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명은
밥 대용으로만 살기엔 지겹다며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기름에 뛰어드신
감자 선생의 ��을 받들어
양념소스라는 과자계의 혁신 아이템과 손을 잡아
경쟁자들 사이에서 양념치킨맛 감튀라는 존재감으로
저 사람의 눈을 사로잡고
그의 코와 입을 황홀하게 하는 데에 온 몸을 불태워야 한다!
오늘 아침이 되자마자
또 미쯔를 먹어버린 것이다.
만일 미쯔가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손톱만한 것들이 다발로 모여 내게 초코빔을 발사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식단 관리에 성공했을지도 모르는데.
하필이면 미쯔가
미쯔가 발��되는 바람에
미쯔를 먹어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휘말리게 되어
미쯔로 내 첫끼를 시작하는 바람에
그 놈의 미쯔
미쯔
내 정신을 흔들어 놓은 미쯔
이틀 전
성인 남성도 버거워할 양의 콩국수를 국물까지 싹싹 비우고
접혀있던 복부 튜브가 만족스럽게 부풀어오르는 것을
양 손바닥으로 둥글둥글 쓰다듬으며
내일부터는 반드시 철저한 식단 관리를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나의 뇌는
다음날 아침이 되자 기억을 콩국수와 함께 말끔히 소화시켜
두 발을 화장실보다도 빠르게 냉장고 앞으로 데려다놓고
눈에 걸리는 빵을 모조리 꺼내 식탁에 늘어놓은 뒤
혹여나 마음이 변할까 재빨리 포장지를 찢게 하였다.
아침에 제일 먼저 물부터 마시라는
수많은 전문가들의 조언도 모조리 무시한 채
바짝 마른 �� 안에 빵들을 밀어넣고는
힘없이 ��� 늘어져 있던 복부 튜브가 다시 부풀어오르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한 모금의 물을 허용하더니
뒷일을 인슐린에게 맡겨놓고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눈 뜬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잠귀신이 덕지덕지 들러붙어 몸이 세 배나 무거워진 나는
다시 침대에 드러누워
내일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식단 관리를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오늘도 저 인간은 어김없이 채신머리도 없이 뱃가죽과 입구멍을 한 뼘씩이나 드러낸 채
내가 불어주는 먼지도 일체 저항 없이 받아내며 자고 있다.
"지 애미애비 늙어 죽을 때까지 저럴라나. 알바라도 하든가."
어머니의 한숨도 저항 없이 받아내고 있다.
지금은 숨만 쉬는 시체지만 그 몸뚱아리에서도 발산되는 열이 무려 36.5도. 그 이상 올라가면 어머니의 조상님이 와서 깨워도 꿈쩍도 안 하던 것이 스스로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내 머리통을 휘어잡고 이리저리 비틀어 저승으로 날려보낼 것이다.
하여 나는 살기 위해서라도 사력을 다해 저 인간의 체온 상승을 막아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나는
지름 15cm에 팔 다섯 개, 4단 풍속까지 탑재한 나름 이 바닥에서는 뛰어난 스펙으로 태어났지만 불행하게도 악덕주에게 간택된 손풍기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연은 그다지 설레지 않았다. 작년 이맘때, 에어컨 컨트롤권이 없던 그는 통장마저 씨가 말라있었지만
제 체온을 능가하는 더위에 인내심이 녹아내려 남은 숫자를 벅벅 긁어다가 나를 입양했다.
그래서일까. 택배 상자가 열리던 순간 처음 본 그의 얼굴은 딱 이러했다.
(-ㅅ-)
이 집안 다른 구성원의 이야기를 듣자 하니, 창고에 왕선풍기가 있다던데 왜 그는 꾸역꾸역 나를 데려다 굴리는 걸까?
저리 퍼질러 자는 모양새로 추측하건대 왕선풍기는 여름이 끝나면 씻겨야 하기 때문에 귀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간단히 뚜껑만 열어 물티슈와 면봉으로 슥슥 닦아주면 끝이다. 괜히 씻긴답시고 물에 집어넣는 순간 49800원에 의지하여 버텨온 저 사람의 멘탈은 너구리가 씻은 솜사탕처럼 사라지리라.
그러면 그의 불쾌지수는 하늘을 찔러 가족의 평화를 어지럽히고, 애당초 소유권이 없었던 보금자리에서 쫓겨나 도로 위의 방랑자가 될지도 모른다.
이 모든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하여 나는 30여 년 묵은 36.5도 생명체의 퍼진 몸을 이리저리 식혀대고 있는 것이다. 어디선가 워라밸이 지켜지는 삶이 이상적이라 들었다. 우리는 그 세 글자를 각각 찢어 저 사람이 '라'를 맡고 나는 '워'를 맡고 밸런스는 소각장에 던져버렸다. 워...........
그러니 나의 생모가 이 글을 읽는다면, 부디 나의 안부를 걱정해 주기 바람.
그날 엄마는 나에게 돈까스를 사준다고 했다.
7년 인생 중 가장 설레는 말이었다.
유치원도 안 가도 된다고 했다.
두 배로 설레는 말이었다.
그러나 설렘은 간절함을 타고
버스를 타고
엘리베���터를 타고
복도를 타고
의자 위에 누웠을 때 정체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그것은 거침없이 내 이빨을 파고들어
(위잉- 위잉-)
억눌렀던 사나이의 눈물샘을 터뜨리고
천장을 뚫는 비명을 내지르게 한 뒤에야
세상 밖으로 풀어주었는데
그 일련의 과정 내내 엄마는
희망의 손길로 나를 꽉.. 지���해주었다.
"어아으아으아(우리 아직 돈까스집 안 간 거지?)"
"응, 다했어 움직이지마."
.
.
.
.
따뜻한 조명,
나무 의자와 테이블,
적당한 담소 소리.
기나긴 훌쩍임 끝에 도달한
심신의 안식처.
"실컷 먹어."
"........"
엄마의 세계에는 돈까스가 이런 모양일 수도 있었다.
씹지 않아도 되는,
어쨌든 새콤달콤한.
엄마는 나를 지긋이 바라봤고
나는 엄마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의사선생님이 그쪽으로 씹지 말라고 하셨지?"
(끄덕끄덕.)
자기 앞에 놓인 돈ㄲ, 아니
커피물을
딸기물을
얌전히 빨아들였다.
쫍쫍.
쫍쫍.
.
.
.
"다음 주엔 뭐 먹을래?"
안먹...
"딸기 남았네 거기."
(호록)
아이, 지가 먼저 바람펴놓고 뭘 울고 앉아있어,
여보세요.
응 딸, 잘 도착했어?
날도 더운데 뭘 왔어. 그냥 쉬라니까.
열무 그거 냉장고 안쪽에다 넣어놔. 너무 익으면 싫다매.
응 그랴. 밥 먹고 얼른 쉬어. 응-.
(뚝)
아직도 울고 자빠졌네. 딴 데 재밌는 거 안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