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tolove_0217 범우파 진영이 상하원 모두 과반수를 얻어서 우파가 단결만 잘 하면 국정조사위원회(CPMI)를 즉각 설치할 수 있는데 하원 512석 중 범우파가 286석, 상원 81석 중 50석이 범우파라 바로 국정조사 설치하고 보우소나루 성격 상 바로 설치가 개시될 겁니다.
유신체제가 왜 필요했는지 박정희 대통령 1화
미국이 한국을 버리려 했던 3년
1969년 여름,
박정희대통령은 미국한테 뒤통수를 맞았음..
이 얘기는 1968년부터 봐야 함
그때 미국은 베트남 전쟁 중이었음 공산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먹으려 하자
미국이 막겠다고 들어간 전쟁임 한국도 미국 부탁으로
맹호·백마 사단 등 최대 5만 명을 보냈음
1968년 1월, 북베트남이
설날 대공세를 퍼부음
미국 안방 TV에 전쟁 장면이 그대로 나갔고 미국 여론이 "이제 그만 빼라"로 확 돌아섬
같은 달, 한국은 더 급했음
1월 21일, 북한 특수부대 31명이
청와대 코앞까지 침투함 목표는 박정희 암살이었음 (김신조 사건)
이틀 뒤인 1월 23일 북한이 동해에서 미 해군 정보함을
통째로 끌고 감 승무원 80여 명이 포로가 됨
박정희는 "당장 보복하자"고 했음 근데 미국은 한국을 쏙 빼고
북한이랑 따로 협상함
대통령 암살 시도보다
자기 선원이 먼저였던 거임
결국 그해 말 "영해 침범했다, 미안하다"는
문서에 서명하고 선원들을 데려감
한국은 4월에 향토예비군을 만듦 그리고 11월, 울진·삼척에
무장공비 100명 넘게 침투함
1969년 4월엔 북한이 동해에서
미군 정찰기를 격추함 31명이 죽었는데 미국은 보복하지 않음
그리고 1969년 7월, 닉슨이 괌에서 선언함 "아시아 전쟁은 이제 아시아가 알아서 해라" 이게 닉슨 독트린임 쉽게 말해 "미군 피는 이제 그만 흘리겠다"
한국 입장에선 날벼락이었음 미국 부탁으로 베트남에 5만 명을 보내놨는데 정작 한국을 지켜주던 미군은 빼겠다는 얘기임.
(주한미군이 왜 중요하냐면 북한이 쳐들어오면 미군이 먼저 맞음 미군이 맞으면 미국이 자동으로 참전하게 됨 그래서 북한이 함부로 못 움직였던 거임)
1969년 8월, 박정희가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감 닉슨이 웃으면서 약속함 "주한미군 안 줄입니다, 걱정 마세요"
불안한 건 일본도 마찬가지였음 11월, 사토 총리는 닉슨과의 공동성명에 "한국의 안전은 일본의 안전에 긴요하다"는
문구를 넣음 오키나와를 돌려받기로 하면서
거기 미군기지가 약해질까 봐 겁났던 거.
근데 미국 비밀문서가 풀린 걸 보면 닉슨은 얼마 안 가서
주한미군 철수 계획을 짜라고 했음 "박정희한테는 비밀로 해라"
1970년 6월 22일 새벽 3시 50분 지금의 국립서울현충원 현충문 지붕에서 북한 공작원들이 폭탄을 설치하고 있었음
사흘 뒤가 6·25 20주년이었음 대통령과 정부 요인들이
참배하러 오는 날이었고 멀리서 리모컨으로 터뜨릴 계획이었음
근데 설치하다 실수로 먼저 터짐 1명은 그 자리에서 죽고 나머지는 도망감
그리고 딱 2주 뒤 1970년 7월, 미국이 통보함 "미 7사단 뺍니다" 주한미군 6만 명 중 2만 명이었음 상의가 아니라 통보였음
8월, 애그뉴 부통령이 달래러 서울에 옴 박정희는 점심도 거르고 6시간 가까이 따졌음 베트남에 5만 명을 보낸 동맹한테 이럴 수 있냐
근데 애그뉴는 서울을 떠나 대만에 가서 "5년 안에 주한미군 다 뺄 거다"라고 말함
그 대만한테는 "미국은 끝까지 함께한다"고 해놓고 말이지
그 약속이 어떻게 됐는지는 1년 뒤에 바로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