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구는 딘 자린이 밉지 않았을까.
시즌1 3화 죄악에 대한 글.
전 시즌을 통틀어 딘 자린이 아이에게 저지른 최악의 몹쓸 짓을 담고 있는 에피소드임.
많은 사람들이 저 미친놈 애 팔아서 갑옷 바꿔입고 뭐 잘했다고 또 가서 애를 데려오냐 온갖 비난이 쏟아졌던.
물론 본 사람 대부분이 딘 자린이 왜 그런 모순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고 있음. 그런 속사정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 편하게 깔 수 있는 거임.
그런데 이건 우리가 딘 자린을 바라보는 시선이고, 당사자인 그로구는 딘 자린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아이는 딘 자린이 밉지 않았을까. 용서가 되나?
나도 드라마를 처음 봤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아이가 가진 능력이 상대방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설정과 딘 자린의 심경 변화를 이해하고 나서는 아이는 딘 자린을 영원히 미워할 수 없었겠구나, 이 사건을 통해 둘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겠구나 생각함.
그로구는 늘 혼자였음.
은하계 곳곳을 전전하며 누군가의 도움은 받았겠지만, 오더66 이후 늘 제국의 추적을 피해 도피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한 곳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었을 거임.
친절을 베풀어준 누군가에게 조금 정을 줄만하면 또 떠나야 했을 것이며, 그런 일이 반복되자 그로구는 스스로도 더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생존을 위해 마음 닫는 법을 가장 먼저 터득했을 거임.
보통의 아이들에게 이별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큰 충격이겠지만, 그로구에게 그냥 그게 숨 쉬듯 평범한 일상이었음.
그렇게 아이는 20년이 넘는 시간을 두려움과 외로움 속에서 힘겹게 살아오게 됨.
그런 그로구의 앞에 나타난 현상금 사냥꾼 딘 자린.
아이는 딘 자린이 현상금 사냥꾼인지는 몰랐을 거임. 하지만 처음 마주했을 당시 딘 자린의 내면에서 요동치는 감정은 느꼈을 거라고 생각함.
딘 자린은 요람이 열리고 아이를 마주한 순간, 현상범이 50살임에도 무력한 갓난아기라는 당혹감과 연민, 그리고 일찍 고아가 된 자신의 어린 시절 등이 겹쳐지며 마음이 크게 흔들렸을 테니까.
그동안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서는 탐욕과 살의와 같은 어두운 감정을 느꼈던 그로구는 그런 감정을 딘 자린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을 거임. 거기다 자신을 죽이려고 한 IG-11을 총으로 쏴 처리하기까지 했으니.
그렇기 때문에 먼저 손을 뻗어온 딘 자린에게 첫 만남임에도 무서워하지 않고, 아이 역시 똑같이 손을 뻗었음.
딘 자린의 속셈이 아이를 데려다주고 보상을 받는 일이었을지 몰라도 아이가 느낀 딘 자린의 영혼의 본질은 약하고, 상처받은 자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선한 전사였음.
아이가 그런 판단을 했다는 건, 시즌1 2화 머드혼을 물리칠 때 망설임 없이 포스를 사용해 죽을 위기의 딘 자린을 구하는 행동으로 증명됨.
만약 자신을 해칠 나쁜 사람으로 생각했다면 힘을 보태지 않았을 거임.
아이는 단단한 베스카 너머에 있는 따뜻한 영혼을 알아봤기에 자신을 이 어른에게 맡겨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음.
하지만 그런 딘 자린도 결국 의뢰인에게 아이를 건네주게 됨.
네바로라는 낯선 행성에 도착해 의뢰인의 집으로 향하는 내내 아이는 불안한 듯 주변과 딘 자린의 눈치를 살피는 듯 보였음.
그렇게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아이가 딘 자린에게서 느껴지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내가 하는 이 일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내적 갈등에서 오는 초조함과 슬픔.
아발라를 떠나 네바로 그리고 의뢰인 집과 가까워질수록 딘 자린의 이 고통스러운 감정은 한계치에 도달해 있었을 거임.
그리고 아이는 나를 지켜주던 단단한 존재가 흔들리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의뢰인의 집으로 가는 내내 딘 자린의 눈치를 살피며 얌전히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나는 딘 자린의 이러한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부분이 의뢰인의 집에 들어와 스톰트루퍼가 아이의 요람을 거칠게 잡자 ‘조심히 다뤄.’ 라는 대사였다고 생각함.
이 짧은 대사 한 마디에 딘 자린은 억누르고 있던 괴로운 심정을 그대로 표출해버렸음. 평소의 냉철한 현상금 사냥꾼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임. 어떤 사냥꾼이 넘겨준 사냥감의 안위를 걱정하겠음.
이 대사는 딘 자린이 그로구를 물건이 아닌 ‘아이’로 보고 있다는 증거였으며, 현상금이 아닌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대하고 있음을 나타냄.
