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식자의 우리〉 제11부: 철창 아래의 코트, 튀어 오르는 열기
"전 사동 주목. 금주 토요일 야외활동 시간을 기해 사동 대항 3대 3 길거리 농구대회를 개최한다. 각 방별 대표 3인은……."
철창 위 낡은 확성기에서 찌직거리는 교도관의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평소라면 콧방귀나 뀌고 넘겼을 소식이었지만, 뒤이어 덧붙여진 '상품' 목록에 3사동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우승 호실 전원에게 주어지는 외부 사제 치킨 세트와 특별 면회권, 그리고 교도관들의 암묵적 묵인 아래 주어지는 최고급 담배 세 보루.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던 수찬의 눈빛이 순식간에 맹수처럼 번뜩였다.
"……사제 치킨에 담배 세 보루라고?"
수찬은 벌떡 일어나 주먹을 우드득 꺾으며 상석의 이현을 바라보았다. 바깥에서 거칠게 몸을 굴리며 뒷골목을 주름잡던 그에게 농구 따위는 규칙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사람을 들이받을 수 있는 격투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몇 달째 흙먼지 맛 나는 꽁초만 씹어���던 감방 안에서 담배 세 보루는 그야말로 권력이자 화폐였다.
"형님! 이거 무조건 우리가 나가야 합니다. 2사동 꼴통 새끼들 코뼈를 아주 박살을 내놓겠습니다."
수찬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콧김을 뿜어냈다.
하지만 3대 3 농구였다. 상석의 이현은 말할 것도 없고, 수찬 자신이 주전을 맡는다면 남은 자리는 단 하나.
수찬의 험악한 시선이 방 안의 다른 두 사람에게로 꽂혔다.
구석에서 무릎을 모으고 앉아 있던 영우는 수찬의 눈빛을 보자마자 질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키는 컸지만 뼈마디가 가늘고 몸싸움이라곤 쥐뿔도 모르는 녀석이었다. 코트에 세웠다간 1분도 안 돼서 갈비뼈가 나가떨어질 게 뻔했다.
결국 남은 것은 단 한 놈.
모포 방석 위에 삐딱하게 누워 손톱을 매만지고 있던 시���였다.
"야, 강시우."
수찬이 시우의 발치를 툭 차며 으르렁거렸다.
"너 바깥에서 농구공 좀 튕겨 봤냐?"
시우는 눈꺼풀을 느릿하게 들어 올리며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
"내가 왜? 땀 뻘뻘 흘리면서 그 더러운 모래 바닥을 왜 굴러. 치킨은 바깥에서 질리도록 처먹고 들어왔는데."
어젯밤 폐창고에서 이현에게 혹독하게 굴려진 탓에, 시우는 온몸의 허리와 골반이 욱신거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상태였다. 그런 시우의 건방진 태도에 수찬의 턱뼈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 새끼가 진짜 도련님 티 내나…… 야, 방 분위기 안 맞추냐? 형님이 나가자고 하시면 대가리 박고 뛰는 거지!"
"누가 나간대?"
그때, 상석에서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던 이현이 낮게 긁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스륵.
이현의 서늘한 흑안이 시우의 풀어헤쳐진 수의 깃 너머, 어젯밤 자신이 거칠게 씹어놓았던 쇄골 언저리의 붉은 멍 자국을 지그시 훑었다.
"시우야."
"……왜요."
시우가 턱을 삐딱하게 치켜들었다.
이현의 입술 끝이 어둠 속에서 위험하고 느릿하게 비틀려 올라갔다.
"뛰어라. 네가 공 뺏어오면, 담배는 수찬이 다 주고…… 다른 걸로 보상해 줄 테니까."
'다른 보상'이라는 말에 시우의 귓불이 불에 덴 듯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오가는 은밀한 눈빛 교환을 알아채지 못한 채, 수찬만이 "좋습니다! 형님, 아주 박살을 내버리죠!"라며 눈치 없이 포효하고 있었다. "야! 패스, 패스하라고! 내 앞으로 찔러!"
