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의 시선은 마법이었다. 소멸되는 것, 이미 쓸모 없어진 것, 죽어버린 것, 잊힐 것, 멈춘 것, 아니 아직 소멸 직전의 것, 쓸모 있고 싶었던, 기어이 살고자 했던 것들에 숨을 불어넣어 행성을 얼굴을 표정을 슬픔을 기쁨을 쓸쓸함을 그리운 것 같은 것들을 되살렸으니 나는 가만히 서서 조선희의 우주에 압도당했다. 그녀의 꼿꼿 선 한 쪽 눈과 질끈 감은 다른 쪽 눈으로 본 세상만사 온갖 것들은 영원히 살아낸다. 영원이다.
지난주 내내 크게 슬펐다. 존경하던 큰 형부와 영영 작별했다. 형부는 국무조정실장을 지내며 대통령 훈장도 두 번이나 받으셨다. 형부의 부고 소식을 듣던 날, 친구와 연희동을 걷고 있었는데 뭐에 홀린 듯 처음 보는 식물가게에 들어갔고, 나는 허기진 사람처럼 허겁지겁 식물들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꽃 핀 자트로바, 황칠, 안스리움, 무몬 등등. 몇 시간 동안 내 새 식구들을 꼼꼼히 식재해 주신 사장님이 내 정원의 대나무가 개화병에 걸렸다는 것도 알려줬다. 속절없이 잘라내고, 올리브나무를 옮겼다.
오늘 비로소 정원에 햇살 쏟아진다. 식물들을 하나하나 꺼내며 국민학교 5학년 때 처음 뵌, 그 쪼끄만 나를 처제라고 처음 불러주신 형부와의 긴긴 이야기들이 초록 이파리 위에 반짝반짝 스쳐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