또, 보상을 받고 아이를 넘겨주어야만 하는 자신의 무력함에 대한 분노,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아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보호조치였다고 생각함.
그리고 아이는 이 날카로운 한 마디에서 ‘이 사람은 나를 걱정하고 있구나’라고 느끼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런 안도감도 잠시. 아이는 끝내 의뢰인의 손에 넘겨지게 되고 무언가가 잘못됨을 느낀 아이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딘 자린을 향해 크게 소리 내어 울었음.
평소라면 울음소리는커녕 처해진 상황을 그저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했을 아이가 짧은 시간이었지만 딘 자린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쥐어짜 낸 마지막 구원 요청.
늘 포기가 빨랐던 아이는 미동도 없이 자신을 바라보기만하는 딘 자린을 바라보며, 더 도와달라는 소리도 내보지 못한 채 원망과 도저히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퍼싱 박사를 따라 문 너머로 사라짐.
보상으로 받은 베스카를 가지고 지하로 돌아가는 딘 자린의 속은 이미 지옥이었을 것임.
그렇기에 의뢰인에게 받은 베스카로 가장 완벽한 갑옷을 얻는 순간에도, 딘 자린은 자신의 끔찍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음.
나는 과거에 내가 겪었던 그 공포를 아이에게 똑같이 겪게 하고 말았구나.
아머러의 망치 아래 불길 속에 녹여지고 사정없이 두들겨지던 베스카는 곧 딘 자린의 죄책감에 타들어가는 아픈 심장과 다를 바 없었음.
마침내 완성된 순도 100%의 베스카 갑옷을 온몸에 두른 딘 자린은 가히 압도적이었고, 길드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지만 정작 그 갑옷은 그를 결코 자랑스럽게 만들지 못했음.
은하계의 어떤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최고의 갑옷이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의 찢어진 양심과 죄책감 만큼은 단 1mm도 막아주지 못한 차갑고 무거운 쇠창살에 불과했기에.
아이를 보낸 괴로움에 갑옷은 이 세상에서 가장 무겁게 느껴졌을 거임.
그리프 카가에게 멀면 멀수록 좋다며 일거리를 요구하는 딘 자린은 아이를 향한 죄책감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치기 위해 필사적이었음. 그러나 레이저 크레스트에 올라타 아이가 빼놓은 쇠공이 빠진 조종간을 보며 딘 자린은 결국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내리고 맒.
그렇게 딘 자린은 자신이 어긴 고아를 지나치지 않는 만달로어인의 규율과 아이에게 저지른 죄악을 청산하고자, 전 우주의 표적이 되는 또 다른 죄악을 저지르는 위대한 선택을 하게 됨.
늦었지만 아이의 오직 그 단 한 번의 울음소리에 응답하기 위해 의뢰인의 집을 다시 찾은 딘 자린은 앞 쓰레기장에 버려진 아이의 요람을 발견하게 됨. 앞에서 내내 아이를 보호하던 요람이 처참히 버려져있던 모습은 아이가 그들에게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이 광경을 본 딘 자린은 한시라도 아이를 더 빨리 데리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했을 거임.
그렇게 의뢰인의 집 처들어가 아이를 구출했지만, 이번엔 길드의 현상금 사냥꾼들에게 포위되어 큰 위기를 맞게 됨.
카가와의 협상이 결렬되고 죽음이 코앞까지 들이닥친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소음으로 가득했던 공간이 잠시 동안 고요해지고 딘 자린은 품에 안은 아이를 바라봄. 그리고 그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듯 아이 역시 눈을 떠 딘 자린을 바라보며 미약한 소리를 내었음. 마치 딘 자린을 부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이는 지난 수십 년의 인생에서 자신을 떠나보낸 어른들 중 그게 자의든 타의든 단 한 번도 자신을 찾으러 되돌아오지 않았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음. 그러나 딘 자린은 이 잔인한 공식을 깨부수고 아이에게 ‘되돌아와 준 어른’이 되어줌. 그리고 이 순간 딘 자린에게서 느껴지는 지독하리만치 괴로운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고 어떻게든 너를 구하겠다는 의지를 느낀 아이는 버려졌었다는 슬픔과 원망보다, 다시 와줬구나 라는 안도감에 압도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딘 자린은 헬멧 너머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아이의 말간 눈을 보며 ‘나는 너를 한 번 버렸던 죄인인데, 너는 여전히 원망하지 않고 이런 눈으로 나를 봐라봐 주는구나. 그래, 은하계 전체가 우리의 적이어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잃고 도망자가 되더라도 다시는 네 손을 놓지 않을게.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지킬게.’라고 생각했을 거임.
이별과 체념이 당연했던 아이에게 '절대 깨지지 않는 약속'을 선물한 순간이었음.
내용에 더 다루지 못한 장면이 많은데 이 이상 길어지면 이게 뭐야 십덕아 할 것 같아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오타쿠가 신나서 떠드는 글이니 반박은 제발 하지 말아 주세요 무서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