교도소 운동장 한편에 마련된 시멘트 바닥 코트 위로 수찬의 쩌렁쩌렁한 고함이 내리꽂혔다.
주장 완장 대신 팔뚝을 걷어붙인 채 앞장선 수찬은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였다. 담배 세 보루와 사제 치킨이라는 명확한 표적 앞에서 수찬의 플레이는 농구가 아니라 불도저의 진격에 가까웠다. 2사동의 험상궂은 거구들이 몸으로 가로막아서도, 수찬은 어깨를 먼저 들이밀며 무식하게 골밑을 짓이기고 리바운드를 낚아챘다.
"으랴앗! 비켜, 이 새끼들아!"
쾅!
수찬이 튕겨 나온 공을 억세게 낚아채 백보드에 내리꽂듯 골을 성공시키자, 철망 너머에서 응원하던 3사동 재소자들의 거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벤치 한구석에서 물병을 쥐고 가슴을 졸이며 지켜보던 영우도 두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몸으로 들이받는 수찬의 파워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토너먼트가 거듭될수록 다른 방 녀석들도 눈에 불을 켜고 거친 파울을 남발해왔다.
승부의 숨통을 끊어놓은 것은 뜻밖에도 시우였다.
탁, 타닥.
"……하, 존나게 거칠게 노네."
시우는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은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비스듬히 입���리를 올렸다. 귀찮다며 툴툴거리던 도련님은 온데간데없었다. 강남 고급 사설 클럽과 유학 시절 익혀둔 농구 실력이 거친 아스팔트 코트 위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포식자의 우리〉 제10부: 낯선 가시, 길들여지지 않은 도련님
스륵, 착.
젖은 수건을 바닥에 내던진 시우는 세 사람의 시선이 꽂히는 와중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바닥에 놓인 하복 수의를 집어 들었다.
거친 먹물로 뒤덮인 나신 위로 뻣뻣한 원단의 청색 수의가 한 겹 덮였다. 단추를 대충 목 밑까지 채워 넣고 바지춤을 끌어올렸지만, 바깥에서 갓 굴러떨어진 도련님의 몸짓에는 어딘가 어색하고 팽팽한 신경질이 묻어 있었다.
옷을 다 챙겨 입은 시우는 방구석에 얌전히 자리를 잡고 앉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앉지 못��고 있었다.
차갑고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 그리고 곰팡내와 퀴퀴한 땀내가 배어 있는 얇은 모포 쪼가리. 바깥세상에서 최고급 가죽 소파와 실크 침구 위에서만 엉덩이를 붙여왔을 스물한 살 재벌가 막내 도련님에게, 이 삭막한 감방의 바닥은 맨살이 닿기조차 끔찍한 오물통이나 다름없었다.
시우는 좁은 방 한구석을 초조한 듯 느릿하게 서성였다.
벽에 등을 기대지도,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지도 못한 채, 삐딱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세 사내를 힐끔거리며 발끝만 까딱거리는 꼴.
그 꼴을 문턱 앞에서 팔짱을 낀 채 지켜보던 수찬의 눈썹이 험악하게 치켜 올라갔다.
"저 새끼 저거 봐라. 군기 빠져서 엉덩이 붙일 생각도 안 하고 똥 마려운 개마냥 서성거리는 꼬라지 하고는."
수찬이 으르렁거리며 한 걸음 발을 떼려던 찰나,
상석으로 성큼 걸어가 자리를 잡고 앉은 이��의 나직한 음성이 방 안의 공기를 갈랐다.
스륵.
이현은 벽에 등을 기댄 채 단추가 풀린 셔츠 앞섶 사이로 서늘한 흑안(黑��)을 들어 올렸다. 초조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딱딱한 바닥을 경계하는 시우의 앳되고 오만한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던 이현의 입술 끝이 피식 비틀렸다.
"수찬아."
"예, 형님."
이현은 턱짓으로 방구석에 개켜져 있던 여분의 모포 더미를 가리키며 무심하게 내뱉었다.
