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님과의 첫 만남]
김도헌.
30대 중반의 직장인이라고 했다.
이번이 세 번째다.
여전히 말끔히 차려입은 채
나를 마주하고 있다.
왜인지, 정장 입은 남자는 섹시하다.
여의도 앞에 가면 정장 입은 남자들이
줄지은 빌딩 앞에서 타성에 젖은 눈빛으로 담배 피우는 모습을 심심찮게 본다.
저 남자도 그런 무리 중 하나겠지 싶은 생각이 스치며 긴장감을 떨쳐보려 하나, 어딘가 다르다.
그와의 첫 만남.
광화문 청계천 근처에서 그 남자를 기다렸다.
"조금 늦었네요. 미안해요."
어두운 색감의 코트와 정장을 입은 남자가 다소 빠른 걸음으로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왔다.
‘음. 반반하네.’
외모는 깔끔했고 어깨는 벌어져 있었다.
신고 온 구두까지도 해진 데 없이 멀끔했다.
아홉 살 차이라기엔 외형상 많이 져 보이지도 않았다.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대화가 이어졌고, 그 후 연락은 드문드문 이어졌다.
두 번째 본 날.
한 레스토랑에 일찌감치 자리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명 아래 그는 첫 번째 보았던 느낌과는 다른 아우라였다.
‘저 남자가 원래 저런 무게감이었나.’
머리스타일이 조금 달라져서일까.
왠지 설렜다.
첫날 봤을 때보다 더 지적여 보였고 조금은 성숙해 보였다.
나는 그럴수록 왜인지 그 앞에서 더 조신해졌다.
"디엣이 처음이랬죠."
"네."
"이전에 남자랑 동거한 적 있어요?"
"아니요…"
"그럼 몸에 타투나 상처는요?"
"아니요. 상처는 전에 오토바이에 치였어서 데인 자국이 살짝요."
"그래요. 아팠겠네요."
그리고 오늘이 세 번째.
역시 두 번째 만났을 때의 내 느낌이 맞았나 보다.
그는 여전히 젠틀하고도 무게감 있는 이미지가 맞았다.
"나랑 디엣 할 생각 있어요?"
차분한 듯 미적대지 않았지만 직접적이었다.
나는 조심히 대답했다.
"네…"
그리고 덧붙였다.
"대신, 저 말고 다른 여자관계는 없으셨으면 해요."
긴장됐다. 그는 뭐라고 대답할까.
"그래요."
픽 웃음이 새는 느낌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내가 시키는 걸 2주 동안 하세요.
이제부터는 내 허락 없이 연락하지 마요."
그 말과 함께 헤어지면서 건네준 명함이 손에 쥐어졌다.
다음번 만날 땐 검사지를 주고받자는 말을 끝으로 헤어졌다.
직장인이라고만 밝혔던 그는 전문직 종사자였다.
.
.
‘○○법률사무소 김도헌 변호사.’
.
.
명함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먼저 허락 없이 연락하지 말라니…
‘유부남은 아니겠지?’
‘나 말고 애인이 있는 건 아닐까.’
훤칠한 외모의 전문직.
도미넌트 성향자.
이럴수록 함정이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스멀 올라왔다.
포털 사이트를 켜서 검색해봤다.
출신 대학, 몇 회의 사법시험 합격자인지까지 떴다.
그 얼굴이 맞았다.
적어도 신원만큼은 분명한 사람이었다.
어느새 문자가 울렸고,
내가 2주간 수행할 과제들이 올라왔다.
꽤나 내용은 디테일했지만, 더 놀라운 건 하나도 성적 요소가 없었다.
다만 귀찮은 것들.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수행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중 하나는 ‘매일 자기 전 하루를 반성문으로 쓰기.’
속으로 생각했다.
‘똑똑한 변태들은 좀 다른가.’
일종의 성실성 테스트였다.
그렇게 나는 2주간 미션들을 수행하며 정해진 시간에 보고했다.
중간중간 일 때문에 피곤해서 뒤로 제쳐두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머릿속에선 내가 본 그의 차분한 낯빛과 이지적인 눈빛이 어른거렸고,
그럴수록 뭔가 모르는 강한 이끌림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는 바빴다.
세 번째 만남을 가질 때까지 드물게 이어지던 시시콜콜한 일상 대화는 언제 그랬냐는 듯 쏙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서열이 있는 짧은 피드백만이 자리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왠지 모르게 짜릿하고 쫄깃하게 내 가슴을 두드렸다.
"지아 씨는 인내심이 있네요."
"잘했네요. 일하면서 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가끔 어긋날 때면 던져진 꾸짖음.
"똑바로 안 해."
…단정한 존댓말 사이에 단호하게 섞이는 차가운 반말은 내 심장을 한 바퀴 뒤집어놓듯 요동치게 하고,
흠칫하게 했다.
"그럼 그날 봐요."
그렇게 나는 그를 안 지 한 달 남짓.
남산타워 앞 한 호텔 객실에서, 나는 벌거벗은 채 서 있었고 그는 내 주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