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chorworks1971 과거,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간 전력 격차가 지금보다 더 심했을때는 "부산에서 대마도를 향해 포를 쏴 해병대가 점령하고, 거기서 일본의 다음섬으로 대포를 쏘고(이하생략)" 같은 농담이 있었어요.
뭐 지금은 우스갯소리지만요. 애초에 대 중국 합체로봇 파츠끼리 서로 싸우면 미국이 혼내요.
@THM45906758 뭐 IF는 IF지만요. 단순히 이토가 살아남고 야마가타가 암살,또는 실각하는걸 넘어서, 이토가 당시 레임덕에 가깝게 부족했던 정치적 영향력을 되찾고 내각을 이어나가며 후계자까지 만들지 않고서야 지금의 역사와 크게 다르진 않았을거라 생각하긴 합니다.
@THM45906758 뭐, 이토가 향년 68세로 사망했을때와 중일전쟁의 서막인 노구교 사건까지는 약 30년의 세월이 있으니까요.
단순히 "이토가 군부의 폭주를 계속 막았을것이다"보단, "그가 갑작스럽게 죽고, 그의 정치 노선을 계승할 사람도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같은 느낌이긴 합니다.
@so_just_doit 물론 이토가 21세기의 소위 경제적 식민지론에 가까운 느낌의 조선 병합 반대를 말했다는건 알고있습니다. 아시아주의를 기반으로 친일파를 모으고, 경제적 이득을 보는게 나으니까…
저 이론에서 중일전쟁은 우발적 사건에 의한 군부의 폭주를 내각이 저지할수 없었다를 전제로 합니다.
@THM45906758 이토 히로부미를 메이지 유신 원로로서 군부와 내각을 조율할수있는 요인이라 봤기에, 그런 시각도 있었어요.
뭐 서구열강에 익숙한 이토가 남아있었다면, 군부의 폭주로 인해 일어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은 그 전개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IF의 영역이지만요.
@579138916abc 아뇨, 저희도 현대 일본에 대해서 배우는건 거의 없어요. 끽해야 “버블경제 시절이 있었다”와 “한국전쟁시기 일본이 전쟁물자 생산을 맡아 일본의 전후경제가 되살아났다” 정도?
한국에서 접하는 현대일본사회는 대부분 일본 드라마, 애니메이션 정도에요.
@Tnaoya13 사실 origami문제는 번역기의 문제라고 어느정도 결론이 나온것같아요.
이건 발단일 뿐이고 그 과정이었던 일본식 스몰토크(~있어?)를 이해 못한 사람들이 “왜 우리를 ~ 없는 미개인마냥 무시하는거냐”하고 화난 케이스들이 많으니까요. 서로 더 교류하면 해결될것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