"쟤 방석 찾는다. 아무거나 푹신하게 해서 줘라."
"……예?"
수찬은 제 귀를 의심하듯 멍하니 이현을 쳐다보았다.
새로 들어온 흉악범 신입의 대가리를 깨부숴 군기를 잡아도 모자랄 판에, 바닥이 딱딱해 앉지도 못하는 풋내기 도련님에게 '푹신한 방석'을 만들어주라는 상석의 명령.
그 황당한 지시에 수찬의 턱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하, 씨발."
수찬은 기가 찬다는 듯 헛숨을 뱉어냈지만, 이현의 명령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는 씩씩거리며 구석에 개켜져 있던 낡은 모포 두 장을 거칠게 낚아채더니, 반으로 턱턱 접어 두툼하게 겹쳐 시우의 발치 앞으로 툭 던졌다.
퍽.
먼지가 살짝 피어오르는 모포 방석.
그제야 시우의 굳어 있던 미간�� 조금 풀렸다. 시우는 당연하다는 듯 턱을 치켜든 채, 두툼하게 깔린 모포 위에 엉덩이를 얹고 무릎을 굽혀 자리를 잡았다. 바닥의 거친 한기가 차단되자, 잔뜩 긴장해 곤두서 있던 어깨가 한결 나른하게 내려앉았다.
방 안에는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화장실 구석에 웅크린 영우는 숨소리조차 죽이고 있었고, 수찬은 팔짱을 낀 채 이 꼴값 떠는 도련님을 당장이라도 찢어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시우의 시선은 오직 한 사람, 방의 가장 깊숙한 상석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이현에게 가닿아 있었다.
스륵.
시우가 비스듬히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현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날카로운 콧날, 서늘하게 굳은 턱선, 그리고 어둠 속에서 빛을 뿜어내는 칠흑빛 검은 눈동자.
처음 문이 열렸을 때부터 느꼈던 이질적인 기시감.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눈빛이었다.
�� 오만하고 서늘한 분위기, 사람을 먹잇감 취급하며 단숨에 숨통을 틀어쥐던 지독한 압도감.
시우의 붉은 입술 끝이 서서히 말려 올라가며, 낮고 나직한 ���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시우의 삐딱한 음성이 좁은 감방을 울렸다.
"형, 진짜 서이현 맞네?"
그 부름에 상석의 이현이 미간을 아주 미세하게 좁혔다.
시우는 두 팔로 무릎을 감싸 쥔 채, 마치 비밀스러운 옛이야기를 꺼내듯 나른하게 혀를 찼다. "기억 안 나요? 5년 전인가. 강남 사설 독서실 1인실."
"……."
"여름방학 내내 밤샘 공부한답시고 문 꽁꽁 잠가놓고…… 그 좁아터진 책상 밑에서 교복 다 벗어 던지고, 땀범벅 된 채로 나체로 뒹굴었던 거."
시우의 눈꼬리가 뱀처럼 가늘어졌다.
"그때 형이 내 허리 부러질 때까지 박아놓고는, 시험 끝나니까 입 싹 닦고 잠수탔잖아. 명문대 간다더니…… 꼴이 왜 그래? 이런 시궁창 교도소 상석에 쳐박혀 있을 줄은 몰랐는데."
〈포식자의 우리〉 제9부: 배덕의 잔열, 타락의 씨앗
솨아아아-.
창살 밖에서는 여전히 끊이지 않는 장맛비 소리가 청송의 어둠을 짙게 물들이고 있었다.
사동 복도의 비상등 불빛마저 잦아든 깊은 심야. 천장의 낡은 선풍기만이 미지근하고 습한 공기를 헛돌리며 끼익거리는 소리를 토해냈다.
방의 상석에는 나신의 이현이 한쪽 팔을 괴고 깊은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었고, 그 발치 곁에는 지쳐 곯아떨어진 수찬이 엎드린 채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영우의 여린 육체를 무자비하게 유린하고 삼켜버렸던 두 마리의 포식자는 만족스러운 포식을 끝낸 맹수들처럼 고요했다.
