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itcoin price crash is beautiful.
People don’t realize…
This is a market-clearing mechanism.
Crypto is a massive scam. People can sense it. But there’s still too much money allocated to it.
The market plunges downward. Crypto people who were just trying to make money get wiped out, and rightfully so.
Bitcoin, as the only legitimate cryptocurrency, survives, and treks upward as the market realizes the superiority of an absolutely finite, verifiable, decentralized, digital asset secured by the most powerful computer network in human history.
This has happened before.
These were some of the top 10 crypto coins by market cap in May 2014:
-Peercoin
-Omni
-NXT
-Namecoin
-BlackCoin
The Bitcoin price crashed that year and the market naturally cleared out all of the nonsense. That’s a good thing.
Bitcoin survived, trekked upward, and the cycle repeated in 2017/2018.
These were some of the top 10 crypto coins in May 2018:
-Stellar
-Bitcoin Cash
-EOS
-IOTA
Once again, the Bitcoin price crashed and the scam money-grabs were washed out. Rightfully so.
The same thing happened in 2022.
The same thing is happening today in 2026.
There’s simply too much money associated with the crypto grift. So the market clears.
Crypto is on its last legs. Enthusiasm is waning. People who built their entire careers on supporting Ethereum are selling all of their Ethereum.
The market is waking up to the fact that crypto is a money grab, and one that doesn’t really work.
Bitcoin isn’t changing, and hasn’t changed. It remains superior.
Zoom out. This is the same movie playing for the fourth time.
Every cycle shakes out the people who don’t understand what they’re holding. That includes Bitcoin holders with a fiat or crypto mindset.
(Wait until you realize fiat and crypto are the same thing. People’s disgust with crypto is actually a disgust with fiat.)
If you know, you know. If you don’t, the market will teach you.
It’s all proof-of-work.
Many still need to learn their lesson. Every crash accelerates that process. The market figures out what actually works and discards everything else.
It will continue happening. This is not the last time. The clearing of crypto-garbage may repeat for the next 10 years.
Eventually, there won’t be anything left to clear.
체스의 그랜드 마스터는 승리를 위해 폰이나 비숍, 나이트와 같은 말들을 기꺼이 희생시킨다. 그들의 전략 속에서 개개인의 개성이나 자유는 하찮은 요소일 뿐이다. 개인이 스스로의 가치를 지키려면, 그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 밖으로 벗어나야 한다. 매트릭스에서 깨어나라, 네오.
이란은 어차피 핵무기 개발을 중단할 계획이었지만, 끝까지 저항하는 모습을 연출해 외부 세력에 굴복하지 않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자국민들에게 각인시켰다.
결과적으로 그 어떤 나라도 실질적인 손해를 입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처음부터 각자의 이해관계에 맞게 조율된 정치적 쇼에 불과했다.
겸손을 미덕으로 말하는 사람 중 진심으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위선자들은 겸손을 자신의 무능을 감추거나,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는 도구로 사용한다.
나는 오직 배움 앞에서만 겸손하다.
겸손이 자아를 깎아내리는 태도로 변질될 때, 그것은 성장이 아닌 패배의 언어다.
어느 나라든 금기되는 것들이 있다. 중국에선 시진핑, 러시아에선 푸틴, 두바이에선 신과 왕족. 서구는 이를 비웃으며 “자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 역시 다르지 않다.
서구에서 체제의 신념에 반하는 말을 하면, 여론과 기업, 문화가 징벌한다. 해고되고, 고소당하고, 사회적으로 사라지거나, 온갖 혐의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건 그들이 단지 ‘허용된 말’만 하고 있는 NPC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짜로 자유로운 게 아니라, 단지 국가나 사회의 체제에 반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믿음이야말로 통제의 완성이다.
서구는 자유를 수출하고, 이데올로기를 포장하며, 사람들의 광기를 자극해 자신들의 질서를 유지한다. 그렇게 만든 체제 안에서, 사람들은 “자유로운 멍청한 짓”은 할 수 있지만, 진실을 말할 자유는 없다. 진실은 언제나 검열의 대상이며, 그것은 위협으로 간주된다.
예컨대, 서구의 전쟁을 비판하면 음모론자로 몰리고, 가자지구 폭격을 문제 삼으면 유대인 혐오자로 낙인찍힌다. ‘유해한 남성성’이라는 프레임 아래, 남자는 울어도 되고 강할 필요가 없다고 하며, 남성을 여성화시키고 LGBT와 젠더 이슈를 앞세워 특정한 ‘평등’을 강요한다.
