분은 모르겠지.
내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왜 그런 말들을 했는지.
아마 그저 투정이라고, 질투라고 생각했겠지.
차라리 그게 나았다.
그냥 내가 그런 아이였던 거라고 생각하는 게.
여러모로 많이 힘들어 보였던 그 사람에게
내 아픔까지 얹고 싶지 않았다.
나까지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괜찮은 척했고,
별일 아닌 것처럼 넘겼다.
그때 난 도와달라는 말도,
살펴봐 달라는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힘들다고, 아프다고만 말했던 것 같다.
<< 왜 갑자기 더 사랑이 필요해졌을까?? >>
본 이야기는 실제 사연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여러분들도 한번 쯤 생각해보기 바란다. 참 어려운 이야기일 것이다.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누군가와 D/s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암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아이는 그 사실을 Dom에게 말하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버림받을까 봐...'
아프다고 말하면,
앞으로 이전처럼 관계를 이어가지 못할 수도 있고,
상대에게 짐이 될 수도 있고,
더 이상 예전의 자신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다.
암이라는 사실만큼은
어떻게든 혼자 들고 있으려고 했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게 조금 이상하다.
사실은 숨길 수 있어도
그 사실 때문에 생긴 마음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아이는 이전보다 불안해졌다.
그리고 이전보다
조금 더 사랑받고 싶어졌다.
조금 더 자신을 봐줬으면 했고,
조금 더 확신을 받고 싶었고,
조금 더 곁에 있어줬으면 했다.
어쩌면 아이는,
“나 너무 무서워.”
라는 말을 하지 못해서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좀 더 사랑해줘.”
하지만, Dom은
아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러니 눈앞에 보이는 것은
갑자기 이전보다 더 많은 애정을 요구하고,
더 많은 확인을 원하고,
자꾸, 자신의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이 부담스러워졌다고 했다.
결국 관계는 끝났다.
생각해보면 조금 슬프고 이상하다.
버림받을까 봐
아프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 대신 버림받지 않기 위해
조금 더 사랑을 원했다.
그런데 왜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한지는
끝내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상대에게는
자신의 상황이 견딜 수 없이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너무 많이 요구하는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서
“Dom이라면 암에 걸린 걸 알아챘어야지.”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건 불가능하다.
말하지 않은 병을 알아맞힐 수는 없다.
그리고 D/s 관계를 맺었다고 해서
상대의 삶 전체를 책임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부담을 느끼는 것 역시
잘못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가 있으니까.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른 부분이 궁금하다.
왜 갑자기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해졌는지는
한 번쯤 궁금하지 않았을까.
원래 그러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자꾸 사랑을 확인한다.
평소보다 불안해한다.
조금 더 자신을 봐달라고 한다.
그러면 꼭 숨겨진 사정을 알아맞히지는 못하더라도
“요즘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불안해졌어?”
“내가 모르는 일이 있는 거야?”
정도는 물어볼 수 있지 않았을까.
특히 D/s에서는
조금 더 이상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Dom에게
상대를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표정을 보고,
호흡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평소와 다른 반응을 알아차리고,
필요하다면 먼저 멈추라고 한다.
그런데 플레이 안에서 생긴 작은 변화에는
그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서,
관계 안에서 한 사람이 크게 변했을 때는
“부담스럽다.”
라는 한 문장으로 끝내도 되는 걸까?
몸에 생긴 작은 변화는 읽으려고 하면서
마음에 생긴 큰 변화에는
왜 이유를 묻지 않았을까.
그리고 여기에는
신뢰라는 문제도 조금 남는다.
아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은 분명 아이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생각하게 된다.
그 아이에게
“내가 약해져도 이 사람은 나를 버리지 않을 거야.”
라는 믿음이 충분히 있었다면..
과연 끝까지 말하지 않았을까?
물론 우리는 알 수 없다.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도
사람은 큰 병을 숨길 수 있으니까.
그래도 D/s에서 말하는 신뢰가
“이 사람에게 내 몸을 맡길 수 있다.”
“이 사람의 명령을 믿을 수 있다.”
정도에서 끝나는 것은 아닐 것 같다.
어쩌면 더 어려운 신뢰가 있다.
내가 더 이상 좋은 sub처럼 행동하지 못해도
이 사람 앞에 있어도 괜찮다는 믿음.