하지만 방 한구석 화장실 문턱 옆.
모포를 돌돌 말고 누워 있던 스무 살 이영우의 눈동자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듯 쿵쾅거렸다.
두 눈을 감으면 어제와 오늘의 기억들이 끊이지 않는 파도처럼 뇌수를 덮쳤다.
살갗이 찢길 듯 차가웠던 지하수 물줄기 아래서 제 마른 등뼈와 허리를 쓸어내리던 이현의 거품 묻은 커다란 손길. 그리고 어둠 속에서 짐승처럼 엉켜 있던 두 남자의 노골적인 살냄새.
'너 정말 키스 잘하게 생겼어.'
이현의 낮게 긁히는 목소리와 함께 입안을 가르고 들어오던 젖고 뜨거운 ��, 그리고 쇄골을 짓씹으며 귓가에 쏟아내던 수찬의 거친 숨결.
'젖은 거야?'
"���…… 읏……."
영우의 입술 사이로 참지 못한 메마른 헛숨이 새어 나왔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사내들과의 난폭하고 농밀한 교접.
이성은 분명 그것이 더럽고 끔찍한 폭력이라며 비명을 질렀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영우의 여린 몸은 그 잔인한 쾌락의 파편을 소름 끼치도록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스륵…….
모포 안쪽으로 영우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미끄러져 들어갔다.
얇은 하복 수의 바지춤을 내리자, 이미 터질 듯 팽팽하게 솟아오른 앳된 중심부가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낮에 이현의 커다란 손아귀에 쥐어짜이고 수찬의 혀에 농락당했던 바로 그곳이었다.
영우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 기둥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질척, 스걱…….
어젯밤 이현이 제 바지 속에 손을 넣었다 뺐을 때 번들거리던 그 ��적한 체액의 감각.
영우는 제 손바닥을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느껴지던 이현의 서늘한 체온과, 제 가슴의 붉은 ��기를 이끝으로 잘근거리던 수찬의 젖은 타액을 상상할 때마다 아랫배가 끊어질 듯 찌릿한 전율이 척추를 타고 내달렸다.
"흐, 읏…… 하아……."
혹여나 잠든 두 맹수가 깰까 봐 영우는 모포 자락을 입에 틀어막은 채 필사적으로 신음을 삼켰다.
손놀림은 점점 더 거칠고 가빠졌다.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 자신을 꿰뚫어 보던 이현의 완벽한 흑안(黑眼)과 사냥감을 내려다보듯 오만했던 그 붉은 입술만이 가득 차올랐다.
츠읍, 흣…….
눈가에 생리적인 눈물이 핑 돌며 턱 끝을 타고 흘러내렸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흉악범들의 감방 구석에서 그들이 남긴 냄새를 곱씹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이 짓거리가 얼마나 비참하고 배덕한 타락인지 알면서도,
이미 쾌락의 늪에 빠져버린 영우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좁은 감방 안, 두 남자의 고요한 숨소리 ��이로 스무 살 신입의 은밀하고 축축한 자위 소리가 빗소리에 묻혀 가쁜 열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스륵.
상석의 어둠 속에서, 미동도 없이 누워 있던 이현의 눈꺼풀이 소리 없이 들어 올려졌다.
비상등의 희미한 푸른빛 아래 드러난, 심연보다 깊은 칠흑빛 흑안(黑眼).
포식자의 감각은 잠결 속에서도 사소한 공기의 떨림과 축축한 숨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장맛비 소리에 묻혀 가늘게 떨려오는 밭은 날숨, 모포 자락이 살갗을 마찰하는 은밀하고 질척한 소리.
이현의 시선이 화장실 문턱 쪽, 잔뜩 웅크린 채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는 영우의 뒷모습으로 천천히 가닿았다.
어둠 속에서 이현의 입술 끝이 보일 듯 말 듯 나직하게 비틀렸다. 스스스…….
