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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20대 초반에 한창 방황하고 있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이 환희의 송가였다.
그냥 좋아서 들었을 뿐, 가사는 알지 못했는데, 해당 음악의 합창이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라는 것을 안 것은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을때였다.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 나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인류애, 형재애를 노래하는 음악이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20대의 나는 꽤 꽉막힌 사람이었기에, 인류애니 형재애니 하는 것들을 지루하고 고루한 것이라 생각하곤 했다.)
아마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던 나는 무의식 가운데서 이 시의 의미를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베토벤이 이 시를 읽고 느낀 자신의 감동을 완벽하게 음율로 구현해냈던 것또한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어쨌건 나의 영혼이 이 음악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의 이타심은 아마 이 음악 덕분이지 않을까.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나라는 인간의 성격을 이룬 것은, 나라는 존재의 삶의 방향과 목적을 정해준 것은 그동안 내가 소비한 수많은 컨텐츠에 있다고 생각한다.
앞선 이들이 컨텐츠로서 남겨 놓은 삶의 편린이 아직 성숙하지 못했던 나의 영혼을 풍성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나는 정말 큰 행운아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살아갈 수 있음에, 언제든지 들을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음에.
후대에게 이 행운을 온전히 넘겨줄 수 있도록, 나 또한 최선을 다해야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투덜거릴 시간이 없네?
부디 내게 부처님의 자비가 함께하길.
세상에는 정말 내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AI가 성장하며 계급의 해체가 예상되는 가운데, 능력과 노력에 대한 신뢰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이 가운데서 내가 이야기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가치가 변화하고 기존의 미덕과 기준이 뒤집히는 가운데서 작가는 무엇을 써야 하는가.
나는 지금 웹소설계에 만연한 한탕주의 결과주의가 싫다.
순간의 쾌락을 전해주는 작품보다 내 성찰을 담아내는 작품이 더욱 가치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고 있다.
지금의 젊은 세대, 그리고 미래의 핵심 세대가 맞이해야할 가치관의 혼란과 혼돈으로 가득한 세상을 떠올리자면 순간의 쾌락으로 그들을 마취시켜 조금이라도 연명시키는 것이 이야기꾼으로서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누군가 이야기했던 세속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이란 이야기는 이러한 고민을 거쳐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앞으로 내가 써야하는 글은 내 의지로 쓰는 글이 아닐 터이다.
부디 내 글이 나를 통해 그 뜻을 설파하려는 부처님의 자비이길 바란다.
조금씩이지만 마음을 비우게 된다.
무언가 굉장히 열심히하는 사람에게 누군가 이야기했다.
"너 열심히하는 건 좋은데, 그래서는 아무 쓸모없어요."
무언가를 굉장히 열심히 한 친구가 말했다.
"그래도 누군가는 절 알아줄거에요. 언젠가 세상이 인정해줄 거에요."
멋진 이야기였다.
자신의 노력이 언젠가 보답받을 거란 믿음으로 무언가에 매진하는 행위는.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친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누가 왜 널 알아줘야 하는데? 세상이 왜 널 인정해줘야 하는데?"
열심히 하던 친구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대답하긴 했는데, 딱히 설득력있는 대답은 아니었다.
이 이야기는 내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정말로 세상이, 사람들이 자신의 노력과 그 결과물을 인정해줄까?
고희의 그림은 그의 사후 유명해졌지만, 그조차 그의 처제인 요안나 덕분이었다.
과연 요안나가 고흐의 그림과 드로잉, 편지, 각종 문서들을 가지고 대규모 기획전을 펼치지 않았더라면?
기획전 이전에, 그녀가 그 그림들을 골동품으로 팔아버렸더라면? 태워버렸더라면?
연돈은 어떠한가.
구석진 가게의 돈가스 집이 골목식당에 출현하지 않았더라면?
백종원에게 저평가 받았더라면?
자신만 잘하면, 실력이 뛰어나면 인정받을 거라는 소리는 나는 인간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인간은 좋은 것을 판단할 능력이 없다.
그런 것을 판단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지극히 소수며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전문가라고 부른다.
좋은 작품, 좋은 결과물은 기본이다.
여기에 홍보와 마케팅, 그러니까 대중에게 알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이 있어야만 창작자는 인정을 받을 수 있으며, 대중은 뛰어난 창작물로부터 제 삶을 풍요롭게 만들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정보의 홍수의 시대에서
돈을 위한 마케팅이 아닌, 뛰어난 가치를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마케팅이 필요하다.
우리는 신뢰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글을 읽다보면 작가의 습관이나 패턴이 보일때가 있다.
늘여쓰기를 즐겨하는 작가는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에 수만가지 부사와 형용사를 붙이거나, 다른 문장을 포함한 복문을 사용한다.
비유를 즐겨 쓰는 작가는, 매 순간 순간 오감을 자극하는 표현들로 가득하다.
짧은 문장에 가독성이 생긴다 생각하는 작가는, 모든 형용사와 부사를 제거한 채 초단문으로 치고 나간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작가면 능히 자신의 문장 패턴과 전개 패턴, 기본적인 성향을 파악하고 그러한 틀 속에서 계속해 변주를 주고자 고민해야 한다.