아프고,
불안하고,
예전보다 많은 것을 필요로 하고,
당분간 아무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해도
“말해도 괜찮을거야. 이 사람이라면..”
이라고 느낄 수 있는 것.
평소하는,
“나를 믿어.”
“나한테 맡겨.”
라는 말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그 말의 무게는
상대가 가장 약해졌을 때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잘 따르고,
잘 견디고,
건강하고,
관계를 즐겁게 유지할 수 있을 때만
“나에게 맡겨.”
라면
그 맡긴다는 말은
정확히 어디까지의 이야기일까.
사람은 꼭
“나 지금 너무 힘들어.”
라고 말하면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고,
어떤 사람은 계속 확인하고,
어떤 사람은 상대를 밀어내고,
그리고 어떤 사람은
“나를 좀 더 사랑해줘.”
라고 말한다.
그 요구를 모두 받아줘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평소와 달라진 사람을 보면서
“왜 저렇게 행동하지?”
를 한 번쯤 묻는 것.
어쩌면 관계에서 말하는 돌봄이라는 것은
'거창한 책임'보다는
그 작은 궁금증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아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조금 더 많은 사랑'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왜 사랑이 더 필요한지를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더 사랑받고 싶어 했던 것이
관계가 끝나는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자꾸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왜 말하지 않았을까보다,
조금 더 어려운 질문.
왜 그 사람에게는
말해도 괜찮다고 믿을 수 없었을까....
<< 왜 갑자기 더 사랑이 필요해졌을까?? >>
본 이야기는 실제 사연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여러분들도 한번 쯤 생각해보기 바란다. 참 어려운 이야기일 것이다.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누군가와 D/s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암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아이는 그 사실을 Dom에게 말하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버림받을까 봐...'
아프다고 말하면,
앞으로 이전처럼 관계를 이어가지 못할 수도 있고,
상대에게 짐이 될 수도 있고,
더 이상 예전의 자신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다.
암이라는 사실만큼은
어떻게든 혼자 들고 있으려고 했다.
그런데 사람이라는 게 조금 이상하다.
사실은 숨길 수 있어도
그 사실 때문에 생긴 마음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아이는 이전보다 불안해졌다.
그리고 이전보다
조금 더 사랑받고 싶어졌다.
조금 더 자신을 봐줬으면 했고,
조금 더 확신을 받고 싶었고,
조금 더 곁에 있어줬으면 했다.
어쩌면 아이는,
“나 너무 무서워.”
라는 말을 하지 못해서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좀 더 사랑해줘.”
하지만, Dom은
아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러니 눈앞에 보이는 것은
갑자기 이전보다 더 많은 애정을 요구하고,
더 많은 확인을 원하고,
자꾸, 자신의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것이 부담스러워졌다고 했다.
결국 관계는 끝났다.
생각해보면 조금 슬프고 이상하다.
버림받을까 봐
아프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 대신 버림받지 않기 위해
조금 더 사랑을 원했다.
그런데 왜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한지는
끝내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상대에게는
자신의 상황이 견딜 수 없이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너무 많이 요구하는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서
“Dom이라면 암에 걸린 걸 알아챘어야지.”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건 불가능하다.
말하지 않은 병을 알아맞힐 수는 없다.
그리고 D/s 관계를 맺었다고 해서
상대의 삶 전체를 책임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부담을 느끼는 것 역시
잘못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가 있으니까.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른 부분이 궁금하다.
왜 갑자기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해졌는지는
한 번쯤 궁금하지 않았을까.
원래 그러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자꾸 사랑을 확인한다.
평소보다 불안해한다.
조금 더 자신을 봐달라고 한다.
그러면 꼭 숨겨진 사정을 알아맞히지는 못하더라도
“요즘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불안해졌어?”
“내가 모르는 일이 있는 거야?”
정도는 물어볼 수 있지 않았을까.
특히 D/s에서는
조금 더 이상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Dom에게
상대를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표정을 보고,
호흡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평소와 다른 반응을 알아차리고,
필요하다면 먼저 멈추라고 한다.
그런데 플레이 안에서 생긴 작은 변화에는
그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서,
관계 안에서 한 사람이 크게 변했을 때는
“부담스럽다.”
라는 한 문장으로 끝내도 되는 걸까?
