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일본 사과를 기다리는 경북 마지막 '위안부' 생존자 박필근 할머니
1. 1928년 포항 죽장면 월평리에서 태어난 평범한 시골 소녀
2. 16살 때 갑자기 일본군에게 끌려감
3. 어디로 가는지, 무슨 일인지조차 모른 채 배에 실려
4. 일본 위안소에서 약 2년 동안 악몽 같은 나날을 보냈어요
5. 첫 탈출 시도 때 발각돼 밤새 구타를 당함
6. 두 번째 시도에서 변소 수챗구멍에 몸을 밀어 넣고 기어서 탈출
7. 재일동포의 도움으로 옷을 갈아입고 연락선을 탔음
8. 1945년 2월, 겨우 고향 땅을 밟았지만
9.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어요
10. 결혼 후 아이 일곱을 낳았지만 다섯을 먼저 보내고
11. 남편과도 일찍 헤어져 홀로 남은 두 아이를 키웠음
12. 나물 캐고 밭일하며 손마디가 다 휘어질 정도로 일하며
13. 1993년에야 용기를 내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
14. 지금도 다리 통증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계시는 중
15. 2025년엔 집 앞까지 혐오 집회가 찾아오기도 함
16. “죽기 전에 일본 사과 좀 받아다 주이소”가 마지막 바람이에요
존재 자체로 이미 가장 강한 증언이 되고 있는 삶입니다.
의열단장 김원봉을 체포하고 수모를 준 친일경찰 노덕술
1. 해방 후 독립운동가 김원봉,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체포됨
2. 일제 때 악명 높던 형사 출신이 미군정 경찰로 그대로 활동
3. 수갑 채우고 조사 과정에서 심한 수모 당했다는 증언
4. 따귀를 맞고 사흘 밤낮 울었다는 일화가 상징적으로 전해짐
5. “왜놈 등쌀에 죽을 뻔하다 해방된 조국에서 이런 일을…” 토로
6. 정정화 등 주변 인사들도 당시 크게 분개했다고 회고
7. 백색테러와 좌익 탄압이 극심하던 해방 정국의 단면
8. 이 사건이 김원봉의 신변 위협과 월북 결심에 영향 준 요인으로 거론됨
9. 세부 묘사는 증언에 의존하나, 수모 자체는 여러 기록에서 확인됨
10. 독립운동가가 친일 경찰에게 당하는 아이러니가 당시 현실을 보여줌
해방된 조국에서조차 독립운동가가 친일파에게 수모 당하던 시대의 아픔.
아니 근데 논란 떠나서 적당히 해야됨
매년 여름마다 지구가 좆창났다는 게 피부로 느껴지는데 좀 있는 자식들 보면 오히려 내일까지 쓰고 죽으려는 것처럼 돈도 에너지도 펑펑 낭비함 대체 냉장고 5대가 왜 필요함? 많아봤자 2대면 무엇이든 먹고 보관할 수 있잖아 수치스러운 것임 이런건
위안부 성폭력을 증언한 일본군 병사 곤도 하지메 증언
1. 1940년 12월 징병 후 중국 산시성에서 복무
2. 신병 때 이미 인간성 말살 훈련 경험
3. 부대 안에서 위안소·성ㄴ예 존재를 직접 목격
4. 작전 중 붙잡은 중국 여성을 부대원들이 ㅇ간
5. 토치카 건설 현장에서 여성을 잡아와 7~8명이 차례로 강ㄱ
6. 계급 높은 순서대로 돌아가며 행한 사례도 있음
7. 1943년 30대 초반 여성을 여러 병사와 함께 윤ㄱ
8. ㄱ간 후 입을 막기 위해 살해하는 경우가 흔했다고 회고
9. 어떤 때는 여성을 살려두고 행군에 끌고 다니기도 함
10. 갓난아기를 안은 여성을 ㅇ간한 뒤 아기를 절벽으로 던진 장면 목격
11. 그때 병사들이 웃으면서 넘긴 기억을 평생 지니고 살음
12. 처음에는 위안소 이용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엔 죄책감 없이 강간에 가담
13. 당시에는 “중국인은 돼지 이하”라는 교육 때문에 죄의식이 없었음
14. 2003년 도쿄고등법원 중국인 위안부 소송에서 원고 측 증인으로 출석
15. 법정에서 눈물을 흘리며 “죽어도 죄를 씻을 수 없다”고 말함
16. “전쟁이 인간을 괴물로 만든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
17. 자신의 가해 사실을 숨기지 않고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려 노력
이 증언들은 그의 저서 『ある日本兵の二つの戦場 ― 近藤一の終わらない戦争』과 2003년 도쿄고등법원 중국인 위안부 소송 법정 증언 등에 기록되어 있음
전쟁의 진짜 얼굴은 가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화재와 싸우다 지친 소방관들… 박스깔고 누웠있었다>
100시간 넘게 이어진 인천 대형 화재. 쉴 곳조차 없어 쓰레기 더미 박스를 깔고 드러누운 소방관.