이야기에서 반복은 지루함일 뿐이며, 그것은 문장과 표현을 떠나 전개와 캐릭터에도 마찬가지다.
좋은 글을 쓰고자 한다면, 제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하며 매너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즉, 메타인지가 중요하다.
작가란 수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를 뽑으라고 한다면 난 서멋싯 몸과 톨스토이를 뽑는다.
톨스토이는 질풍노도의 시기에서 내게 올바른 방향을 알려주고 위로해준 작가였다.
서멋싯 몸은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가야할 지혜를 전해준 작가였고.
비록 두 사람은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흙이 되어 사라졌지만, 두 사람의 정신은 작품이 되어 후세에 까지 전해졌다.
불멸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의지를 작품에 담아 후세에 전달하는 것.
그 의지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희망이되는 그런 것.
톨스토이와 서멋싯 몸의 정신은 작품이라는 편린으로서 후대에 전해졌다.
그들의 정신을 이제 나를 통해 다음 세대에 전해질 것이다.
나의 역할은 그들의 정신, 더 나아가 내게 영향을 준 수많은 이들의 의지와 정신을 추려내고 가공하여 후대에 넘기는 일이다.
그것이 창작자의 정의이며 작가의 사명이라 나는 믿는다.
최선을 다해 글을 쓰자.
웹소설이라는 한계에 안주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도록 하자.
사람마다 발현되는 욕망이 다 다르다.
누군가는 물욕이 더 강하고, 누군가는 성욕이 더 강하고, 누군가는 명예욕이 강하다.
저마다 다를 뿐이지 모두가 재각기 다른 욕망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나는 다른 욕망보다도 인정욕이 유독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자신의 우수함에 대해 인정받기 위해 다양한 일을 해왔지만, 결국 택한 것은 글이었다.
웹소설 쓰기.
다양한 현실적인 조건 아래에서 선택한 길이고, 내가 내 소명을 찾았음에 감사했지만, 막상 내 길이 되고 나니 인정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 인정욕 때문에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겠지만, 결국 내가 진정한 의미의 내 글을 쓰기 위해선 이 인정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번뇌라는 단어가 왜 생겼는지 조금 이지만 알 것 같다.
하루에도 수백번 인정욕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니.
내려놓음의 미덕을 배울때가 된 것 같다.
이번 문피아 공모전 논란도 그렇고, 출판업계 사재기 사건도 그렇고.
작가와 출판사들이 '밴드웨건 효과'로 얼마나 꿀을 빨았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요즘 작가들끼리 모이면 '뜰글뜰'이 사라진 지 오래라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가장 큰 이유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의 공정한 경쟁 시스템을 왜곡시키는 행위다.
당장 연재하고 있는 작품 몇 개만 봐도 어떻게든 작품의 체급을 키우려고 댓글 작업을 하는 걸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더 안타까운 건 댓글 작업이 된 작품을 인기작인 줄 알고 독자들이 찾아본다는 거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댓글이 많으니까 분명 재미있겠지?' 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독자들을 불러모은다고 별로인 글이 좋은 글이 되는 것도 아닌데…….
다들 공정하게 경쟁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업계가 살아나니까.
제발 내 미래를 남겨줘…….
<밴드웨건 효과>
대중적으로 유행하는 정보나 다른 사람들의 선택에 편승하여 소비나 의사결정을 내리는 현상.
다른 사람들의 수요나 행동이 자신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네트워크 효과의 일종으로, '편승 효과' 또는 '악대차 현상'이라고도 한다.
작법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삼다(다독, 다작, 다상) 중 앞선 다독과 다작이 선행되어 있다면 다상을 위한 도구로서 작법보다 도움이되는 것은 없다.
특히 요즘 같이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는 작법을 모르는 신인은 데뷔하기가 정말정말 힘들다.
순전히 감에 의지해 집필해야하는데, 그렇게 감에 의지해 200화까지 무너지지 않고 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디 우리 모두 공부를 하자.
시중에 작법서 책 많잖아?
로버트 맥키의 <시나리오 어떻게 쓰는가>를 가장 추천한다.
https://t.co/ZPhGt9mGRv
웹소설, 웹툰에도 만연한 방식의 마케팅인데 이제 슬슬 잡으려나.
동료 작가도, 경쟁하는 다른 출판사도 먹고살기 팍팍해지니 이제 눈 가리고 아웅해 줄 수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댓작 해주고, 계정 여러 개 만들어서 조회수 올려주고, 구매 수 올려주고.
그래봤자 나쁜 글이 좋은 글이 되는 게 아닌데, 돈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업계 자생력과 경쟁력만 떨어뜨릴 뿐인데.
지금의 출판 업계, 웹소, 웹툰판이 왜 이 모양이 되었는지 이제는 깨달을 때가 되었다.
이런 건 플랫폼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주었으면 좋을 것 같다.
더 좋은 작품, 가능성 있는 신인들이 빛을 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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