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은 연봉 협상을 안 한다.
정확히는, 파일럿그룹 대신 노조가 싸워준다.
ALPA (Air Line Pilots Association). 캐나다 국적기 항공사의 노조다. 3-4년마다 한번씩 회사 상대로 판을 바꾼다. 그 싸움이 올해 가을에 또 시작된다.
그 결과물이 CBA (Collective Bargaining Agreement), 집단협약이다. 입사 첫날부터 12년 뒤 연봉까지 전부 여기 적혀 있다. 공개된 숫자다. 회사 분위기가 서로 눈치 볼 필요가 없다.
근데 재밌는게 있다.
정해져 있는데, 순서가 와야만 고를 수 있다.
Seniority, 쉽게 말해 짬이 받쳐줘야 한다. 나보다 먼저 들어온 파일럿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으면 내 차례는 뒤로 밀린다. 빨리 올라가고 싶어도 줄을 서야 한다. 이게 항공사 구조다. 비행기 기종부터, 스케줄/목적지, 그리고 기장 승진까지; 위에서 먼저 가져간다. 현재 데이터 기준으로 소형기 기장은 보통 5년차에 달성 가능하다.
그 순서가 오면 딜레마가 생긴다.
5년차 기준:
B737 소형기 기장 → 연 3.1억. 한 달 최대 17일 근무.
B777 대형기 부기장 → 연 2.4억. 한 달 12~13일 근무.
7천만원 차이다. 근데 그게 돈만이 아니다.
한 달에 12일 일하고 18일 쉰다. 일반 직장인 연차가 보통 연 15일인데.
아이가 생겼거나 가족이 우선인 사람은 그 7천만원보다 집에 있는 날을 고른다. 재정 상황에 따라, 가족 상황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
같은 연차, 같은 회사인데 option이 있다.
단, 순서가 온다고 다 가져갈 수 있는건 아니다. 철저한 훈련을 통과해야 그 자리가 주어진다. 짬이 조건이라면, 실력은 자격이다.
교관 시절 겨울엔 한 달 수입이 $300이었던 적도 있다. 날씨 때문에 비행이 취소되면 그날 수입이 $0이었으니까. 그때는 데이트 한번 하는 것도 계산하면서 했다.
지금은 비행 못 해도 월 보장 급여가 나온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10년.
20대엔 돈을 골랐을 것 같다. 30대인 지금은 돈보다 삶의 질을 고를 것이다.
좋은 직업이다. 단, 기다릴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