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식자의 우리〉 제5부: 겨울의 포식자
철커덩.
석 달 만에 열린 중징벌 독방의 철문 너머는 폐부를 찌를 듯 시린 겨울밤의 냉기로 가득 차 있었다.
복도 창살 틈새로는 어둠을 가르고 내려앉는 고요한 첫눈 가루가 서늘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땀에 젖은 알몸으로 일어선 이현의 발치에 교도관이 집어 던져준 푸른 수의 상하의가 놓여 있었다.
가슴팍에 선명하게 박힌 붉은 명찰, '0721'.
이현은 천천히 허리를 숙여 옷을 주워 들었다. 석 달간의 혹독한 단련으로 한층 넓어진 어깨와 빈틈없이 갈라진 조각 같은 상체 위로 거친 면 수의가 스쳐 내려앉았다. 단추를 채우는 긴 손가락 끝에는 일말의 조급함도 없었다.
단추를 목덜미 바로 아래까지 느슨하게 채운 이현이 문가에 굳어 있던 당직 교도관을 향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저기요."
낮고 서늘하지만 귓가를 나른하게 파고드는 미성.
교도관은 무의식중에 허리춤의 가스총 손잡이를 꽉 쥐며 긴장 어린 눈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석 달 전의 연약해 보이던 마른 청년의 기운은 온데간데없고, 눈앞에 선 존재는 그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맹수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왜 그러나, 0721."
이현은 헝클어진 흑발을 쓸어 넘기며, 붉은 입술 끝을 스르륵 말아 올렸다.
"땀을 좀 흘려서 그런데…… 들어가기 전에 온수 샤워, 가능합니까?"
"……온수 샤워?"
교도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원래 정해진 목욕 시간이 아닌 야심한 밤에 개인 온수 샤워를 요구하는 것은 명백한 규정 위반이었다. 더군다나 그 장소는 석 달 전, 이 사형수가 강시완의 패거리들을 피바다로 도륙 내고 시완을 완벽하게 무릎 꿇렸던 바로 그 '공동 샤워장'이었다.
하지만 교도관은 소장의 은밀한 지시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0721이 나오면 불필요하게 자극하지 말고, 웬만한 건 비위 맞춰서 조용히 2호실로 넘겨.’
소장마저 이 괴물과의 뒷거래를 통해 사동의 침묵을 유지하려 드는 판국에, 일개 교도관이 굳이 칼날을 곤두세운 맹수의 심기를 거스를 이유는 없었다.
교도관은 복도 양옆을 힐끔 살핀 뒤, 헛기침을 하며 턱짓을 했다.
"……딱 10분 준다. 아무도 없으니까 얼른 씻고 나와."
"감사합니다."
이현의 입가에 피어난 미소는 위험할 정도로 우아했다.
스륵, 스륵.
어두운 복도를 지나 도착한 3사동 공동 샤워장.
낮의 소란이 거짓말처럼 씻겨 나간 탈의실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교도관은 샤워실 출입문 바깥 복도에 팔짱을 낀 채 등을 대고 섰다. 묵직한 진압 곤봉을 툭툭 치며 문을 지키는 간수의 시선은 사동 복도의 어둠을 경계하고 있었다.
끼이익-.
이현이 혼자 밀고 들어선 샤워실 안.
석 달 전 붉은 피와 비눗물이 엉겨 붙어 배수구로 소용돌이치던 타일 바닥은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지만, 코끝을 스치는 희미한 쇠비린내와 습기는 여전히 그날의 지옥도를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스륵.
이현은 입고 있던 수의를 미련 없이 벗어던졌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완전한 나신이 다시금 차가운 어둠 속에 드러났다.
수도꼭지를 돌리자, 거친 굉음과 함께 샤워기 꼭지에서 뜨거운 물줄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치익- 쏴아아아.
순식간에 하얗고 짙은 온수 증기가 차가운 샤워실 공기를 집어삼키며 타일 벽면을 온통 뿌옇게 뒤덮었다.
이현은 망설임 없이 그 뜨거운 물줄기 아래로 온몸을 밀어 넣었다.
"하아……."
석 달간 독방의 혹독한 냉기를 버텨냈던 살갗 위로 뜨거운 온수가 거침없이 내리꽂혔다.
물줄기를 정면으로 받아내며 젖은 흑발을 뒤로 넘기는 이현의 등줄기가 활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다.
쏟아지는 물방울이 완벽하게 자리 잡은 가슴 근육의 굴곡을 타고 흘러내려, 선명하게 조각난 복근과 날카로운 치골선을 따라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욱한 백색 수증기 속에서, 젖은 속눈썹을 들어 올린 이현의 호박빛 눈동자가 안개 낀 허공을 천천히 응시했다.
문밖에는 자신을 감시하는 척 문을 지켜주는 교도관이 서 있고,
이 벽 너머 3사동 2호실에는 이제 완전히 자신의 지배 아래 놓인 수감자들이 숨을 죽인 채 주인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포식자의 완벽한 정화(淨化).
뜨거운 온수 속에서 피로와 냉기를 씻어낸 맹수가 마침내 자신의 거대한 영지로 걸어 들어갈 채비를 마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