그 모습을 CCTV로 본 카페 사장님이 “그냥 문 열어둘 테니 와서 쉬세요”
4일 동안 무료 음료만 900잔.
인근 업체 대표님도 바닥에 앉아 식사하는 모습 보고 자기 공간 무료 개방 + 조명까지 다 켜줬다.진짜 천사...감사합니다.
(출처:짧뉴)
명성황후 시해범인 일본인을 맨손으로 때려죽인 청년 김창수
1. 1896년 황해도 치하포
2. 명성황후 시해 후 1년 지난 시점
3.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발견
4. 맨손으로 직접 가격
5. 즉각 체포되어 재판정 출석
6. “국모의 원수를 갚았을 뿐” 주장
7. 사형 선고 확정
8. 인천 감옥소로 이감
9. 일본 협력 감옥소장의 잔혹한 탄압
10. 동료 죄수들의 외면과 고립
11. 억울한 옥살이 조선인들 목격
12. 한글 교육과 조직 활동 시작
13. 노역 조건 개선 투쟁 주도
14. 감옥 안 ‘대장’으로 인정
15. 625일간의 옥중 변화
16. 평범한 청년에서 지도자로의 전환점
17. 훗날 백범 김구로 개명
18. 독립운동의 출발점이 된 사건
평범한 한 청년의 분노가 민족의 역사를 움직인 순간.
관련 영화 : 대장 김창수
미성년자 동원까지 했고 피 뽑은 주사기 소각하는 소각팀도 전문적으로 따로 있었다고 MBC 스트레이트에서 보도된게 무려 7년 전임
근데 7년이 지난 지금 여기 연루된 애들 중에 제대로 처벌 받은 애가 누가 있나?
주범인 승리는 4년 전에 만기 출소했고
버닝썬 가해자 변호사가 공직기강비서관 자리에 앉아있음
도대체 뭐하고 있는거임?
여자를 위한 정부? ㅋㅋㅋㅋㅋㅋㅋㅋ 아직도 여자 위하는 정부 소리가 입에서 나오냐? 소녀들 살기 좋은 세상은 무슨 좆팔
【38년치 투병일지의 마지막 페이지】
뇌병변 1급 딸을 38년 간병한 엄마가 있었음. 이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한 가지로 설명됨. 딸의 약 용량이랑 상태 변화를 매일 기록한 투병일지를 38년 썼다는 것
그러다 딸이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음. 항암으로 온몸에 멍이 드는데 딸은 지적장애로 말을 못해서, 아프다는 걸 신음으로만 전할 수 있었음. 엄마는 딸을 재우고 함께 죽으려다 혼자 살아남았고, 법정에 섰음
검찰은 12년을 구형했는데 판사는 징역 3년에 집유를 선고함. 그리고 검찰이 항소를 포기함. 나는 이 마지막 문장이 이 사건의 전부라고 봄. 법이 처벌을 포기한 게 아니라, 이 비극 앞에서 국가가 할 말이 없었던 거임
38년 동안 이 가족에게 국가는 어디 있었나. 간병은 온전히 엄마 몫이었고 아빠는 그 돈을 벌러 전국을 돌았음. 시스템이 없는 나라에서 가족은 각자도생하다가, 한계가 오면 뉴스가 됨
이 판결에 아들이랑 며느리가 탄원서를 냈다는 대목에서 오래 멈췄음. 엄마를 잃을 뻔한 가족이 엄마를 지켜달라고 쓴 거잖아.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가족인 사건은 처벌로 끝나는 게 없음
간병살인이라는 단어가 뉴스에 계속 나오는 나라에서, 우리는 뭘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방금 일본은 200년 넘은 전통 기업이 3000개인데
한국은 0개라며 '일본 대단해'
이러는 트윗 보고 육성으로 터짐..