몸에 생긴 작은 변화는 읽으려고 하면서
마음에 생긴 큰 변화에는
왜 이유를 묻지 않았을까.
그리고 여기에는
신뢰라는 문제도 조금 남는다.
아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은 분명 아이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생각하게 된다.
그 아이에게
“내가 약해져도 이 사람은 나를 버리지 않을 거야.”
라는 믿음이 충분히 있었다면..
과연 끝까지 말하지 않았을까?
물론 우리는 알 수 없다.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도
사람은 큰 병을 숨길 수 있으니까.
그래도 D/s에서 말하는 신뢰가
“이 사람에게 내 몸을 맡길 수 있다.”
“이 사람의 명령을 믿을 수 있다.”
정도에서 끝나는 것은 아닐 것 같다.
어쩌면 더 어려운 신뢰가 있다.
내가 더 이상 좋은 sub처럼 행동하지 못해도
이 사람 앞에 있어도 괜찮다는 믿음.
아프고,
불안하고,
예전보다 많은 것을 필요로 하고,
당분간 아무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해도
“말해도 괜찮을거야. 이 사람이라면..”
이라고 느낄 수 있는 것.
평소하는,
“나를 믿어.”
“나한테 맡겨.”
라는 말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그 말의 무게는
상대가 가장 약해졌을 때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잘 따르고,
잘 견디고,
건강하고,
관계를 즐겁게 유지할 수 있을 때만
“나에게 맡겨.”
라면
그 맡긴다는 말은
정확히 어디까지의 이야기일까.
사람은 꼭
“나 지금 너무 힘들어.”
라고 말하면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고,
어떤 사람은 계속 확인하고,
어떤 사람은 상대를 밀어내고,
그리고 어떤 사람은
“나를 좀 더 사랑해줘.”
라고 말한다.
그 요구를 모두 받아줘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평소와 달라진 사람을 보면서
“왜 저렇게 행동하지?”
를 한 번쯤 묻는 것.
어쩌면 관계에서 말하는 돌봄이라는 것은
'거창한 책임'보다는
그 작은 궁금증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아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조금 더 많은 사랑'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왜 사랑이 더 필요한지를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더 사랑받고 싶어 했던 것이
관계가 끝나는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자꾸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왜 말하지 않았을까보다,
조금 더 어려운 질문.
왜 그 사람에게는
말해도 괜찮다고 믿을 수 없었을까....
평소에는 그저 해맑아 보이고, 강해 보이기만 했던 트친이 어제 전화하다 울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우리는 참 많은 ‘척’을 하며 살아가는구나 싶었다.
단단하지 않은데 단단한 척을 하고,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을 하고,
힘든데 힘들지 않은 척을 하며
그렇게 나 자신을 속이며 살아간다.
누구나 마음속에 아픔 하나쯤은 품고 살아간다.
어쩌면 괜찮아진다는 건
그 아픔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문득 그 아픔이 떠오르는 날에도
‘음, 오늘도 떠올랐네.’
하고 그 마음을 가만히 인정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왜 난 아직도 이러지?’
‘나는 왜 이렇게 약할까?’ 하고
나 자신을 나무라는 대신,
‘나 아팠구나.’
‘아직 많이 그립구나.’
하고 스스로를 다독여주는 것.
때로는
‘울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것보다
‘울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
아프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아픈 나까지도 외면하지 않는 것.
그렇게 오늘도 떠오른 마음을
조용히 바라봐주는 것.
그게 어쩌면 조금씩 괜찮아지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
옛날엔 속상하면 술을 마시거나 약을 먹곤 했는데ᆢ
그럴때 차라리 나가서 운동하라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힘들 때마다 근처 헬스장으로 뛰러 갔음ᆢ
할 줄 아는 운동이 없어서 유튜브에있는
인터벌 30분 영상 틀어놓고 했는데 ᆢ
10분×3으로해서 하는건데 2번째부터
집가고싶었음ᆢ
그랬던 내가!!!
이젠 어느새 1시간은 기본으로 하는 듯 😎
사람들은 자신에게 참 엄격하다.
누군가에게 잘해주었던 순간보다
잘하지 못했던 순간을 더 오래 기억하고,
남들이 건네는 따뜻한 말보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차가운 말들을
더 쉽게 믿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자신을 미워하는 데 쓰던 마음으로 지금까지의 나를 한 번쯤 돌아봐도 좋지 않을까.