이현은 곯아떨어진 수찬의 몸을 가볍게 넘어, 소리 없는 그림자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을 밟는 발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 땀으로 다져진 단단한 나신이 눅눅한 공기를 가르며 구석을 향해 서서히 다가갔다.
영우는 제 손끝에 차오르는 열기에 정���이 팔려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모포를 이로 악문 채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절정을 향해 손놀림을 몰아붙이던 바로 그 순간,
스륵.
영우의 등 뒤로, 묵직하고 서늘한 체온이 빈틈없이 밀착되어 왔다.
"……!"
영우의 숨이 턱 끝에서 얼어붙었다.
뒤통수와 목덜미를 덮쳐오는 짙은 살냄새, 그리고 자신의 척추선을 따라 단단하게 맞닿아 오는 사내의 넓은 가슴패기.
너무도 익숙하고 소름 끼치도록 위압적인 그 존재감에 영우의 손이 허공에서 굳어버렸다.
〈포식자의 우리〉 제8부: 남겨진 늑대들, 끓어오르는 열기
쏴아아아-.
창살 너머의 어둠을 찢으며 여름의 첫 장대비가 청송의 콘크리트 외벽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비였다.
한낮의 달아오른 열기가 식지 못한 채 좁은 사동 안으로 밀려들어, 공기는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눅눅하고 후텁지근했다. 천장에 매달린 녹슨 선풍기가 삐걱거리는 비명을 지르며 더운 바람을 게워내고 있었지만, 방 안을 무겁게 짓누르는 끈적한 습기를 걷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3사동 2호실.
그 북적이던 방 안에는 이제 기묘할 만큼 휑한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겨울의 끝자락에 만기 출소로 교도소 정문을 걸어 나갔던 정민에 이어, 오늘 오전, 늘 구석에서 눈치를 보며 잔심부름을 도맡던 한태이마저 잔여 형기를 모두 마치고 출소했다.
영치품 보따리를 품에 안고 나가며, 태이는 차마 상석 쪽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몇 번이나 허리를 굽혀 절을 올렸었다.
'형님…… 몸 성히 계십시오.'
그렇게 하나둘씩 제 발로 철창 바깥의 세상으로 사라져 갔다.
남겨진 자리는 시멘트 바닥에 휑한 얼룩처럼 차갑게 비어 있었고, 눅눅한 빗소리만이 그 빈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상석 벽면에 등을 기댄 채 앉아 있는 이현은 얇은 하복 수의의 단추를 가슴팍까지 풀어헤치고 있었다.
가슴에 새겨진 무기수의 푸른 명찰 위로,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이 쇄골을 지나 탄탄한 가슴패기로 미끄러져 내렸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완벽한 칠흑빛 검은 눈동자(黑眼).
시력을 완전히 회복한 그 서늘한 시선은, 창살을 때리는 빗줄기를 나른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나른함의 이면에는, 언제든 목덜미를 낚아챌 준비가 된 맹수 특유의 잔혹한 정적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방의 반대편 구석.
푸른 수의 상의를 아예 벗어 던진 채, 땀에 젖은 탄탄한 등판을 벽에 기대고 앉아 있는 김수찬.
뚝, 뚝.
수찬의 젖은 앞머리칼 사이로 떨어진 땀방울이 턱 끝을 타고 쇄골로 떨어졌다.
정민도 떠나고, 태이마저 나간 좁은 감방.
��제 이 밀폐된 우리 안에 남은 것은, 자신을 처절하게 짓밟고 굴복시켰던 최상위 포식자 서이현과, 그 지배의 낙인 아래서 숨죽여 온 자신뿐이었다.
장대비 소리가 모든 바깥의 소음을 삼켜버린 눅눅하고 더운 여름밤.
수찬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어둠 속에서 푸른 명찰을 달고 홀로 군림하고 있는 이현의 서늘한 옆얼굴을 타는 듯한 시선으로 응시하기 시작했다.
피할 곳도, 끼어들 틈도 없는 두 맹수만의 밤이 빗소리 속에서 서서히 끓어오르고 있었다. 철벅, 철벅.
