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심심해하기
"아~ 심심해."
"뭐 재미있는 일 없을까?"
10대에는 그래도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라는 것과 틈틈이 게임과 만화책도 봐야 했기에 심심할 겨를이 없었지만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는 그 넘치는 자유시간을 채울 것이 많지 않았다.
농구, 술, 담배 그리고 친구들과의 수많은 이야기들로도 그 시간을 다 채울 수 없었다.
그래서 20대에 끊임없이 머릿속에 마치 아끼는 액세서리처럼 달고 다녔던 생각들이었다.
30대에도 빈도만 줄었을 뿐 여전히 떠올랐던 생각
이제야 삶은 심심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완벽하지 않을 나이
완벽할 수 없는 나이
그래서 배우는 것만으로도 심심하지 말아야 할 나이
어떤 것으로도 배움이 생길 수 있었던 삶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심심하기를 방관하고 불평만 했던 젊음이 후회스럽다.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직접 해보라는 아버지의 말씀의 뜻을 이제서야 이해한다.
난 인생 최고의 가이드가 있었다.
단지 당신이 이끄는 방향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했음에 질문할 용기조차 없었다.
아버지께 죄송하고 내 삶을 후회하며 두아들에게 가르친다.
생각하고 의지와 용기를 가지라고.
대학 교정
내가 다니던 대학의 교정을 가족과 거닐었다.
내가 친구들과 함께 자주 머물던 건물에도 들어가 본다.
일요일이라 사람이 거의 없는 건물 안은 조금은 을씨년스러워서 두 아들과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는 길에 각 층을 살피며 귀신 이야기를 나눴다.
미국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우리 둘은 그녀의 대학 교정을 거닐며 데이트를 한 적이 있었고, 그녀가 한국에 왔을 때도 내 대학 교정을 거닐며 데이트를 한 적이 있다.
작년 겨울에 친정에 방문했을 때도 두 아들을 데리고 그녀의 학교에 방문했었고, 이번에는 다시 녀석들을 데리고 내 학교를 다시 찾았다.
십여 년 만에 두 아들과 함께 다시 찾은 학교는 조금은 변해있었지만 내가 다닌 학교라는 점은 그대로였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대학교에서는 초등, 중, 고등학교와는 다르게 자기가 원하는 수업을 직접 고를 수 있다고 말해주었더니 첫째 아들이 물었다.
"그럼 하루에 미술, 미술, 미술, 이렇게 미술만 할 수도 있어?"
어쩌면 대학교는 녀석에게 더 맞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미술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서 그것도 가능하다고 말해주고는 대학은 배우고 싶은 것을 더 깊이 배울 수 있는 곳이니 한번 가보라고도 말해주었다.
전날 친구들을 만나 학업에 스트레스가 많은 자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최근 생각이 많아졌다.
개인적으로는 스트레스 관리란 스트레스를 받고 쳐내는 것의 반복으로 적정선의 스트레스를 유지하기보다는 스트레스를 받는 양 자체를 조절하는 것이 더 이상적이라 생각한다.
그 일환으로 경쟁에서는 조금 거리를 두고, 대신하고 싶은 일을 많이 해보고 그중 잘하는 일을 찾고 그 일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꾸준함을 유지하는 것이 삶의 스트레스를 적정량으로 유지하는 방법은 아닐까 생각해 봤다.
이 짤은 비유는 재밌지만, 의학적으로는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척추는 원래 신경 통로이면서
"동시에" 몸통을 지지하고 움직이게 하는 구조입니다.
인간이 직립보행을 하면서 허리 전만, 골반 구조,
디스크와 관절은 체중을 버티는 방향으로 적응해왔습니다.
정형외과에서 척추를 볼 때도
단순히 "신경 지나가는 관"이 아니라,
체중 부하, 균형, 운동도 모두 담당하는 축으로 봅니다
다만 문제는 인간의 수명이
비약적으로 길어졌다는 점입니다.
척추도 결국 관절과 디스크로 이루어진 구조라,
수십 년간 체중을 받고 움직이다 보면
퇴행성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즉 척추는 "잘못된 용도로 쓰는 배관"이라기보다,
원래 지지하도록 설계된 구조지만
너무 오래, 많이 쓰면서 고장난 기둥으로 봐야합니다.
행복한 문제가 많았던 6월3일 지방선거일
화요일 저녁에 건프라가 왔는데 생각보다 큰 부피감에 흥겨워하며 책상밑의 공간을 정리하느라 바빴다면
어제는 새로 들인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두아들의 사진을 찍었다.
격세지감
누구는 전자기기 하나 새로 샀다고 사자성어를 쓸만큼 호들갑 떨 일은 아니라 하겠지만 2008년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구매했던 내게는 어제의 그 감정에 딱인 표현이다.
순식간에 초점을 맞추는 AF 성능에 손이 편해지고, 그 와 연동된 연사 성능에 어제 하루 컷수만 700이 넘는다.
또 4k 영상은 덤으로 두아들의 생동감을 제대로 담아둘 수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새 카메라가 그렇게 좋냐며 그녀가 묻는다.
그 물음에 이제는 늘 카메라를 들고다니며 가족을 찍겠노라 약속했고 그녀도 그래서 허락한 것이라며 웃었다.
오늘 내일은 카메라 매뉴얼 정독의 시간이다.
전문가가 보는 시선
일반인이 보는 시선
일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내용에 "불륜을 포장"해 놨다는 글을 봤다.
다른 글에서는 삶을 지탱해주는 "강력한 추억"이라는 글을 봤다.
오래전의 기억이라 무엇이 더 가까울까 궁금해져서 지금 책을 읽고 있다.
읽기를 아직 마무리 짓지 못했지만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은 '그녀와 함께 영화를 봐야겠다."였다.
난 "불륜"도 "추억"도 아닌 더 단단해질 우리의 사랑을 본다.
우리는 각자의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본다.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트렌드는 변하지만 영화는 늘 영화였고, 즐기는 시선은 늘 그대로다.
휘둘리는 것은 사람의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