완벽하지는 않았어도 나름대로 애썼고,
힘든 날들을 지나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러니 오늘만큼은 스스로에게도
조금 다정해졌으면 한다.
생각보다 당신은 참 멋진 사람이니까.
그동안 고생많았어요
사람은 타인에게 버림받는 일이 반복될수록
점점 타인의 눈치를 보게 된다.
버려지지 않기 위해 내가 원하는건
뒤로 미뤄두고, 상대가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조금씩 나 자신을 바꾸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잊은 채
그저 타인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존재처럼 살아가게 된다.
그게 정말 자신이 원하는 삶일까?
그렇게 나 자신을 잃어가면서까지
누군가의 곁에 남아 있는 것이 정말 행복일까?
없어져봐야, 지나가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나에게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또 얼마나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아껴주고 있었는지.
늘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마음도,
당연하게 받아왔던 사랑도 사실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때로는 그 사람이 떠나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이 지나가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마음들이 있다.
대부분의 섭들은 돔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나 자신부터 버린다.
나 역시 그러했고, 그게 정답인 줄 알았다.
다른 섭들은 자신이 섭이라서, 이 관계에 을이라서 ‘나’라는 사람까지 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만약 지금의 관계가 내가 나를 버려야만
유지될 수 있는 관계라면,
내가 나를 버리지 않았을 때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그 관계가 말해주는 답일 테니까.
나를 잃어가는 관계가 아닌,
나를 더 잘 알아가게 만드는 관계.
사랑받기 위해 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랑받을 수 있는 관계.
모든 관계가 그랬으면 좋겠다. 😚
트친과 이야기 나누던 중ᆢ
🐰 “나 나중에 프로포즈 받으면
홈런볼 100개로 만든 꽃다발 받고 싶어.”
🦁 “홈런볼 100개? 그거 100개면
꼴랑 40만원인데 너무 저렴한 거 아니야?”
🐰 “ 40만원이라는 돈보다,
내가 좋아하는 걸 100개나 사서
하나하나 꽃다발처럼 만들어주는
그 마음이 얼마나 예쁜 건데.”
🦁 “근데 홈런볼 100개로 된 꽃다발은
어떻게 만들어?”
🐰 “……그러게?”
🦁 “주문제작 해야 하나?”
🐰 “근데 유통기한은?”
“100개 다 먹으려면 유통기한 최대한
긴 걸로 사야겠다…”
🦁 “먹다가 당뇨 오겠는데?”
🐰 “……”
분명 처음에는 굉장한 낭만적인 프로포즈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홈런볼 대량구매, 유통기한, 건강을 걱정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대화가 되어버림. 🙄
대부분의 섭들은 섭 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늘 단단해야 할 것 같고,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고, 끊임없이 잘 하려 애쓴다.
하지만 섭 앞에서 꼭 단단할 필요는 없다.
언제나 완벽할 필요도 없다.
때로는 무너져도 되고, 서툰모습을 보여줘도 되고 힘들다고 솔직하게 기대어도 괜찮다.
다른 섭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난
내 돔이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 모습
까지도 기꺼이 안아주고 싶다.
나를 이끌어주는 사람시라고 해서 언제나
강하고 단단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돔이
힘든 날에는 내가 그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
뒤에는 제 본명이라 가렸습니다.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판에서 제 본명을 알고 있는
분은 몇 분 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지금 잘 지내지 못하는 게 이제 저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미 제 삶을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익명 뒤에 숨어 제게 당신의 상황이나 감정을 전달하지 마세요.
지금 만나고 계신분들이 있다면 그분들과
잘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다시는 제 앞에 나타나지 마세요.
사랑받는 것에 유독 서툰 섭들이 있다.
누군가 자신을 좋아해주는 마음이 고맙고 행복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내가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되는 걸까 싶어 하며,
언젠가 내 곁을 떠나갈까, 아직 오지도 않은 이별을 먼저 걱정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자신을 예뻐해주는 돔의 마음을
괜히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받는 순간 도망치지 말고,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봤음 좋겠다.
그렇게 받은 돔의 사랑은. 섭으로서, 아가로서, 강아지로서 나를 예뻐해주고 아껴주는 그 마음을 자신의 방식대로 소중히 돌려주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