복도를 울리는 당직 교도관의 무거운 군화 소리가 3사동 2호실의 철창 배식구 앞에서 아주 잠깐 멎었다.
배식구 틈새로 손전등의 날카로운 백색 불빛이 들이쳤다. 그러나 불빛은 방 안 전체를 샅샅이 훑지 못하고, 바닥에 엉킨 두 개의 나신을 스치자마자 황급히 허공으로 비껴 올라갔다.
눅눅한 빗소리 사이로 새어 나오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거친 날숨과 끈적한 살갗의 마찰음.
바닥에 깔린 얇은 모포 위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김수찬의 탄탄한 등허리가 활처럼 휘어져 있었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맨살 위로 이현의 묵직한 손아귀가 수찬의 목덜미를 사정없이 틀어쥐고 있었고, 칠흑빛 검은 눈동자는 어둠 속에���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그 굴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 읏…… 형, 님……."
고통과 쾌락이 뒤섞여 짓이겨진 수찬의 신음이 벽면을 긁었다.
배식구 너머로 그 광경을 목격한 교도관은 침을 꿀꺽 삼키며 굳어버렸다.
과거라면 당장 호루라기를 불고 철���을 걷어차며 징벌방으로 끌고 갔을 사안이었다.
하지만 지금 3사동 2호실의 상석에 앉아 있는 사내는 단순한 모범수가 아니었다. 사형수의 탈옥 누명을 벗고 '무기수'라는 이름의 새로운 목줄을 찬 채, 교도소장의 밀실과 윗선의 비호 아래 다시금 바닥의 절대 권력자로 낙점된 괴물 서이현. 소장의 특별 지침은 명확했다.
'3사동 2호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피바람이 불어 사람이 뒈져 나가지 않는 이상 어떤 잡음도 만들지 말고 그냥 넘겨.'
교도관은 손전등의 스위치를 조용히 딸깍 껐다.
〈포식자의 우리〉 제7부: 늑대의 무덤, 새어 나간 피
교도소의 담벼락은 높았지만, 은밀한 속삭임을 가두기엔 턱없이 얇았다.
대민 지원을 나갔던 논두렁 배수로에서 피어오른 불씨는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사동 전체로 번져나갔다.
'0721 서이현이 진짜 연쇄 살인마가 아니다.' '모 기업 장남의 엽기적인 연쇄 살인을 덮어주는 대가로 막대한 거액과 특수 각막 수술, 감형 후 출소를 약속받고 들어온 대타다.' '그 투명하고 섬뜩한 호박빛 눈동자는 살인귀의 낙인이 아니라,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시한부의 증거다.'
2사동 경제사범 방의 전직 대기업 비서실 영감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식판을 타고, 세탁 공장과 목공장을 거쳐 순식���에 교도소 밑바닥을 집어삼켰다. 죄수들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절대적인 공포로 군림하던 교도소의 최상위 포식자가 실은 윗선에 버림받고 시력을 잃어가는 가련한 미끼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억눌려 있던 바닥의 살기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야, 저 눈깔 봐라. 진짜 점점 안 보이는 거 아니냐?"
복도를 지나가는 이현의 등 뒤로 웅성거림이 달라붙었다.
하지만 이현은 미동조차 없었다. 푸른 수의의 단추를 목 끝까지 단정하게 채운 채, 나른하고 서늘한 보폭으로 복도를 가로지를 뿐이었다. 그저 귓가를 스치는 쥐새끼들의 숨소리를 모조리 꿰뚫어 보듯, 스산하게 번뜩이는 호박빛 눈동자만이 더욱 짙은 어둠을 머금고 있었다.
같은 시각,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탁.
두꺼운 비닐 서류철이 차가운 철제 데스크 위로 내던져졌다.
표지에 찍힌 붉은색 활자, [사건번호 2024-고합-0721: 동성 연인 및 연쇄 엽기 살인 피의자 서이현].
책상 앞에 선 중견 검사 강혁의 얼굴이 흉흉���게 일그러져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냄새냐?"
맞은편에 선 수사관이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낮게 보고를 올렸다.
