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고 글쓰고 그림 그리다가
울고 웃고 노래하는 영혼
비오는 날의 흙냄새와
모래 아래로 스며드는 포말의 소리를 사랑하는
한 박자 혹은 한 박자 반씩 느린데
서두르면 넘어져서 잘 일어나지 못하니까
느린 속도로 나아가는
서브 스펙트럼 성향을 가지고 살며
종종 애인하고 성향과 심리 토론회 개최
감각을 표현하는 데 재미들린 요즘
이런저런 글을 쓰고 마음이 이끄는대로
조용하지만 명랑하고 한없이 가라앉을 줄도 아는
둥글고 깊은 고요를 섬기고 싶은 사람
거칠거칠하던 표면이
맨질매질해지는 게 마음에 쏙 든다
사포를 쥔 나무토막을 움직이면
손을 타고 머리로 다리로 번지는 진동
보얗게 일어나는 나뭇가루
서서히 사라지는 주변
나무와 나 둘만이 남는 정적靜寂
그렇게 서로를 매만지며
다듬어지는 일
내가 사랑하는 일
나를 사랑하는 일
"자기도 그림 그려."
나는 잘 모르는 나를 더 잘 아는 애인의 말이
함께 보던 TV 속 작가의 작업실 위에 얹어져
어른어른 눈가와 귓가, 내 주변을 서성인다.
살포시 떨어지는 눈송이가 보고 싶다.
눈송이 위에 눈송이, 눈송이, 눈송이
그 위를 거닐며 뽀드득 소리를 듣고 싶다.
그림 그리고 싶다.
꽃잎이 떨어진만큼 빛이 든다
꽃이 진 자리에 잎이 나는 나무 아래
이제 여린 연두가 자라겠구나
하루가 다르게 짙어져 무성한 초록이 되겠지
빼곡한 초록에 이 자리 어둑하겠지만
그 짙음을 뚫고 들어올 빛일테니
쉬어가라 내어주는 자리가 고맙겠지
아쉬워하고 아쉬워 말자
그늘이 되자
이것 때문일까?
저것 때문일까?
물음표를 띄운다는 건
느낌을 회피하고 있다는 증거.
서성임을 멈추고
바닥에 나를 눕힌다.
때는 지금이다,
어둠은 빠르게 다가와 몸을 휘감고 끌어내린다.
기꺼이 나를 내어준다.
알 수 없음에 나를 맡긴다.
기실 할 수 있는 게 이것 뿐이다.
반드시 해야 할 일 또한 이것 뿐이다.
시간이 흐르고
째깍째깍, 시계 초침 소리
잔뜩 힘이 들어간 턱
조금씩 환해지는 눈꺼풀 사이
풀썩 내려앉는 어깨
지끈지끈 일어나는 두통
뜨끈하게 젖어드는 눈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처럼
숨이 터져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