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님이 갑자기 손목 시계를 선물하셨다.
상황 상 시계를 찰 수 없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선물하신 게 의아하여
결국 여쭈어 볼 수 밖에 없었다.
“주인님, 갑자기 왠 시계에요?”
무릎을 꿇은 채
주인님 다리에 볼을 부비며 묻자,
주인님께서 푸스스 웃으셨다.
“트위터에서 글을 하나 봤어.”
어여삐 쓰다듬는 손길을 느끼며
무슨 글이냐는 듯 올려다보자,
눈을 마주치며 말씀하시길,
“손목 시계를 선물 한다는 게 그 사람 1초의 시간까지 갖겠다는 의미래. 시계를 찰 때 그 아래 지나가는 동맥의 피 한 방울까지 갖겠다는 의미래.”
순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두려운 마음이 피어났다.
“네 시간, 피 한 방울까지 내 것이어야지.”
아, 이 사람의 이 미친듯한 소유욕을
당해낼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반,
이것을 당하는 것이 나라서
행복하다는 마음이 반.
“네, 주인님.”
그의 손아귀 안에
또 한 번 잡힐 수 밖에 없었다.
[1편 — 복종과 자기포기는 다른 이야기]
가끔 BDSM 이야기를 하다 보면
복종과 자기포기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둘은 전혀 다르다.
플레이 중에 누군가의 아래에 있고 싶을 수 있다.
혼나고 싶을 수도 있고,
허락을 받고 싶을 수도 있고,
리드를 받고 싶을 수도 있다.
그건 취향의 영역이다.
문제는 그 취향이
현실의 자기인식까지 바꿔버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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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서브에게 가장 어려운 건
플레이 때의 나와
평상시의 나를
분리하는 일이다.
이론은 쉽다.
플레이 중에는 복종하고,
플레이가 끝나면 현실로 돌아오면 된다.
하지만 인간은 컴퓨터가 아니다.
애정이 생기고,
존경심이 생기고,
신뢰가 생기고,
의존 욕구가 자극되면
플레이 중에 느끼던 감정은
현실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주인님이 저보다 위예요.”
라는 플레이였는데,
어느 순간
“저 사람은 원래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야.”
가 되고,
더 지나면
“내 판단보다 저 사람 판단이 더 맞아.”
가 되고,
더 지나면
“내가 느끼는 게 틀렸을 수도 있어.”
가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복종이 아니라 ‼️의존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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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신뢰라고 부른다.
하지만 신뢰와 자기포기는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
신뢰는
“당신을 믿는다.”
이지만,
자기포기는
“나는 나를 믿지 않는다.”
에 가까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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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리드는
상대가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다기보다는
오히려
“너는 어떻게 생각해?”
“너는 어떻게 느껴?”
를 묻는다.
좋은 돔은
서브가 자기 판단력을 잃어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각할 수 있고,
질문할 수 있고,
동의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과 관계를 만든다.
반대로
질문도,
의심도,
이견도 없이
그냥 믿고 따르기만을 원한다면,
그것은 서브를 원하는 것이라기보다
‼️추종자를 원하는 것에 더 가까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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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건강한 서브는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할 수 있고,
질문할 수 있고,
거절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떠날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스스로 선택해서 무릎 꿇을 때
그것은 자기포기가 아니라
복종이라는 취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