"청송 쪽에 수감된 0721 관련해서 흉흉한 첩보가 올라왔습니다. 당시 사건을 조작하고 대타를 꽂아 넣은 배후로 지목된 게…… 성진그룹 비서실 쪽 라인입니다."
"성진그룹?"
강혁의 눈썹이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2년 전, 현장을 샅샅이 뒤지며 피의자 서이현을 직접 취조했던 건 강혁 자신이었다.
밀실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동성 연인과 연쇄적으로 발생했던 엽기적인 살인 사건들. 당시 서이현은 연인을 제 손으로 난도질했다며 모든 범행 동기와 살해 수법, 시신 유기 장소를 자백했고 현장 검증에서도 한 치의 오차 없이 움직였다.
그 서늘할 만큼 완벽하고 덤덤한 자백이었기에, 오히려 오랜 찜찜함을 남겼던 그 괴물.
취조실 백열등 아래서 ���늘하게 자신을 응시하던 그 기괴한 호박빛 눈동자가 강혁의 뇌리를 스쳤다.
'수사 종결 직후, 윗선에서 지나치게 서둘러 사형을 구형하고 사건을 덮으려 했던 정황이 맞아떨어집니다.'
수사관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비서실에서 자금을 빼돌리다 횡령으로 들어간 놈 하나가 안에서 입을 놀리기 시작했답니다. 서이현은 진범이 아니라, 성진그룹 후계자의 은밀한 성벽과 연쇄 살인을 통째로 뒤집어쓴 '대리인'이었다고."
강혁의 주먹이 서류철을 부서져라 쥐어틀었다.
자신이 정의의 이름으로 법정에 세워 사형을 확정 지었던 그 잔혹한 살인귀가, 실은 대한민국 최고 재벌가의 추악한 피와 뒤틀린 관계를 가려주기 위해 팔려 온 가짜 괴물이었다고?
"……재수사 착수 준비해."
강혁의 입술 사이로 서늘한 쇳소리가 새어 나왔다.
"비공식으로 움직인다. 당장 내일 첫 접견 잡고 교도소로 내려간다. 그 눈깔 괴물 새끼 면상…… 다시 한번 똑바로 뜯어봐야겠어." 끼이익- 철컥.
특별 면담실의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양손에 수갑을 찬 이현이 교도관들의 삼엄한 경호 속에 걸어 들어왔다.
푸른 수의의 단추를 목 끝까지 단정하게 채운 채, 가슴팍에 선명하게 박힌 붉은 명찰 '0721'.
철제 의자에 앉아 초조하게 서류를 ���기던 검사 강혁은 문이 열리는 순간 고개를 들었다. 2년 전,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던 그날 이후 처음 마주하는 얼굴이었다.
독방의 냉기와 교도소의 피비린내를 온몸에 두른 채 걸어 들어오는 이현의 걸음걸이에는 일말의 위축감도 없었다. 나른하게 내리깐 시선, 그리고 형광등 불빛 아래 서늘하게 번뜩이는 저 기괴하고 투명한 호박빛 눈동자.
"앉아."
강혁의 낮게 긁히는 목소리에도 이현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맞은편 의자에 털썩 몸을 묻었다.
짤그랑.
쇠사슬 부딪치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이현은 턱을 괴듯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이며 강혁을 빤히 응시했다. 마치 사냥감을 관찰하는 맹수처럼 나른하고 권태로운 시선이었다.
"2년 만이군, 서이현."
"……."
"여전히 말이 없어. 밖에서 네 연인을 제 손으로 난도질하고 동성 애인들을 연쇄 도륙했다며 ��백서를 쓸 때도 딱 그 눈빛이었지."
강혁이 테이블 위에 두꺼운 서류철 하나를 거칠게 내던졌다.
หนุ่มตี๋���ักกีฬา @BiManHiTopp สูงใหญ่ยาว อยากหัดรับ มาถูกที่ละครับ เดี๋ยวช่วยฝึกให้ แต่ต้องโดนแตกในน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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