아니 상식적으로 200년 전이면 조선시대인데,
100년 전에 느그들이 쳐들어와서
쌀부터 놋그릇까지 다 털어가고 상권 박살 냈잖아ㅋㅋ;
거기다 곧바로 6.25 터져서
한반도 전체가 물리적으로 초기화됐는데
무슨 수로 200년 묵은 국밥집이 살아남냐고.
남의 나라 앞마당 쑥대밭으로 만든 당사자가,
자기네 본토는 전쟁터 안 됐다고
"우린 200년 넘은 가게 많은데 한국은 없네~"
이러고 있는 거 보면 진짜 투명해서 소름 돋음.
이건 전통을 잘 지킨 게 아니라,
그냥 남의 집 다 불태워놓고
우리 집은 멀쩡하다고 자랑하는 사이코패스 화법 아니냐고
친일인명 사전에 안상호 이름이 안 오른 이유는 당시 친일파 명단 작성시에 친일파들이 이미 기득권이었기때문에 방해 작업이 많았다고 함
그래서 매우 보수적으로 작성됐는데, 빼박이라 숨기기 어려운 인물들만 먼저 올리고 다른 굵직한 친일파들은 우선순위상 명단에 올리지 못했다고 한다
만원짜리 시계 차고 다니던 거지가
알고보니 10조 기부한 억만장자였음
이 사람 이름은 척 피니
세계 1위 면세점 DFS 만든 창업자임
근데 진짜 웃긴 게
억만장자면서 만원짜리 시계 차고
지하철 타고 다녔음
그래서 상류층들이 다 비웃었다
거지 코스프레 한다고
천박한 장사꾼이라고 손가락질했음
근데 여기서 반전
이 사람 수십 년 동안
자기 이름 꽁꽁 숨긴 채
전 재산을 몰래 나눠주고 있었던 거임
전쟁터 아이들 수술비 대주고
가난한 나라에 병원이랑 연구소 짓고
그렇게 평생 기부한 돈이
무려 80억 달러 우리 돈 약 10조임
마지막엔 통장에 20억 정도만 남기고
재단까지 싹 정리해버렸다
정작 본인은 끝까지
낡은 양복에 10평 월세방에서 살았음
빌 게이츠가 이 사람 보고 그랬음
내 인생 유일한 영웅이라고
생후 2일 된 아기 살리기 위해… 경찰과 시민들이 만들어낸 기적
생후 고작 2일 된 아기가 위급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아기를 살리기 위해 구급차는 병원으로 긴급하게 달려갔고, 경찰도 곧바로 동행하며 길을 열어줬습니다.
사이렌 소리가 울리자 도로 위 차량들은 하나둘 길을 양보했습니다.
누군가는 차를 멈췄고
누군가는 옆으로 비켜섰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차량이 작은 생명을 위해 길을 만들어줬습니다.
구급차 안에는 생사를 오가는 어린 아기가 있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시민들은 한마음으로 구급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기다려줬습니다.
경찰의 신속한 동행과
구급대원의 헌신,
그리고 길을 비켜준 운전자들.
모두가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하나가 된 순간이었습니다.
생후 2일.
세상에 나온 지 이제 겨우 이틀 된 작은 생명에게
많은 사람들이 길을 내어준 것입니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저 한 아이가 무사하기를 바라면서요.
아기를 위해 길을 양보해주신 모든 운전자분들, 정말 감사합니다.