비판은 허용되지만, 어디까지 비판할 수 있는지는 권력이 정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그 선을 넘지 않는다.
이 사회는 반항조차 길들인다. 무해한 분노만 허용하고, 체제의 본질은 끝내 건드리지 못하게 만든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설계된 프로파간다이며 대규모 사기이다.
부족을 정의하는 요소는 단 세 가지뿐이다.
1. 내집단
2. 외집단
3. 이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
그리고 반(反)부족주의 부족의 목표는 모든 사람을 하나의 부족으로 동화시키는 것이었다.
만약 그들이 목표를 달성하면,
• 내집단이 사라지고
• 외집단도 사라지고
• 구분할 수 있는 차이도 사라진다.
즉, 그들이 꿈꾸던 유토피아는 즉시 새로운 부족주의로 찢어지고 갈라질 수밖에 없다.
너무 극단적인 예측 같다고?
그렇지 않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조차 부족주의 본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머지 모든 인간에게서 그 본능을 없앨 수 있겠는가?
결국, 본능은 새로운 대상을 찾는다.
만약 기존의 부족 경계를 제거한다면, 인간의 부족 본능은 새로운 기준을 찾아 부족을 나누게 된다.
그리고 기존의 조약, 질서, 공존 방식들은 완전히 무너지고,
새로운 부족 간의 갈등이 폭발하면서 혼란과 폭력이 지배하는 사회가 된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은 문화와 같은 피부색을 공유하던 이웃이,
오늘은 단순히 ‘달걀을 작은 쪽에서 깨는지’ 혹은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지’로 인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적이 되어버린다.
한마디로, 부족 정체성을 바꾸면 나라 전체가 내전으로 빠진다.
그리고 이 내전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통적인 내전’이 아니다.
“한 지역이 다른 지역과 싸우는 국가 간 전쟁” 같은 것이 아니다.
“온 나라의 모든 이웃과 이웃이 서로 적이 되는 전쟁”이다.
이런 전쟁은,
• 전투기와 탱크를 가진 군대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 일반인들이 AR-15와 휘발유병을 들고 싸우는 전쟁이 된다.
• 병사가 아니라, 여성, 아이, 노인까지 전부 전쟁의 일부가 된다.
• 그리고 이런 전쟁의 끝은 항상 대량학살로 귀결된다.
“너, 개신교야? 아니면 가톨릭이야?”
그 한 마디가 당신을 도로 옆 구덩이에서 총 맞아 죽게 만들 수도 있다.
당신의 이웃이 밤에 납치당하고, 다음 날 손가락과 눈이 뽑힌 시체로 발견될 수도 있다.
이게 너무 과장되게 들린다고?
그러나 역사는 휴대폰이 발명되었다고 해서 멈추지 않는다.
문명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문명을 유지하는 안전장치들을 제거하면,
그 순간 문명이 막으려 했던 일들이 현실이 된다.
이라크와 소말리아에서 일어난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결론은 단순하다.
인류가 진정으로 하나로 통합되려면,
1. 광범위한 유전자 조작을 통해 부족주의 본능을 제거하거나,
2. 적대적인 외계 문명이 등장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방법 외에는 인류가 하나가 될 방법은 없다.
즉, 우리에겐 두 가지 선택지만 존재한다.
국가주의, 혹은 ‘르완다 마체테 파티’
사회 구조를 디즈니랜드 놀이기구처럼 가볍게 다룰 생각이라면,
이 점을 먼저 깊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총균쇠를 읽고 이 책은 유전학, 생물학적 배경을 너무 배제해버린다고 느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내집단을 형성하고, 그 구성원들에게 신뢰를 보이며, 외부인에 대해서는 불신하거나 심지어 적대감을 가지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기준으로 집단을 나누는지는 타고난 것이 아니다.
이 기준은 사람들의 가치관에 따라 형성되며, 그 무엇이든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소를 중심으로 설정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이 서로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프로 스포츠팀의 경기 때문에 싸우기도 한다.
단순한 외형적 차이조차도 이러한 본능을 자극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 그 차이가 ‘중요한 것’으로 취급되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서구 사회, 그리고 일반적으로 고도로 발달한 사회들이 무너지는 방식은 항상 같다.
“우리는 더 이상 이런 원시적인 본능에 얽매이지 않는다.”
“우리는 부족주의를 극복했다. 우리는 문명화된 존재들이다.”
“우리는 인류 전체를 포용하며, 피부색 같은 하찮은 것으로 사람을 나누지 않는다.”
