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 학생들이 받을 상처를 오히려 우선적으로 걱정하고, 그들은 잘못이 없다고 두둔하며, 이제는 그들이 과도한 공격을 받고 있다며 사람들이 학교에 화환까지 보내고 있다.
“가해자-피해자 역전”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피해자가 아니지만 피해자를 자칭하거나, 오히려 적극적으로 피해자로 호명되는, 즉 피해자성을 “무기화”하는 현상을 뜻한다.
피해자성은 우리 시대의 강력한 무기이자 상징자본으로 작동하고 있다. “피해자”라는 자격이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누구의 상처, 고통, 트라우마가 보다 손쉽게 인정받는가, 반대로 누구의 상처, 고통, 트라우마가 부정되는가의 문제는 결코 이례적인 사건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부정의의 뚜렷한 양태라고 보아야 한다.
이 책은 피해자성을 둘러싼 담론적 장치를 정교하게 해부하고, 담론 그 자체를 분석할 수 있는 틀을 보여준다. 즉, 누군가가 “피해자성”을 들먹일 때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고 차분히 그 구조와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가이드를 제공한다.
가해자들이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나설 때, 혹은 어떤 집단이 피해자로 호명될 때, 만약 그같은 “피해자 담론”을 보면서 당혹스럽다면, 바로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담론은 기존의 부정의와 체제 유지에 기여하고 변혁의 에너지를 차단하는 기능을 하는가?”
바로 이 질문으로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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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릴리 출리아라키의 <가해자는 모두 피해자라 말한다>가 출간되었을 때 보냈던 추천사 전문.
어떻게 피해자 담론은 가진 자들의 무기가 되었을까? ‘갈라치기’의 정치공학이 노골적으로 펼쳐지는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타자를 손쉽게 ‘가해자’로 지목하고, 반면 자신은 억울한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보상을 촉구한다. 이같은 경합의 장을 어떻게 읽어내면 좋을까.
이 책은 우리가 피해자성을 둘러싼 담론적 함정에 빠지지 않고, 그 이면에 놓인 구조와 권력을 들여다볼 수 있는 훌륭한 분석틀을 제공한다. 저자는 기득권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새롭게 호명함으로써 불균등한 권력 관계를 재생산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밝히고 있다.
결국 피해자성은 우리 시대의 강력한 무기이자 상징자본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저자는 변화를 촉구하며 질문을 던진다. 피해자의 자리가 특권이 된 시대, 우리는 고통의 언어를 취약한 이들의 것으로 되돌려놓을 수 있을까? 이 쉽지 않은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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