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수준>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던 대한민국의 수준이 처참해졌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를 제대로 못하는, 듣도 보도 못한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사전투표에서는
권력자들이 투표내용을 공개했다. 그러더니 본투표에서는 투표용지 부족사태가 드러났다. 이승만 시대에도, 전두환 시대에도 없던 일이 2026년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그런데도
중앙선관위는 몹시 안이하고 태평하다. 선관위 사무총장은 국민께 '혼란과 심려'를 드렸다고 사과했다. 이 사태가 '혼란과 심려' 정도의 문제라는 인식이 한심하고 뻔뻔하다. 중앙선관위원장은 선관위의 '권한의 한계' 뒤에 숨으려 하고, 청와대는 '선관위가 할 일'이라고 떠넘긴다. 모두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다.
헌법은 41조 국회의원선거 조항, 67조 대통령선거 조항에서 선거의 4대 원칙을 분명히 규정했다.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의 원칙이다.
보통선거는 일정한 연령을 넘으면 모든 국민이 투표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평등선거는 누구나 1인1표의 투표권을 갖는다는 의미다. 직접선거는 유권자 본인이 직접 투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밀선거는 투표내용이 공개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이번 사태는 선거의 4대 원칙 가운데 적어도 3개를 깨뜨린 헌법위반이다. 투표용지 부족은 보통선거, 평등선거의 원칙을 위반했다. 기표내용 공개는 비밀선거 원칙에 어긋난다.
이렇게 위중한 위헌사태 앞에서 국가기관, 그것도 헌법기관들이 안이하고 태평한 태도를 보이는 것. 그것이 투표용지 부족보다 더 처참한 대한민국의 수준이다.
선관위는 부패 기득권의 한 축이다.
간부가 무단 결근으로 70차례 해외여행을 다녀와도,
전례 없는 1200여 건의 채용 비리가 발생해도,
쓰레기 봉투와 소쿠리에 투표 용지를 받아도,
투표 용지 대충 반만 뽑은 게 들켜도 배 째라는 식이다.
투표 용지는 유권자의 수만큼 딱 맞춰 준비해야 한다.
투표를 할지 말지, 누구에게 할지는 주권자가 정할 몫이다.
선관위는 주권자를 모실 준비를 똑바로 했어야 한단 말이다.
불투명한 투표함을 투명하다 속이며 지록위마로 국민을 농락하더니
이제는 왕서방식 논리 내세우며 국민의 참정권마저 짓밟는가.
투표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개표를 하는 무원칙은 또 뭔가.
가벼운 고개 한번 숙였다고 수습될 일 아니다.
이런 무능하고 나태한 조직은 수술해야 한다.
또한 그동안 ‘부정’이라는 금기어를 정하고 뒷짐 진 채
국민을 조롱하고 무시했던 정치인들은 모두 반성하기를 바란다.
오만한 기득권의 무책임은 곧 국민이 겪어야 할 모욕,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뒤틀린 현실이 된다.
그대들의 방관의 대가가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