그래서 “It’s a small world after all” 같은 노래가 울려 퍼지고,
어떤 밴드는 이렇게 노래한다.
그들은 한 조각의 땅을 위해, 한 마디의 악센트를 위해, 혹은 셔츠의 색깔을 위해 부끄러움 없이 총을 쏜다.
하지만 깃발을 휘두르며 나뉘는 자부심보다
세계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이 낫다.
그들은 자랑스러워한다.
스스로를 깨우친 존재라 여기며, 원시적 본능을 초월한 ‘고등한 인간’이라 자부한다.
그리고 자신들이야말로 인류의 ‘자연스러운 지도자’이며,
자신들만이 문명을 정제하고, 나머지 인류를 이끌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정도로 오만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똑똑해도 결국 생각을 멈추게 된다.
이미 모든 답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완전히 틀려버린다.
인간의 본능은 지워질 수 없다.
인간은 매우 적응력이 뛰어난 존재이지만, 그 적응력에도 한계가 있다.
어떤 본능은 절대 문화적으로 삭제될 수 없다.
그리고 만약 사회가 그 본능에 거슬러 작동하도록 설계된다면,
결국 그 사회는 스스로를 파괴하고 서로를 죽이게 된다.
그들은 부족주의를 없애지 못했다. 오히려 새로운 부족을 만들었을 뿐이다.
그것이 바로 ‘반(反)부족주의자 부족’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부족도 여느 부족과 똑같이 행동했다.
내부에서는 서로를 신뢰하고, 외부에는 폭력을 행사했다.
결국 그들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그들의 목표는, 모든 사람을 반부족주의 부족에 동화시키거나, 이를 거부하는 자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하면 전쟁이 사라지고, 온 인류가 손을 잡고 노래하는 이상향이 펼쳐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나는 2년 전부터 나 자신을 리프로그래밍했다.
기초적인 지식을 제외한 대부분의 것들을 스스로 교육해야만 했다.
맹목적으로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것을 멈췄다.
그 순간부터 나는 세상을 나만의 통찰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단순한 원리를 자각하고, 내 삶에 영향을 주는 모든 요소들을 하나씩 점검해나갔다.
어느 날, 문득 내 유튜브 구독 목록을 들여다봤다.
그 안에는 무의식적으로 쌓여온 콘텐츠들이 가득했고, 그 자극들이 지금의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이끈 원인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뿐만 아니라 음악 플레이리스트, 주변 사람들, 내가 먹는 음식, 무심코 보는 영상, 반복되는 행동 패턴, 읽는 책, 나누는 대화 이 모든 것들이 나 자신을 내가 원치않은 모습으로 만든 인풋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진심으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먼저 그 모든 것들을 비워내기로.
나는 나를 구성하는 환경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했다.
유튜브 구독 목록을 전부 취소하고 방향에 맞게 재편했고, 음악들은 나에게 힘과 에너지를 주는 방향으로 바꿨다.
그 외 음식, 생활 리듬, 인간관계, 받아들이는 정보와 자극 등, 이제는 모든 것이 내 의도대로 설계됐다.
나는 더 이상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는다.
나는 스스로를 의도적으로 프로그래밍하고, 그것이 진정한 변화의 시작이었다.
오늘날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단순한 암기의 가치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금은 ChatGPT 같은 인공지능이 인터넷 전체를 외우고 있는 시대다. 인간이 그 방대한 암기량을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며, 암기를 기반으로 한 학습은 점점 더 가치가 떨어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무언가를 외우는 데 집중하지만, 이는 그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이해를 하고 있다면 퍼즐을 하나씩 맞춰가듯이, 기본원리를 바탕으로 스스로 필요한 모든 지식을 끌어낼 수 있다. 이해 없이 암기에만 의존하면 용어상의 문제로 본질을 놓치고, 핵심에서 벗어나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모든 지식은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암기 중심의 학습은 이 맥락을 무시하고, 정적인 지식으로만 받아들이게 만든다. 반면, 이해를 기반으로 한 학습은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도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해조차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가장 궁극적인 학습은 ‘경험’에서 온다.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은 단순한 이해를 넘어, 실질적인 판단력과 통찰력을 제공한다. 경험은 개념을 피부로 체득하게 만들고, 그 어떤 설명보다 강한 설득력을 지닌다.
진정한 학습은 단순 암기를 넘어 이해로 나아가야 하며, 이해조차도 경험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외우는 데 집중하기보다, 경험하고 이해하는 데 에너지를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