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說(설), 꽃 花(화)
설화(說花)는 부디,
마음을 말과 글로 피워내는 사람.
사랑을 기억으로 남기는 사람.
누군가의 계절 속에서 오래도록 꽃처럼 머무는 사람으로 성장하여,
네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에도
조용히 꽃을 피워내기를 바란다.
— 𝐍𝐚𝐦𝐞𝐝 𝐛𝐲 𝐇𝐚𝐝𝐞𝐬
��가 더 큰 사람이 되고 싶다. 내 곁에 있는 주인님을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그래서 사소한 일쯤 아무것도 아니잖아. 괜찮아. 라고 덤덤히 어깨를 토닥여 주며 안아줄 수 있는, 너르고 깊은 사람이 되고 싶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지옥 같던 세상에 유일한 서로의 희망이 되어주고 싶다.
내 삶에 너무 많은 사람을 초대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 삶은 혼란스러워질 뿐이다. 인생의 기본은 언제나 번잡함이 아니라 단순함에 있다는 것을. 삶의 지혜는 중요하지 않은 것을 조금씩 치우고,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비워 내어 가장 중요한 것을 남기는 데에 있다.
주인님은 상처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와 발목을 잡는 고통에서 벗어나 주길 바라지만 내 생각보다 강한 그는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로 웃었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당신만이 의연하게 서있었다. 아픈건 오히려 지켜보는 나였다. 내가 대신 아팠다. 주인님은 그렇게 참아 낸다.
나는 당신의 사람 내음이 좋았다. 허세 부리지 않고, 담담히 자신의 아팠던 시절을 말하며 그것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 만들어준 자긍심이라 말하는 이 남자가, 성향과는 다��� 방향으로 얼마나 무수히 많은 이들을 배려하고 마음을 써온 지가 너무나도 잘 느껴져서, 자주 내 가슴을 두드렸다.
처음 달의 이면을 보았을 때 가슴 찢기는 고통을 느끼며, 내가 이 아름다운 사람의 모든 아픔까지 끌어안아 스펀지처럼 흡수할 수만 있다면, 지켜주고 싶다. 대신 아파주고 싶다. 웃게 해주고 싶다. 이 척박한 세상 무조건적인 내 편이 있다는 기분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게 시작이었다. 잊지 말자.
무리를 했는지 제대로 탈이 나버���다. 이틀 밤 꼬박 앓고 나니,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고 주인님께 심려를 끼쳐 마음이 무겁다. ‘주인님 안 가시면 안 돼요?’ 옷자락 꼭 움켜쥐며 했던 내 마지막 말이 못내 가슴에 남는다. 그냥 하지 말걸, 일 가셔도 내내 걱정하실 걸 알면서. 바보같이,
사람은 기억을 잃으며 산다. 오래되어 잊혀지기도, 고통스러워 잊어버리기도 한다. 난 유독 옛 기억이 희미했다. 잊어야, 지워야 살 수 있는 순간들이 많았다. 앞으로는 기억하고 자꾸 되새겨야 할, 나를 살게 하는 순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리고 그 안에 주인님이 나와 함께 숨 쉬었으면 좋겠다.
완벽한 삶만이 진짜라 여기며, 자기 증명과 인정욕구로 숨이 턱 끝까지 찬 내게 주인님께서 주신 가르침. 인생을 되돌려 완벽하게 만들고 싶었던 마음은 어느덧 그와 함께 그저 삶을 잘 완수하고 싶다로 바뀌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우리만의 이야기로 가득 채우는 것, 그게 가장 온전한 삶이 아닐까.
대단한 사람이 되진 못해도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소녀는 세상에 배웠다. 나는 대단할 수도, 단단할 수도 없다는 걸. 나약한 마음 하나를 이끌고 나 하나도 겨우 건사하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오다 이윽고 깨닫는다.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태어났구나, 당신의 것이 되기 위해 가꾸어왔다고.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나와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내 세상은 완전히 달라지는 거야. 같은 것을 보더라도 누구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누구와 어떤 사유를 나누느냐에 따라 내가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는지, 얼마나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얼마나 빛날 수 있는지가 달라지니까.
난 결과보다 과정에 집착했던 사람이었다. 왜 그토록 과정에 마음을 뒀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내가 해낸 것을 봐달라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과정을 지나 여기까지 살아온 날 봐달란 마음이었다. 무엇을 이루었는지가 아니라, 그 시간을 살아낸 나. 성취가 아니라 존재를, 결과가 아닌 나를 봐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