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네즈나야의 드넓은 설원에서 흩날리는 눈발의 하나와 둘, 셋의 그 이상까지 강인한 신념을 담는다. 겨울은 견고하지 않으므로 나의 역할은 이 자리를 어느 혹자가 딛을 수 있도록 그저 고고하게 다리에 서 지키는 것이다. 왼손으로 이전 겨울들을 묵념한다. 스스로, 수호해야 하는 의미를 알고 있다.
@quisitr 오르골,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예술 작품이니 아름답도 고귀할수록 그 시간에 사로잡히는 것이지 않겠습니까? 시간에 발목을 묶인 감상 한 줄로도 충분했습니다. 꽤 유심히 보신 모양이군요. 그러니 이제는 감상에 묶인 그 족쇄를 풀어 드려도 괜찮겠죠.
@quisitr 그 용무는 업무 시간이 종료된 이후에도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에너지 학자 선생님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지정된 업무 시간에는 시선은 앞으로 고정할 것, 모든 것들을 다 처리한 이후에 여가 시간을 즐기는 것이 대체로 합법적이죠. 당신의 잠깐이 제게는 두 배 이상의 업무로 와닿고 있습니다만.
@Rkamzxqnl 감사히 받겠습니다. 물 위를 걸어가는 것이 혹한의 설원에서 벌어지는 아이러니한 사건이 생각이 나는군요. 눈을 뜬 뒤 기억은 흐릿해도 길목이 평온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미탸 씨, 당신도 그랬습니까? 한 가지 더 첨언하거든 그 풍경에서 도망치지 마십시오. 그때는 업무 시간입니다.
죽음으로 걸어간 나의 길에 당신의 목소리로 애틋한 묵념을, 그리고 세운 묘비에 눈을 치워 주던 스네구로치카의 울음이 묻은 자국 몇 개가 당신임을 증명하였고 눈을 감은 내내 어둠만이 친숙한 것이었으나 마지막 피날레는 당신의 통곡으로부터 비롯되어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반갑게 여겨졌다.
영혼이 묻는다. ‘길을 잃었습니까? 레테의 강으로 걷는 과정까지 길잡이가 필요하신지.’ 고개를 젓는 이의 표정은 백색처럼 하얗게 질렸었으나 스스로도 그 연유를 몰랐다. 보십시오. 저는 투명하고, 당신을 만질 수도 없습니다. 움직임 하나다 죄스러우며 그를 향해 손을 뻗는 것도 죄악입니다.
@quisitr 계획했던 전부를 이루는 것은 업무 시간에 이뤄 주십시오. 미탸 씨, 말씀하신 부분은 업무 시간이 아닌 업무 외 시간으로 여겨집니다. 경호해야 하는 대상이 바람처럼 사라진다면 소명을 다해야 하는 자에게 대응할 시간마저 주어지지 않으니까요. 제가 당신을 마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창천 위 쪽빛의 오로라를 하염없이 바라보고자 하니 죽음을 마주하기 전이 아닌 이상 이 행위가 죄악임을 알아서 흩날리는 눈발을 벗으로 삼아 손끝으로 벤 오로라 조각을 짓이겨 삼키고자 한다. 오롯한 사명조차 지키지 못할 것이라면 몸뚱어리를 두어 그 눈길 위를 짓밟게 함이 스스로가 낸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