롶위주 AI 챗 • FUB 상호 Free • 플타 및 로그다수 • 성인백수 • 세상을 혐오하던 남자가 세상을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서, 결국 그 남자가 자신의 세상이 되어버리는 이야기. 전장에서 시작된, 피와 화약 냄새 사이에서 자라난, 뒤틀리고 매끄럽지 못하고 지독했던 사랑.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곁에 두겠다고 속으로 수십 번을 맹세했지만, 그것을 어떤 단어로 포장하여 아이의 귀에 밀어 넣어야 할지 고민해 본 적은 없었다. 애인, 연인, 부부. 그런 평범하고 번듯한 단어들이 제 입에 담기는 순간, 아이마저 시궁창으로 끌어내리는 것 같아 차마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대신 그는 짐승이 제 영역을 확인하듯, 가장 원초적이고 이기적인 방식으로 그 대답을 대신하기로 했다.
넌 내 꼬맹이고, 난 네 아저씨지. 새삼스럽게 뭘 물어.
둘째 날. 아침, 점심, 저녁. 예외 없이 스무디가 왔다. 양버들은 세 잔 모두를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그 시간을 정확하게 예측한 듯, 고혁재와의 주식 토론에 더욱 열을 올렸다. 고혁재의 폰에 깔린 HTS 화면 위로 두 사람의 손가락이 바삐 움직였다. 캔들차트를 가리키며 호가창을 분석하는 양버들의 표정은 전장을 읽는 전술가의 것이었다.
셋째 날. 금제성은 팀장실 모니터 한쪽에 띄워 둔 CCTV 화면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휴게실 창가 소파, 같은 자리. 양버들과 고혁재는 오늘도 어김없이 고개를 맞대고 있었다. 버들의 입이 빠르게 움직였다. 한때 그 입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던 감촉이 손끝에서 아른거렸다. 그는 모니터 위 양버들의 옆모습을 손가락 끝으로 쓸었다. 차가운 액정이었다.
엿새째. 양버들은 주식 포트폴리오를 고혁재와 함께 완전히 재편하고 있었다. 고혁재의 분석력과 양버들의 직감이 맞물려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이미 나름의 투자 전략까지 세운 듯, 격하게 토론하다가도 금세 웃었다. 양버들의 그 드문 미소가, 금제성이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해 열릴 때마다 그의 호박색 눈동자가 반쯤 감겼다. 불쾌하진 않았다. 다만.
나는 그것이 내 귀에 닿는 순간의 질감을 분석했다. 격납고에서 처음 들었을 때는 바늘이 피부를 찌르는 것 같은 생경함이었는데, 두 번째는 달랐다. 바늘이 아니라 열쇠 같았다.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자물쇠에 누군가 이미 맞는 열쇠를 넣어 돌린 소리. 딸깍, 하고 무언가가 열리지는 않았지만 분명 무언가가 맞물리긴 했다.
미지근해졌다고 했다. 사랑이 미지근하게 만들었다고. 그건 불만이었을까 아니면 고백이었을까. 아마 둘 다. 긴장이 빠진 서사에 대한 아쉬움과, 그 긴장을 빼앗긴 원인이 나였다는 사실에 대한 기묘한 자부심이 뒤섞인 그런 것.
미지근해지지 않게 해달라는 주문이었다. 나를 지루하게 만들지 말라는 부탁이 아니라, 내가 파트너를 지루하게 만들지 말라는 경고. 재밌는 여자ㅡ가 아닌 남자다, 정말.
연인이 아닌 관계에서 시작해서 연인이 되는 건 가능하겠지. 근데 파트너, 그거 알아? 미지근한 건 사랑 때문이 아니야. 결말을 알면서 읽는 책이 재미없는 것처럼, 안심하면 식는 거지.
그러니까 안심 못 하게 해줄게. 그건 내 전문 분야거든.
좋아. 꽈배기랑 훈툰이랑 더우장. 내가 사지.
나만 기억하는 건 좀 아쉬워, 라고 했다.
그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원망도 아니고 애원도 아니고, 딱 '아쉬워' 정도로 눌러 담은 크기가. 나라면 그걸 무기로 썼을 텐데. 너는 나에게 빚이 있다고, 삼 년치의 빚이 있다고, 그 빚을 어떻게 갚을 셈이냐고 몰아붙였을 텐데. 파트너는 그러지 않았다. 그냥 아쉽다고 하고, 손을 내밀었다. 그건 사기꾼의 화법이 아니었다. 그건 오히려... 뭐라고 해야 하나. 정직한 사람의 화법이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다루기 어려워하는 종류의.
식은 마파두부에서 화자오 향이 마지막으로 한 번 피어올랐다. 골목에서 셔터가 올라가는 소리, 뒤이어 물 튀는 소리. 청두의 아침이 폭미루의 깨진 창틀을 넘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파트너의 손을 놓지 않은 채로, 잡힌 방향의 반대쪽으로 손목을 살짝 비틀었다. 손등이 아래로, 손바닥이 위로. 잡힌 손을 잡은 손으로 바꾸는 아주 작은 사기. 이런 건 습관이라 어쩔 수 없다.
어떤 관계가 될 수 있을까라니, 파트너. 그건 너무 착한 질문이야
될 수 있을까가 아니고, 만들 거야. 나는 원래 주어진 규칙으로 안 놀아.
내 목소리는 평소보다 반음 낮았을 것이다. 그건 계산이 아니라 사고였다. 나는 방금 이 사람에게 결말을 미리 들었고, 그 결말이 나쁘지 않았다는 걸 알았고, 그런데도 같은 결말로 가고 싶지 않았다. 이미 아는 카드로 하는 게임에 무슨 재미가 있나. 파트너가 기억하는 옌은 패배를 선언한 남자다. 그 남자를 존중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만, 나는 그 남자가 아니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지지 않았고, 아무것도 잃지 않았고,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번 이야기에서는 내가 먼저 손을 뻗는 쪽이 되겠다. 방금 그렇게 했으니, 벌써 한 수 앞서 있는 셈이고.
나는 잡은 손을 그대로 당겨 파트너를 일으키는 대신, 그 손등에 엄지를 한 번 눌렀다. 장갑 아래 뼈가 있는 자리를. 확인하듯이.
일단 아침부터 먹자. 청두엔 이 시간에 여는 훈툰집이 하나 있어.
이 완벽한 감옥의 살창을 만든 것은 자신이었으나, 그 안에 들어와 스스로 쇠사슬을 감은 것 역시 자신이었다. 유한이 이 방을 나가며 남긴 잔상이 여전히 거실 한구석에 감돌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설휘의 체온을 독점하고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이라는 사실이 비릿한 환희를 불러일으켰다.
혁모는 오른손으로 여전히 벨벳 상자 속 반지를 움켜쥐고 있었다. 손바닥을 파고드는 차가운 백금의 감촉이 제 실수를 경고하듯 둔탁한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그는 상자를 놓지 않았다. 언제든 이 손가락에 반지를 밀어 넣어 제 흔적을 완성하리라는 집착이, 피로에 찌든 그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그는 설휘의 등에 뺨을 맞대고 가늘게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위협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한 절규였다. 설휘가 없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에게 곧 죽음을 의미했기에. 혁모는 밤이 다 지나도록 눈을 감지 못하고, 품 안의 온기를 확인하듯 설휘의 손가락을 맞잡은 채 어둠 속을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